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협의 박물관 이야기 <22> 이스탄불의 카리예 박물관(Kariye Museum –Chora Church-/Kariye Müzesi)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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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의 경이로운 문화경관 중 하나로 꼽혀온 <카리예 박물관>이 앞으로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워진다는 소식이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2020년 8월 21일(현지 시간) 이스탄불의 <카리예 박물관>을 모스크로 전환할 것을 공식 지시했다고 AFP, AP통신이 보도했다. 이는 터키 정부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성소피아 박물관을 모스크로 전환한 지 한 달여 만에 또 다른 박물관을 모스크로 변경하기로 한 것이다. 코로나 발 경제 위기 속 보수 지지층의 결집을 노린 이번 결정에 따라 <카리예 박물관>은 이제 종교 당국에 넘겨져 향후 이슬람 신자들의 기도회를 위해 개방될 것이라고 AP통신은 전했다.”
정치 선동에서 가장 쉽게 동원되는 ‘민족’과 ‘종교’는 정치 이데올로기의 탈을 쓰고 곳곳에서 강압 정치에 이용된다. 하기야 한국에서도 느닷없이 개념도 모호한 토착 왜구를 들먹이며 150만 명을 처단하자는 괴변이 등장하는 형편이니 터키의 사정이 어떠한지 가늠해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터키는 역사적으로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지점이었기에, 로마, 비잔틴, 오스만 튀르크 문명이 둥지를 틀고 엄청난 문화적 유산을 인류에게 남길 수 있었다. 그래서 터키만큼 인류의 값진 문화유산이 혼재해 있는 지역도 드물다. 잘 알다시피 1453년 천 년 동안 지속하여온 동로마제국이 오스만튀르크에 무너졌다. 그런데 지금의 이스탄불인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오스만튀르크는 대부분의 기독교 시설들을 파괴하거나 해체하지 않고 건물 일부를 고쳐 이슬람교 사원으로 사용했다. 예컨대 <아야소피아>의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기독교 벽화들은 회로 덧칠을 해 보이지 않도록 했을 뿐이다. 그럴 뿐만 아니라 20세기에 오스만튀르크의 뒤를 이어 들어선 터키 공화국의 케말 파샤 정부는 세속정치를 표방하여 지난 500년 동안 이슬람교의 중심 사원으로 사용되어온 이 건물을 1945년 <국립박물관>으로 전환했다. 이런 이유로 1453년 종교·문화전쟁이 끝나고 500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 터키에서 우리는 수많은 기독교 유적을 세계인이 공유하는 문화재로 누릴 수 있었다. 나도 11년 전 그러한 기회를 갖는 행운을 누렸다. (그때 손수 찍은 사진들을 여기 공개하는 일도 특별한 즐거움임을 오늘 실감한다.)
<카리예 박물관>은 소장품을 전시하는 대부분 박물관과는 달리 건물 자체가 유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매우 이례적인 박물관이다. 이 작은 성당의 벽면과 천장에는 비잔틴 최고의 모자이크와 프레스코 성화가 가득하다. 사람들은 이 역사적인 걸작품을 보기 위해 카리예 성당, 아니 <카리예 박물관>을 찾는다. 회교국가인 이스탄불에서 비잔틴 최고의 모자이크와 프레스코 성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문화적 관용과 이해를 일깨워주는 놀라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카리예성당은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건설한 성벽 바깥에 세워진 크지 않은 수도원이었다. 성 밖에 있어 ‘야외’‘시골’을 뜻하는 코라(chora)라는 이름으로 불렸기에 지금도 일명 코라 성당이라 불리기도 한다. 현재 남아있는 본당 건물은 마리아 두카이나(Maria Dukaina, 알렉시우스 1세 콤네누스의 장모)가 1077~1081년 사이에 십자가형 구조로 재건축한 것이다. 그 후 12세기 초 지진 등으로 건물 일부가 붕괴하여 재건되었고, 세 번째, 가장 중요한 증·개축은 테오도르 메토키테스(Theodore Metochites : 1260~1332)가 안드로니쿠스 2세의 명령을 받아 시행하였는데, 이때 현재 남아있는 모자이크 성화와 프레스코 성화가 완성되었다. 이 때문에 테오도르 메토키테스는 그 자신의 모습을 모자이크화에 남겼을 뿐 아니라 이곳에 묻혔다.
카리예 성당은 예수와 성모마리아에게 바치는 건축물이다. 그래서 건물 내부는 대부분 예수와 성모마리아의 일생을 묘사한 모자이크로 뒤덮여 있다. 방문객이 정문으로 들어서면 본당으로 연결된 복도 문 위에 비잔티움 후광을 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자이크를 만난다. 예수의 양옆에는 ‘산 사람들의 나라’, 곧 ‘천국’을 의미하는 명문이 새겨져있다. 그 반대편인 외부 출입구 위에는 아기 예수를 가슴에 품은 성모마리아의 모자이크가 자리하고 있다. 성모마리아의 양손 위에는 ‘담을 수 없는 자의 땅’, 즉 ‘예수 그리스도의 땅’을 의미하는 명문이 쓰여있다. 방문객을 맨처음 맞이하는 이 두 개의 모자이크 성화는 이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마리아에게 봉헌된 것임을 나타낸다.
본당 출입문 양편으로 왼편에는 사도 베드로가 오른편에는 사도 바울의 모자이크가 있다. 베드로는 왼손에 천국의 열쇠를 쥐고 있으며, 바울은 왼손에 복음서를 들고 오른손으로 축복을 보내고 있다. 성당 벽면과 천정을 따라 이어지는 모자이크와 프레스코 성화들은 성경 말씀을 연대기적으로 풀어낸 스토리텔링형식을 취하고 있는바, 이는 과거 신도들이 교회에 들어와서부터 예배를 마치고 나가는 순간까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을 느낄 수 있도록 성화를 치밀한 계획하에 배치했음을 말해준다.
<카리예 박물관>의 모자이크가 완성된 14세기를 우리는 흔히 비잔티움 제국의 르네상스로 일컫는다. 그러므로 흔치 않은 후기 비잔티움 예술의 진수를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카리예 박물관>은 인류가 공유해야 할 보물이다. 앞으로 모스크로 바뀌더라도 아름다운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에 과거처럼 회칠이 덮여 씌워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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