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의 주유천하> 사패산(賜牌山)을 오르며 친구를 생각한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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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에 갈 일이 있었다. 십여 년 전 촬영감독 하던 K가 그 동네 초계탕 잘하는 집이 있다고 해서 가본 적 말고는 없었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지하철 6호선을 타고 동묘나 석계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면 된다. 운전 할 필요도 없이 의정부역에 도착했다.
역사(驛舍)는 컸고 그 옆에는 신세계 의정부점이 있었다. 지하층과 지상10층. 층마다 잡화점, 여성품점, 남성품점, 생활용품점, 식당가, CGV가 들어서있다. 물론 1층에는 프라다, 페라가모, 구찌, 사넬 등의 명품점이 입점해 있었다.
내가 가는 목적지는 백화점이 아니고 사패산(賜牌山)이다. 사패산은 이름이 특이하다. 조선 선조의 6째 딸인 정휘옹주가 유정랑에게 시집갈 때 선조가 하사한 땅이라 사패산(賜牌山)이라고 한다. 옛날 왕들은 산도 마음대로 자기 것인 냥 하사하는 모양이다.
토박이 P의 안내로 시청 뒤쪽 안골계곡을 따라 올랐다. 산은 크게 가파르지가 않았다. 초입부터 군 부대가 설치해놓은 커다란 방공호 여러 개가 그대로 있었다. 썩 유쾌한 풍경은 아니었으나 군사시설 보호구역이라 지금까지 자연환경이 잘 보호된 것 같다.
지금이야 동네 뒷산을 다니지만 20대 때는 제법 등산 마니아였다. 우연한 기회에 ‘에코클럽’이라는 산악회에 가입하게 되었고 매주 산행을 했다. 그것도 북한 도봉의 인수 선인봉을 오르는 전문적인 암벽 등반을 시작한 것이다. 당시 에코클럽의 선배로는 인수봉의 여러 암장을 개척한 유기수, 김종욱, 박일환 등 쟁쟁한 산꾼들이 있었다.
마나슬루 원정대 출신의 김도섭도 있었기에 나는 한국 최고의 클라이머들로부터 등반을 배웠다. 1982년 K2봉을 오른 장봉완, 스키 잘 타던 곽효근 선배들과 함께 설악산 적벽, 범봉, 1275봉, 장군봉, 울산암 등의 바위를 성큼성큼 올랐다. 겨울에는 국내 최대 빙벽 토왕성 폭포에 자일을 걸고 아이스 해머와 아이젠으로 얼음을 찍으며 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선배들은 여전히 산에 다닌다. 다들 히말라야 등반대장, 한국등산학교 교장 등을 하면서 산악계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선배들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대학 졸업 이후 유학길에 오르면서 더 이상 산과 마주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전문적인 등반에서 손을 놓은 것이다.
유독 기억에 나는 선배가 있다. 1978년 적벽을 오르기 위해 비선대를 출발해서 장군봉 아래 큰 바위를 가로지를 때의 일이다. 크게 어려운 코스가 아니라 편하게 트래버스를 하는 데 아뿔사 그만 이끼 낀 바위에서 미끄러져 30미터를 추락한 것이다.
헬맷과 배낭이 머리를 보호하고 확보 자일이 나를 살렸다. 오른 쪽 팔꿈치 관절을 크게 다친 나는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추락사고 이후에도 등반은 계속되었고 설악골을 치고 올라가는 험한 길에 배낭을 대신 메준 선배가 장봉완형이다. 산꾼들은 이처럼 의리가 끈끈하다.
일전 독서모임에서 저자 초청 특강이 있었다. 산악인 박정헌 대장이 왔다. 2005년 촐라체 등정 중 8개의 손가락을 잃고도 다시 패러글라이딩으로 히말라야 산군을 새처럼 난 모험가다. 촐라체 등정과 실종, 극적 생환기는 TV 드라마로 제작되었고 히말라야 패러글라이딩 일주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다. 그는 다시 요트로 세계 일주를 준비하고 있었다.
자신의 한계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불굴의 용기, 인내, 극복, 동료의 목숨과 나의 목숨이 하나가 되는 줄 묶기. 줄로 생명을 연결하고 피를 나누는 산사나이들의 우정은 멋있다. 세상사 모든 일이 이렇게 너의 생명과 나의 생명이 하나라고 생각하고 의리를 나누면 좋겠다.
이념은 변할 수 있다. 생각이 달라지기에. 많이 보지 않았는가. 그래서 생각이 다르면 적(敵) 취급을 하는 이념주의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몸으로 부딪치고 사랑하고 생명을 나누는 인간들이 내 친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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