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협의 박물관 이야기 <9> 홀로코스트기념박물관(워싱턴)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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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정치>와 <사회변화의 동력>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는 <홀로코스트기념박물관>(United States Holocaust Memorial Museum)이 있다.
1996년 스미소니언에 머물 때 인근에 홀로코스트기념관이 있음을 알고 약간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 미국은 유대인학살과는 전혀 무관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해답은 역시 유대인공동체의 힘이었다. 1978년 34명의 민간인 유명 인사들이 기념관건립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이듬해에 카터대통령에게 건의하여 대통령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이어서 상하 양원의 지원을 받아 정부가 건립 부지를 확보해주었으며, 다른 한편 민간부분에서 대대적인 모금활동을 전개해 1993년 개관의 결실을 보았다. 모금에는 물론 유대인공동체가 큰 역할을 했다.
1979년 대통령직속 <홀로코스트위원회>의 의장에 임명된 엘리 위젤(Elie Wiesel)은 루마니아 태생 미국의 유대계 작가 겸 교수로, 그 자신이 열여섯이 되던 해에 가족들과 함께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던 직접적인 피해자였다.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은 아우슈비츠에서 죽었고, 위젤은 아버지와 함께 부헨발트로 보내졌으나 그곳에서 아버지도 사망했다.
전쟁 후 위젤은 프랑스에서 대학을 나오고 1955년 미국 뉴욕으로 이주하였으며 1963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그는 홀로코스트를 다룬 회고록 <밤>(La Nuit) 이외에 <새벽> <한 세대 뒤> <침묵의 유대인> 등 많은 저서를 펴냈고, 동시에 폭력과 억압,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사회운동에 적극 나섰다. 위젤은 이러한 공로로 1986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위젤은 노벨상 수락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평생의 바람은 나의 과거가 아이들의 미래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울림이 큰 이 한 마디에 홀로코스트기념관 설립의 당위성이 담겨있다.
워싱턴의 홀로코스트기념관은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관람객을 이끈다. 4층 건물인 기념관에 들어서면 방문객을 그룹 지어, 마치 수용소로 들어가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하는 ‘녹슨 철문’을 콘셉트로 한 대형 엘리베이터로 안내해 4층 전시관으로 올라가, 2층까지 연결된 전시실을 차례로 거쳐 내려가게 된다.
전시실은 연대기 순으로 나치의 등장에서부터 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유대인에 대한 탄압과 학살, 그리고 전후의 극복과정을 보여준다. 전시내용 중 어린이가 보기에 적합지 않은 부분이 있다하여 2층-4층의 전시는 12세 미만 어린이는 입장할 수 없으며, 어린이들을 위한 코너는 1층에 따로 마련해주는 배려가 돋보인다.
여담으로, 1996년 홀로코스트기념박물관 관람 중 관내의 마이크로 긴급대피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폭탄이 장치되었다는 협박전화가 와서 관람객들은 밖으로 나가 잠시 대기해달라는 방송이었다. 밖으로 나가 한 시간여를 기다린 후 허위신고였음이 밝혀졌지만, 유대인에 대한 혐오가 여전히 남아있음을 일깨워준 씁쓸한 경험이었다.
유대인을 항상 따라다니는 두 개의 개념이 <디아스포라>와 <홀로코스트>이다. 그래서 미국 이외의 여러 지역에서도 유대인 관련 기념시설들을 만날 수 있다. 독일 베를린에도 1999년 건립된 <유대인 박물관>(Jewish Museum Berlin)과 2005년에 만들어진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Denkmal für die ermordeten Juden Europas)이 있다.
베를린에 있는 이 두 개의 유대인 관련 기념건축물은 흥미롭게도 모두 유대인 건축가들에 의해 설계되었고, 둘 다 모두 건축학적으로 매우 높은 관심과 평가를 받는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유대인 박물관을 설계한 건축가는 해체주의 거장,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로, 그는 1946년 폴란드에서 태어나 미국에 이민한 유대인이다. 유대인기념물을 설계한 사람은 미국의 건축가 피터 아이젠먼(Peter D. Eisenman)으로 그 역시 유대인이다.
최협은 누구?
서울대학교에서 인류학을 전공하고 미국 켄터키 대학교에서 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남대학교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한국문화인류학회 회장, 대통령자문 21세기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부시맨과 레비스트로스>, <다민족 국가의 민족문제와 한인사회>(공저), <호남사회의 이해>(편저)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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