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의 주유천하> '72, 83'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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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세, 83세. 2020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나이다. 로버트 윌슨(83) 스탠퍼드대 교수와 그의 제자 폴 밀그럼(72) 교수. 이들의 나이가 나를 다시 자극시킨다. 60이 넘으면 은퇴하는 현실에서 그 나이에도 왕성한 연구 활동을 해서 세계 최고 권위의 노벨상을 수상하니 존경심이 앞선다.
우리나라 대학교수의 퇴직 연령은 65세. 그런데 60이 넘어가면 연구 활동, 저술 활동이 현저히 준다. 심지어 어떤 대학은 63세 부터는 교수의 의무인 학술논문 제출을 면제해 주기도 한다. 60세 이후 더욱 왕성한 지적 활동이 가능한데도 말이다.
이 말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확고한 사실은 아닐 테고 김형석 교수의 ‘100세를 살아보니’에서 읽은 내용이다. 그에 따르면 60부터 75세까지가 정신 연령의 절정기란다. 실수 없이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시기라는 말이다.
그의 말을 신봉하기로 한 나는 ‘지금부터 시작이야’ 라고 생각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워보기로 한다. 동양의 고전을 다시 정독하기로 목표를 세웠다. 논어, 맹자, 대학, 중용 그리고 역경, 사기열전을 읽기로 정했다. 물론 학부 전공이 철학이었던 터라 동서양 고전들을 읽지 않는 터는 아니었지만 다시 천천히 읽고 나름의 해석을 해보려고 한다. 고전에 나의 주석을 달아보자는 취지다.
성경도 그렇다.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종파가 달라지고 이교가 생긴다. 불경도 마찬가지다. 주제 넘는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세상은 어차피 내가 해석하는 대로 보인다.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공부라도 해서 나름의 시각을 정립하면, 최소한 건달, 양아치, 사기꾼, 협잡꾼, 표리부동한 인간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인가. 나의 책상에는 항상 명심보감, 도덕경 같은 책이 놓여 있다.
지인 가운데 ‘나이만큼 오르기’라는 카톡 상태 메시지를 항상 띄워놓는 이가 있다. 70세에 7천 미터의 고봉을 오르고, 80세에 8천 미터의 에베레스트를 오르겠다는 의지 아니겠나. 멋지다. 한계에 도전하는 그의 인생이 얼마나 멋진가.
그는 60세에 회사를 퇴사했다. 이유는 좋아하는 등산을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어서였다. 그는 6천 미터급 히말라야는 물론 남미 아콩가구아,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러시아 엘브러즈, 유럽의 알프스 몽블랑 등을 차례로 등정한 산악인이다.
산에 가느라 여러 번 퇴사를 한 그를 시간이 지나면 회사가 다시 찾았다. 얼마나 그의 능력을 높이 샀으면 두 번씩이나 사표를 던진 그를 회장이 불러들여 일을 시키는 것일까. 지금도 그는 투덜거린다. 회사 그만두고 산에 다니고 싶다고. 내가 말린다. “법인카드로 밥 좀 먹자”고. 그가 답한다. 싫다. “내 돈 내고 밥 사 먹는다.” 내 주위에 이런 멋진 친구도 있다.
100세 시대다. 어떤 이는 120세라고 한다. 나이만 먹으면 뭐하나. 세상에 쓸모 있는 존재가 되어야지. 거창한 말이 아니다. 가정에서는 애비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 사회에서는 모범시민으로 살면 된다. 직장에서는 나가려도 해도 못나가게 붙잡는 사람이면 최고다. 신체적으로 건강을 유지하면서 정신적으로 더욱 성숙해져야한다. 나한테 하는 말이다.
그런데 신문을 보면 정치판에서 ‘올드 보이’란 표현을 쓴다. 고 김영삼 대통령이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와 돌풍을 일으킨 적이 있다. 나의 생각은 적어도 이렇다. 세상은 남녀노소 골고루 잘 섞여 있어야 한다. 양성평등을 외칠 필요도 없이 조화로움이 최고다. 나이 많다고 물러나라면 미국 대선 후보 모두 물러나야 한다. 내년이면 트럼트 75세, 바이든 79세 아닌가. 바이든이 대통령이 된다면 80대에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셈이 된다.
나이 논쟁이야 말로 정말 쓸데없는 짓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면서도 우리 사회는 나이를 빌미로 퇴사를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거꾸로 나이가 어리다고 불이익을 줘서도 안 된다. 내가 최고경영자라면 직원 평가는 그들의 건강상태, 지식수준, 업무능력, 도덕성지수, 인성과 인격, 협동심 등으로 할 것이다.
나이가 인재를 퇴출시키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수도 연구 활동이 뛰어난 분은 70세, 80세에도 계속 연구를 할 수 있는 제도 마련과 후원이 필요하다. 기업인, 회사원도 마찬가지다. 정치인도 물론이다. 나이를 핑계로 경험 풍부한 정치인을 도태시켜서도 안 된다. 도덕성과 능력이 기준이다. 나이는 윗세대를 밀어내는 방편으로 이용되곤 한다.
‘올드 보이’란 과히 듣기 좋지 않은 표현을 언론이 써먹고 있다. 노벨상 경제학상 수상자의 나이 숫자 72, 83. 그들의 파이팅에 박수를 보낸다. 한국의 경제학자들. 기죽지 말고 노력해서 그 나이에 수상 한 번 해보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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