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의 주유천하> 의과대학 인문학 수업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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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책을 보내왔다. <의과대학 인문학 수업>. 자세히 보니 저자가 자신의 이름이 아니다. 그의 아들이 쓴 책이다. 더 자세히 보니 저자는 의과대학 재학생이고 공저자가 지도교수였다. 지인은 나처럼 대학교수다. 지인의 아들은 유명 사립대학 경영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다시 국립 의과대학에 입학했단다. 이 책은 인간관계로 엮인 임상 현장의 이야기를 의학 연구와 교육에서 활용하기 위해 개설한 ‘영화와 문학으로 보는 내러티브 의학’이라는 교양 강좌의 산물이었다. 수업에서 나왔던 학생들의 토론을 글로 정리한 것이었다. 정리자인 저자가 의대생이었고 지도교수였다.
한국 의료진의 수준이 세계적이라고 한다. 의료보험 역시 선진국 수준이라고 한다. 이번 코로나 방역에서도 세계의 모범이 되고 있다고 하니 가히 자부심을 느껴도 좋을 듯하다. 참고로 내 친구의 지인이 자식 자랑을 또 한다. 아들이 이제 30대 중반으로 전문의가 되었단다. 나에게 슬쩍 연봉을 물어보더니 아들이 월급 의사로 대구의 모 병원에 연봉 2억 4천만 원에 계약을 했단다. 30년 경력의 교수 연봉 1억 원과 비교하면 자괴감이 든다. 실은 1억 원도 적은 연봉이 아닌데도 말이다. 이러니 의사 하려고 난리 아닌가? 경쟁자가 많아지면 수입이 줄어드니 의사 충원 절대 반대 아닌가? 이번 기회에 그나마 의과대학에서 이런 영화를 통해 인간의 존엄과 사회복지제도의 모순에 대해 생각하는 수업을 가지는 것 만해도 다행으로 생각해야하나....
전공이 영화인 나로서는 반가울 수밖에 없다. 요즘 대학에서는 강의 텍스트로 영화를 매우 많이 활용하고 있다. 교수들이 사회복지 수업에서도 영화를 텍스트 삼아 강의를 하고, 법학 수업, 사회학 수업, 이과대학의 수학, 물리, 화학 수업에서도 교재나 부교재로 삼는 경우가 많다. 영화가 그만큼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는 반증이다. 영화는 인간관계, 사회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것을 대상으로 삼는다. 문학 또한 그러하다. 그런데 문학은 문자요 영화는 발화와 소리, 그림으로 전달하니 읽는 문학보다는 보는 영화가 인기가 좋은 것 같다. 실제로 문학작품을 읽은 후 그 내용을 가지고 수업하면 학생들의 반응이 시원치가 않다.
이 책은 희귀병 환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인공장기를 이용한 미래 세상의 모습, 대학시절 남미대륙을 모터사이클로 여행하는 의대생 이야기. 그가 후일 혁명가 체 게바라가 된다. 수술 실수로 환자를 잃고 자책감에 시달리는 의사 등 다양한 주제와 인물을 다룬 영화 19편을 소개하고 있다. 영국의 사회파 감독 켄 로치의 작품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부조리한 영국의 사회보장제도를 꼬집고 있다. 영화에서 주인공 블레이크가 심장미비로 사망하는 장면이 나온다. 책은 의과대학 저자들답게 ‘심장마비는 갑자기 찾아올까?’라는 소제목으로 독자들에게 의학적 상식을 제공하기도 한다. 아울러 저자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 라는 제목처럼 ‘나는 인간이야. 나를 인간답게 대접해줘’ 라는 절규가 들어있음도 적고 있다. 인간 존중, 인간 존엄의 정신을 그들 역시 놓치지 않았다.
대학시절 정외과를 다니던 후배가 있었다. 미국에서 초중고교를 나온 이 친구는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외국생활을 오래 한 친구다. 세련되고 호남형인 이 친구는 UN 사무총장이 꿈이었다. 그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형, 한국은 왜 똑똑한 친구들이 의대를 가지? 의사가 되면 자신은 편안한 생활이 보장되겠지. 그런데 국가나 국제사회를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려면 세계적인 경제인이나 외교관이 낫지 않아?” 그의 목표가 의사보다는 외교관이어서 그런 말을 내게 한 지는 모르겠다. 외국의 유명 CEO들을 보면 학부 전공이 문학, 역사, 철학, 고고학 등 인문학 출신이 의외로 많다. 기본을 공부한 후 그들은 경영대학원, 법학전문대학원 등으로 진학해서 성공한 경우다.
이번 공공의대 신설과 의과대학 증원 문제를 놓고 의료계의 파업과 의대생의 동맹휴학을 놓고 찬반이 엇갈렸다. 여기서도 인간의 이기심을 엿본다. 내 밥그릇 뺏길까봐 미리 아우성이다. 예전에 사법시험을 없애고 법학전문대학원 신설과 변호사를 증원하는 안이 나오자 법조계에서 난리 친 것을 기억한다. 단순히 보자. 의사 많으면 도서방방곡곡 의료서비스가 늘어날 것이다. 변호사 많으면 법률서비스 혜택이 늘어날 것이다. 미국에 가보니 변호사 천지였다. 상가 계약, 부동산 계약에도 변호사가 필요했고 단순한 교통사고, 금전관계, 배상문제 등 일상의 사소한 모든 일에 변호사가 개입해 있었다. 말 그대로 법 없이 못사는 사회였고 변호사가 동네 대서소 서기 정도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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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해(金鎭亥)는 누구?
1993년 영화 '49일의 남자'로 데뷔한 영화감독이자 현재 경성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로 예술종합대학장을 맡고 있다. 연세대학교와 뉴욕테크대학원 (MA)을 졸업하고, 미주 중앙일보 기자·오로라픽쳐스 대표이사·홍익대학교 조형대학 우대겸임교수 등을 거쳤다. ‘디지털 시네마’ ‘시나리오의 이해’ ‘메가폰을 잡아라’ '문화는 정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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