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김진해의 주유천하> 부산(釜山)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1년01월30일 17시00분

작성자

  • 김진해
  • 경성대학교 예술종합대학장

메타정보

  • 0

본문

부산 온 지 20년이다. 부산에 이사 온 것은 순전히 직장 때문이었다. 부산에서 태어났지만 중학시절부터 줄곧 서울서 살다가 다시 고향에 내려온 나는 바다에 매료되었다. 아스팔트를 밟고 빌딩 숲에서 지내다가 매일 바다를 볼 수 있는 해운대에 거처를 정한 것은 축복이었다. 눈뜨면 만나는 풍경이 바다다. 아침 햇살이 푸른 바다위에 금빛으로 출렁이면 마음은 황홀경에 빠져든다. 너무 아름다워 멍하니 구경하다 출근 시간을 놓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풍광은 좋지만 부산서 살아보니 불편한 점이 한 둘이 아니었다. 20년 전 서울-부산은 새마을호로 6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KTX로 2시간 반이면 가능하다. 축복이었다. 그런데  해외여행을 갈라치면 새벽같이 일어나 비행기나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간 후 다시 인천공항으로 이동해야 했다. 불편하기가 그지없다. 최근 가장 큰 이슈가 가덕도 신공항이다. 정치논리로 20년을 헤매다 선거철을 맞아 다시 불감자로 떠올랐다. 부산서 살고 있는 나로서는 신공항 건설에 무조건 찬성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국가균형발전을 내세웠을 때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서울서만 살았더라면 머리로는 공감해도 몸 전체로 공감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막상 부산에 살아보니 서울과 부산의 격차가 예상외로 컸다. 인재, 경제규모, 교육과 문화시설 모든 면에서 ‘초격차’란 표현을 써도 틀리지 않을 만큼이다. 그러기에 국가균형발전을 내세운 후보를 적극 지지했다. 현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이전도 기대하며 지역 사회 일자리 창출에 공헌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미국을 보자. 뉴욕, LA, 시애틀, 워싱턴, 올랜도 등 각기의 도시는 정체성을 가지고 스스로의 문화를 지키며 발전하고 있다. 서부 오리건주 포틀랜드는 힙스터들의 성지다. 힙스터들이란 영혼이 자유로운 개인 창업자들을 일컫는다. 히피와는 달리 그들은 자본을 추구하고 골목상권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운영하는 혁신적인 소상공인, 즉 로컬 크리에이터들이다. 창업에 적극적인 그들은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한다. 독립서점, 수제맥주, 스페셜티 커피, 비건 음식점 등 새로운 도시산업을 개척한다. 이들로 인해 도시문화가 달라지고 생기가 넘치니 사람들이 몰려들어 이주해 살고 싶은 도시로 각광받고 있다.

 

부산은 인구가 점점 줄어 4백만 명에서 지금은 3백 4십만 명이다. 살고 싶은 곳이어야 사람이 몰려든다. 일자리가 있어야 인재가 찾는다. 교육과 문화, 생활여건과 주거 환경이 좋아야 인구가 느는데 부산은 반대다. 2021년 신입생 모집에서 부산의 거의 모든 대학이 미달 사태를 기록했다. 언론에서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한다는 기사가 현실로 다가왔음을 체감하고 있다. 성적 상위권 학생들은 서울로 유학을 간다.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도 직장을 찾아 서울로 간다. 

 

부산에는 대기업이나 공기업 등이 적어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다. 일자리가 없으니 청년들이 떠난다. 그러니 도시가 쇠퇴하고 모든 성장이 둔화된다. 비대한 서울과 홀쭉해진 부산에서 성추문으로 공석이 된 시장 자리를 놓고 보궐선거가 시작되었다. 부산은 유독 야당 후보들이 10명 가까이 출사표를 던졌다. 이에 맞선 모 여당 후보가 최근 이렇게 말했다. “서울말 쓰는 부산시장 필요 없다.” 그럼 부산 사투리 쓰는 문재인 대통령은 부산 대통령이란 말인가? 

 

발전과 성장을 하려면 개방성은 필수다. 서울 말 쓰는 사람만 서울 시장이 되고 부산 말 쓰는 사람만이 부산시장 해야 한다는 사고방식. 이런 폐쇄적이고 유아적 사고를 가진 후보가 시장에 도전한다고 하니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3류 코미디에 등장할법한 발언을 하는 후보가 봉하마을을 참배했다니 저승에 계신 노무현 전 대통령 심정이 어떠하실까. 이런 후보를 품고 있는 정당이 애처로워 보인다. 

 

가뜩이나 부산시장 부재로 리더십이 없는 상황에서 시장 권한대행, 부시장 모두 정치에 뛰어들었다. 시장 선출 전까지 행정 공백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다분히 부산시민을 우롱하는 처사다. “어차피 교체될 텐데 이참에 사표 내고 출마나 하자.” 이들을 보면 시정(市政)이 우선이 아니라 자신들의 출세와 차기 입지 포석이 우선인 것처럼 보인다. 공복(公僕)의 자세가 아니라 시민들을 졸(卒)로 여기는 안하무인(眼下無人)격 행동이다. 매(鷶)가 없으니 족제비, 여우새끼들이 설치는 꼴이다.

 

정치는 리더십이다. 리더십의 덕목은 비전 제시다. 국가를 어떻게 개조하고 부산을 어떻게 개혁하겠다는 혁신적인 생각을 제시하는 것이 리더의 필수 요건이다. 서울보다 레이스가 빨리 시작된 부산에서는 상대후보 때리기에 급급하다. 그것도 아주 저급하고 유치한 방식으로. 서울에서는 우상호, 박영선 두 후보를 메시와 호날두에 비유하며 멋진 경선이 될 거라고 민주당이 자랑한다. 흑색선전과 네거티브 공세가 아닌 부산발전 전략과 공약으로 승부하라. 국민의 힘 부산시장 후보들에게 하는 말이다.

​ 

0
  • 기사입력 2021년01월30일 17시00분
  • 검색어 태그 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