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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계 장관의 궤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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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1월30일 12시00분

작성자

  • 이상돈
  •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20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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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계 법무장관이 청문회에서 김학의 출국금지 사건을 묻는 질문에 ‘실체적 정의’라는 말을 했다, 출금 조치에 절차적 하자가 있더라도 실체적으로는 정의에 봉사했다는 의미로 보이는데, 엉뚱한 이야기이다. 출금조치에 잘못이 있었다고 인정하면 되는 일인데, 그렇게 되면 당시 법무부의 어느 선까지 보고가 되었느냐 등 곤란한 문제가 생기니까 자기 선에서 그렇게 답한 것 같다. 

 

절차적 정의(procedural justice)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근본이다. 마그나 카터에서 1960년대 미국 대법원의 Miranda v. Arizona 등 일련의 판결에 이르는 원칙은 모두가 절차에 관한 것이다. 이것을 절차적 적법절차(procedural due process of law)라고 부르는데, 이런 원칙을 따르다 보면 수사기관 또는 검사의 실수로 수집된 증거가 무효가 되어 엄연한 범죄인이 무죄로 나오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것을 두고 실체적 정의가 부인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누가 보더라도 유죄인 피고인을 증거법칙 등 절차적 적법절차를 동원해서 무죄로 빼내는 변호사가 최고의 변호사가 되는 현실은 분명히 실체적 정의 관념에 어긋난다. 하지만 실체적 정의는 철학적 개념은 될망정 형사법적 원칙이 될 수는 없다. 검사는 형사절차법과 증거법을 준수하고 집행하는 사람이지 철학 교과서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은 아니다. 

 

내가 서울법대 다닐 적인 1970년대 전반기에 비로소 절차적 원칙을 위반해서 불법으로 취득한 증거는 재판에 쓰일 수 없다는 이론이 교과서에 소개가 됐다. 그것이 우리 법원에 의해 수용된 것은 대체로 1990년대 들어와서라고 하겠다. 우리 학계에서 불법적으로 취득한 증거는 재판에 쓰일 수 없다는 절차적 정의를 가장 열렬히 주장한 교수를 들자면 서울법대 안경환, 한인섭, 조국 교수라고 하겠다. 그들이 쓴 논문과 칼럼을 검색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런 주장은 당연히 옳은 것이기에, 우리 사법부도 그런 방향으로 판결을 해 나갔다. 그리고 이들은 문재인 정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독 김학의 사건만은 실체적 정의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절차적 정의보다 실체적 정의가 원래 더 중요하다는 것인지, 그 인식에 대해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법무부장관으로 지명된 사람이 자기 부인은 형사피의자로서 권리를 갖는다고 말하고, 인사 청문회에서의 진술에는 위증죄가 적용되지 않음을 알고 허위사실을 진술하는 것도 절차적 정의에 의해 보호를 받는다는 입장이라면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절차적 정의를 준수해야 하지 않는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생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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