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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 탄핵을 사표수리로 막은 美 대법원장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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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2월07일 12시08분

작성자

  • 이상돈
  •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20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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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의 트럼펫’(Gideon's Trumpet)이란 영화가 있다. 1980년에 나온 이 영화는 모든 피고인은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확인한 1964년 미국 대법원의 Gideon v. Wainwright 판결을 그린 베스트셀러를 영화화 한 것인데, 헨리 폰다가 클라렌스 기드온으로 나온다. 사소한 전과가 있는 기드온이 절도죄로 유죄판결을 받자 그는 경죄에는 관선변호사의 도움을 요구할 수 없게 되어 있는 플로리다 주(州) 법률이 잘못됐다고 감옥에서 대법원장에게 편지를 썼다. 

 

맞춤법도 제대로 되지 않은 편지를 받아 읽어 본 얼 워렌(Earl Warren : 1891~1974) 대법원장은 이 문제를 다루어 보기로 하고 워싱턴의 유명한 로펌 Arnold & Portas의 파트너인 에이브 포터스(Abe Fortas : 1910~1982) 변호사에게 기드온을 대리해서 대법원에서 변론을 해 주기를 부탁했다. 포터스는 기꺼이 받아 들였고, 자신 아래에서 일하던 젊은 변호사 존 엘리(John Ely)의 도움을 받아서 이 사건을 다루었다.(존 엘리는 그 후 예일 로스쿨 헌법교수가 돼서 학장을 지내게 된다.) 플로리다 작은 도시의 감옥에 갇혀 있던 기드온이 막강한 로펌의 막강한 변호사의 무료 변론으로 자신의 헌법적 권리를 대법원에서 주장하게 된 것이다. 대법원은 전원 일치의 판결로 중죄의 경우에만 관선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한 주법을 위헌으로 판시했다. 이로서 미국은 모든 경우에 피고인이 관선변호사의 도움을 받게 됐고, 각주는 공공변호사(Public Defender) 제도를 전면적으로 도입하게 됐다. 

 

예일 로스쿨을 나온 에이브 포터스는 존슨 대통령과도 절친한 유력한 변호사였다. 당시 유엔 주재 미국 대사이던 애들라이 스티븐슨이 사망하자 존슨은 아서 골드버그 대법관을 설득해서 대법관을 사임하도록 하고 유엔 주재 대사로 임명했다. (골드버그는 존슨이 자기를 나중에 다시 대법관으로 임명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고 한다.) 존슨은 골드버그의 후임으로 에이브 포터스를 지명했고, 상원은 그를 인준했다. 에이브 포터스가 대법원에 가담함에 따라 대법원에서는 워렌 대법원장과 4명의 대법관이 확고한 다수파 ‘진보 블록’을 이루게 됐다. 1966년 6월, 대법원은 5대 4로, Miranda v. Arizona 판결을 내렸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 미란다 고지(Miranda Warning)가 나오게 됐다. 

 

1966년 중간선거를 지나면서 공화당 몇몇 의원들은 연방대법원이 지나치게 진보적이라고 보고, 가장 진보적인 윌리엄 더글라스(William O. Douglas :1898~1980) 대법관을 그의 정치적 견해 등을 들어서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68년 초, 베트남에서의 월맹군 대공세로 인해 존슨은 차기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고령으로 은퇴를 생각하던 얼 워렌 대법원장은 대법원이 진보적 성향을 유지하기를 원했고, 존슨 대통령도 그러했다. 1968년 6월, 워렌 대법원장은 은퇴를 발표했고, 존슨 대통령은 에이브 포터스 대법관을 후임 대법원장으로 지명했다. 

 

그해 11월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나서는 리차드 닉슨은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헌법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법률가를 대법원장으로 임명하겠다고 말했다. 상원 법사위에서는 공화당 의원들이 대법원장으로 지명된 포터스는 물론이고 대법원 자체를 치열하게 공격했다. 대법원 자체가 상원에서 이토록 비난의 대상이 된 적은 없었기에 포터스는 존슨 대통령에게 지명을 철회해 줄 것을 요청했고, 존슨은 지명을 철회했다. 이제 차기 대법원장은 다음 대통령이 임명하게 됐다. 

 

1969년 5월, 라이프지(誌)가 포터스 대법관이 변호사 시절부터 알던 금융계 인사로부터 매년 2만 달러씩 자문비를 받는 계약을 했다고 폭로했다. 그러자 닉슨 행정부의 법무부가 조사를 하겠다고 나섰고, 하원에는 탄핵 발의를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워렌 대법원장은 더 이상 파문이 커지는 것은 대법원 자체에 나쁜 영향을 준다면서 포터스에게 사임을 권했다. 5월 19일 포터스는 사표를 제출했고, 상심한 워렌 대법원장도 6월 23일 은퇴했다. 이렇게 해서 닉슨 대통령은 대법원장과 대법관 1인을 보수 성향 법률가로 바꿀 수 있게 됐다. 진보적인 민권판결로 미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은 워렌 대법원의 종말이었다. 

 

포터스가 사임하자 법무부는 일체의 조사를 중단했다. 당시 기준으로 볼 때 과연 포터스를 기소할 수 있느냐는 회의적인 견해가 많았다. 대법원을 나온 후 포터스는 로펌을 세워서 성공적인 변호사 업무를 했다. 포터스의 부인도 유명한 세법 변호사였고, 그들은 조지타운 부촌에 있는 큰 저택에 살았다. 

 

에이브 포터스는 의회의 탄핵 위협과 법무부의 기소 위협으로 사임한 첫 대법관이었다. 당시 대법원장 얼 워렌은 자기의 후계자로 생각했던 포터스에게 대법원을 생각해서 사임해 줄 것을 요청했고, 포터스도 대법원을 생각해서 사임을 했다. 포터스에 대한 탄핵이 발의되거나 상원에서 통과될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탄핵 절차 그 자체가 대법원의 권위와 명성에 큰 상처를 줄 것은 분명했다. 

 

탄핵은 사임을 거부하는 대통령이나 법관을 상대로 하는 의회의 마지막 수단이다. 법관에 대한 탄핵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조직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얼 워렌은 포터스에게 사임을 권했던 것이다. 사임하겠다는 판사에 대해 “그러면 탄핵을 못하지 않냐”고 한 김명수 같은 대법원장은 눈 씻고 찾아보아도 보기 어려울 것이다. ‘감’이 안 되는 사람이 자리에 있으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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