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차관과 택시 운전기사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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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버스를 탄다. 오늘은 버스 안에 붙여놓은 ‘운전기사 폭행은 테러 행위입니다’라는 경고문이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요 며칠 동안 화제가 되어온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취중 택시기사 폭행 사건 때문일 것이다. ‘테러 행위’라고 온 세상에 광고해온 이렇게 어마어마한 행위를, 이 특수한 사람의 경우, 경찰은 기소도 하지 않고 아무도 눈치 못 채게 덮어주었다고 한다. 전문용어로 말하면 내사 종결이라고.
그 누구보다도 더 법을 준수하고 수호해야 할 법무부 차관까지 될 사람이 택시기사에게 욕설을 퍼붓고 물리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혹자는 사건이 일어난 11월 초에는 그가 공직에 있지 않고 민간인 신분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공공의 운전기사 보호를 위해 제정된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은 공직자와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는다. 더구나 이 사람은 오랜 기간 대한민국의 지체 높은 판사로 근무했을 뿐 아니라, 불과 얼마 전까지는 법무부의 법무실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한다. 더욱 웃지 못 할 일은 그가 법무부 법무실장 재직시절 이 특가법의 엄격한 집행을 강조하고 그간의 단속 실적까지 홍보했다는 사실이다.
어제(22일) TV를 보니 여당을 옹호하는 어느 변호사가 정차(停車)상태 택시에서의 폭언과 폭행은 특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므로 이는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중에야 이러한 주장이 일종의 가짜뉴스였음을 알게 되었지만, 국민이 고위공직자에 거는 기대를 생각한다면 제기된 상황을 기계적인 법 적용의 문제로 희석하여 왜곡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고위공직자에게는 높은 윤리의식이 요구된다. 정상적인 민주국가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1993년 클린턴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여성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기 위해 조 베어드 변호사를 후보로 지명했다. 그녀의 경력과 평판이 너무 좋아 여야를 막론하고 호의적인 후보였기에 조 베어드 변호사의 임명은 순조로울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그녀가 불법체류 외국인을 가사도우미로 고용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엄정하게 법 집행을 해야 하는 법무부 장관 자리에 아무리 사소한 사안이라 해도 불법행위를 저지른 사람을 앉힐 수는 없다는 비판과 여론에 따라 결국 후보자 자신이 스스로 지명 철회를 대통령에게 요구하게 되었다.
조 베어드 변호사의 사례에 비추어 보면 이 법무차관의 경우는 형사 처벌 대상 범죄라는 점에서 더욱더 무겁다. 문제를 법률적 차원이 아닌 고위공직자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 윤리의식이라는 잣대에 견주더라도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스스로가 겸허한 자세로 사태를 수습함이 옳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법을 지키지 않는 법무차관’은 받아들일 수 없는 수치이기 때문이다.
법률 위반 사안은 아니지만, 언론에 보도된 법무부 차관의 또 다른 언행 역시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게 만든다. 그는 사석에서 조국 전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를 겨냥해 “강남에서는 어차피 다 서로서로 추천서 써주고 표창장도 돈 주고 산다” 그리고 “사모펀드 투자도 다들 내부 정보 있으면 받아서 하는 거고 주식투자란 게 다 그렇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역시 엄정한 법을 집행해야 하는 기관의 수뇌부로서 심각한 윤리의식의 결여를 말해주는 징표가 아닐 수 없다. 아마도 그가 사는 세상은 일반 국민과는 다른 곳이 아닌가 싶다. 기억해야 할 사실은 국민이 원하는 법무부 차관은 국민과 함께 사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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