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협의 박물관 이야기 <14> 베트남 민족학박물관(Vietnam Museum of Ethnology) 본문듣기
작성시간
관련링크
본문
베트남사회과학원 초청으로 세미나 참가를 위해 하노이를 1995년과 1997년 두 차례 방문했다. 처음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시기가 4월경이었는데 하노이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 양편에 누런 벼를 수확하고 있는 광경이 신기했다. 알고 보니 베트남은 2모작 이상이 가능해서 그랬다. 하노이 시가를 둘러보며 동양의 작은 파리라는 별명이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었고….
하노이에는 베트남의 수도인 만큼 좋은 박물관이 많다. <호지민박물관>, <베트남역사박물관>, <군사박물관>,< 베트남미술관>(Vietnam Fine Arts Museum), 그리고 <베트남 민족학박물관> 등 규모 있는 박물관이 다섯이나 되었다. 물론 사회주의국가이니만큼 이 모두가 국립박물관이다.
세미나가 끝난 후 여러 곳을 안내 받았다. 먼저 역사박물관, 전쟁박물관을 방문했는데, 해설 차 동행한 하노이대학 역사학 교수는 한국의 참전은 그 당시 한국의 입장에서는 불가피했을 것으로 이해한다고 내게 말했다. 그가 보인 한국과 미국의 참전을 대하는 대범한 태도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뒤돌아보면, 그 후 베트남의 개방정책과 한국과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착착 진행되었다. 그 베트남 역사학교수의 말이 그냥 외교적인 수사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전공이 인류학인지라 <민족학박물관>에서 박물관장의 안내를 받아 보다 많은 시간을 보냈다.
세계적으로 인류학 관련 박물관은 인류학박물관(멕시코), 자연사박물관(미국, 영국), 민족학박물관(독일, 프랑스)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아직까지 한국에는 인류학관련 박물관이 없다. 가까운 일본에도 오사카에 <국립민족학박물관>이 있는데, 우리는 없다.
그래서 <국립자연사박물관>건립을 위해 1990년대 후반부터 자연과학분야 학자들과도 연대하여 정부에 건의도 하고 신문에 칼럼(동아일보 2001년 10월 30일 '여론마당')을 써 여론을 환기시키기도 하며 여러모로 노력해 봤지만, 여전히 한국에는 제대로 된 자연사박물관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다행이 요즈음 동료인류학자인 이태주교수가 관심을 갖고 일을 추진하는 것 같아 고맙고 든든하다.
베트남에는 인구의 86%를 차지하는 비엣족(Viet ethic group) 외에 54개의 다양한 소수민족이 산다. 전형적인 다민족사회이다. 민족학박물관은 그러한 소수민족들의 다양한 문화를 보존하고 연구하며 전시, 교육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근래에는 이러한 민족학박물관이 베트남을 찾는 외국인관광객에게 인기가 많다고 들었다. 그래서 과거 박물관의 전통적 기능에 더하여 방문객들에게 친교적이고, 오락적이며, 참여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진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민족학박물관에 드넓은 야외전시장을 만들어 실물의 집과 공방 등을 건립하고, 베트남 전통의 수중인형극 공연 등을 통해 문화적 참여거리와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을 들 수 있다. 1997년 나도 저녁시간에 민족학박물관의 야외전시장에 마련된 수중극장에서 관중석을 꽉 채운 관광객들과 함께 역사적으로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는 Water Puppet Show를 즐길 수 있었다. 베트남의 전래민담을 화려한 의상과 무대장치, 그리고 전통음악으로 엮어낸 종합예술이라고나 할까…. 우리나라에도 인류학 관련 박물관이 설립되기를 기다린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