최협의 박물관 이야기 <24> 아다치 미술관(足立美術館 Adachi Museum of Art)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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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일본의 변방 구석진 시골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아다치 미술관>(足立美術館)은 나에게 ‘지역문화’와 ‘지역 활성화’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동시에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1984년 여름, 나는 일본 漁村의 인류학적 조사를 위해 일본에서의 현지 조사에 참여했다. 연구팀이 선정한 지역은 일본 혼슈의 서남부 외진 곳인 시마네현(島根県)과 돗토리현(鳥取県)으로, 그 두 현(県)에서 몇 개의 어촌마을을 다니며 2주 동안 자료를 수집했다.
지금은 한국인들의 일본 여행도 잦고, 교통편도 많이 좋아졌지만, 그때만 해도 일본 시골 지역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없었다. 그 당시에는 시마네현 부근으로 가는 항공편이 없었고, 신칸센 같은 편리한 교통수단도 없었기에, 먼저 후쿠오카로 가서, 다시 하카타역에서 혼슈의 서남부지역을 이어주는 낡은 철로를 따라 느리게 움직이는 열차를 타고 한나절을 달려, 시마네현 마쓰에시(島根県松江市)에 여장을 풀었다.
나는 주로 인근 돗토리현 의 사카이미나토항구(境港市) 지역의 어촌마을에서 인류학 조사에 임했는데, 인류학 조사가 끝나 갈 무렵, 주변 지역에서 가서 볼만한 곳을 찾다가 별생각 없이 우연히 들린 곳이 시마네현 야스기시(安米市)에 위치한 아다치 미술관이었다.
(아래 사진은 필자가 이른 아침 사카이미나토의 부둣가에서 주민들의 작업 현장을 관찰하는 모습이다. 한국의 어촌풍경과 너무 닮았다.)
별생각 없이 찾아간 아다치 미술관은 입구에서의 모습이 대단치 않은 그저 작은 시골 미술관처럼 보였다. 그러나 입구에 들어서자... 전개되는 광경은 이곳이 예사로운 미술관이 아님을 금세 깨닫게 해주었다.
'이런 시골구석에 이렇게 훌륭한 미술관이 있다니!',... 모든 사회·문화적 자원의 서울집중과 지방문화의 사막화에 익숙해져 있던 당시의 나에게는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 마디로, 문화에는 중심과 주변의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이 84년 여름 <아다치 미술관>에서 덤처럼 얻은 작은 수확이었다.
아다치 미술관은 단순한 미술관이 아니라, 아름다운 일본식 정원의 한 가운데에 미술관을 배치함으로써, ‘독창적인 日本畵’를 ‘일본문화의 정수인 日本 庭園’과 함께 감상하고 느끼도록 설계한, 다시 말해, 일본이기에 가능한 <일본적인 미술관>이라는 점에서 매우 독특하고 유일한 미술관이라 칭할 만하다. 일본의 정원은 한국의 정원과는 달리 거리를 두고 觀照하는 정원이기에 근대 일본화의 대표작을 감상하는 미술관의 건축적 환경으로 일본식 정원을 접목한다는 발상은 참으로 탁월하다 아니할 수 없다.
아다치 미술관에 입장하면 아름다운 다섯 개의 정원은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사이 사이에 오직 미술관 건물의 창을 통해서만 저 멀리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나에게는 <창에 비친 정원의 풍경>이 곧 <한 폭의 아름다운 작품>으로 다가왔다. 밖의 풍경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이도록 배려한 전시 콘셉트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미술관 창을 통해 관조하는 바깥 풍경은 구도가 잘 잡힌 한 폭의 거대한 진경산수(眞景山水)이다. 그리고 이 산수화는 계절에 따라 변하여, 봄에는 아름다운 꽃, 여름에는 초록의 신록, 가을에는 화려한 단풍, 겨울에는 설국의 멋을 연출할 것이다. 더욱더 놀라운 사실은 정원 중의 하나인 白沙靑松庭은 아다치 미술관이 자랑하는 일본식 회화 사조의 창시자인 요코야마 다이칸(横山大観)의 작품을 반영하여 조성한 정원이라 하니 그 세심한 구상에 감탄하게 된다.
아다치 미술관(足立美術館)은 일본 시마네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아다치 젠코(足立全康 1899-1990)가 기업가로 성공한 후 평생 수집한 근대 일본화와 도예, 조각 등의 컬렉션을 전시하기 위하여 1970년 자신의 고향인 시마네(島根)현의 야스기시( 安米市)에 건립한 사설미술관이다. 아다치 젠코는 특히 일본 근대 화단의 거장 요코야마 다이칸(横山大観, 1868~1958)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했는데, 이를 지켜본 같은 시마네현 출신의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1924~2000) 전 총리가 아다치 젠코에게 일본식 정원과 일본화를 조화시킨 미술관을 만들어보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다케시타 전 수상의 권유를 받아들인 아다치는 16만5,289㎡(약 5만 평)의 부지에 일본문화의 정수를 관람객들이 자연스럽게 체감할 수 있는 매우 독창적인 미술관을 만들기 위해 일본식 정원을 미술관의 개념에 융합시켰다.
아다치 미술관은 일본 근대 최고의 화가 요코야마 다이칸을 비롯한 다케우치 세이호(竹内栖鳳, 1864~1942), 가와이 교쿠도(川合玉堂, 1873~1957), 우에무라 쇼엔(上村松園, 1875~1949), 하시모토 간세쓰(橋本関雪, 1883~1945)의 그림과 기타오지 로산진(北大路魯山人), 가와이 간지로(河井寛次郎)의 도예 작품 등 약 1,300여 점에 달하는 컬렉션으로 유명하다는데, 그 중의 가장 유명한 컬렉션은 130여 점에 이르는 요코야마 다이칸의 작품으로 특별전시실이 마련되어있었다. 日本畵에 門外漢인 내가 아다치 미술관의 소장품에 대한 평을 할 자격이 없지만, 유럽의 인상파 화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 일본문화의 독창성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市價 100억 원이 넘는다는 요코야마 다이칸의 대표작 <홍엽>(紅葉)은 그 화려하고 섬세한 화풍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이렇게, 일본의 근·현대 회화 중 美術史 적 가치가 지대한 작품들이 아다치 미술관에 압도적으로 많아서, 일본의 근현대회화를 연구하려면 시골인 이곳 야스기 시(市)로 와야 한다는 미술관 관계자의 다소 과장섞인 말이 더없이 좋게 들렸다.
뜻밖의 장소에서 무심코 들렸던, 그러나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아있는 미술관은 내가 살아가면서 때때로 만나는 행운 같은 것! 그래서 여기 기록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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