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위태로운 행보, 연금사회주의와 대기업 백기사의 갈림길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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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 YG 엔터테인먼트, 대한항공. 이 세 기업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 기업들은 모두 일련의 논란들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각각 제일모직과의 합병, 버닝썬 사태, 고(故) 조양호씨의 사내이사직 박탈로 큰 이슈가 되었다. 주목할 것은 이들은 모두 국민연금공단이 주주로 있는 기업이라는 것이다.
국민연금공단의 지분율을 살펴보자. 대한항공의 경우 11.02% (2019.03.29), YG엔터테인먼트의 경우 5.66%(2019.03.12.), 삼성물산의 경우 5.96% 로, 세 기업 모두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대한항공 전 사내이사의 조양호 씨의 연임 실패에 이은 사망 소식으로 인해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연이어 도마에 올랐다. 이 글의 논점은 국민연금이 고(故) 조양호 씨의 연임에 반대한 사실의 옳고 그름의 여부가 아니다. 국민연금이 정말로 국민의 의사를 대표해서 의결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는지를 논하려 한다.
왜 국민연금공단은 대기업의 주식을 구매하는가?
물론 국민연금은 표면적으로 기업의 주주이기 때문에 의결권을 행사할 권리를 가진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우량주를 구매하는 걸까? 그 원인을 밝히기 앞서 국민연금공단이 어떤 목적성을 띤 기관인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공단은 1987년 10월 19일에 설립된 준정부기관이며, 국민이 나이가 들어 생업에 종사할 수 없게 되거나 불의의 사고로 사망 또는 장해를 입었을 경우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연금을 지급하고 국민복지 증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즉 처음부터 ‘국민의 생계보장’을 위해 설립되었으며, 이를 가장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국민연금의 고갈 시점을 향후 70년 후로 추정한 정부의 주장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출생률 및 생산가능인구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는 현재, 1000원을 납부할 때 2000원 정도를 받을 수 있게 설계된 현행 국민연금 제도를 그대로 두면 ‘땜질식 대책’이 나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 68세인 수급 연령을 계속해서 늦추거나 보험료를 올리거나 납부기간을 연장하는 등의 대책이 이에 해당한다.
그렇기에 정부는 국민들이 납부한 국민연금으로 채권에 투자하고, 우량주를 구매한다. 투자수익률을 위해서다.
국민연금의 투자수익률은 과연 건전한가?
한국납세자연맹에 따르면, 국민연금공단의 3차 재정추계에 의한 지난 5년동안의 투자수익률, 경제성장률의 가정치와 실제는 각각 1.3%, 1.14% 의 차이를 보였다. (2018.8.16. 자료 참고) 1.3%이라는 수치는 8조가 넘는 투자액 마이너스를 의미한다. 민감도 분석은 1.1%정도의 차이가 연금 고갈 시기를 3-5년 앞당긴다고 본다. 최근 5년치만 고려해도 정부가 예측한 ‘70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단 국민연금공단의 투자 역량에 달려있는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2018년, 주요국 무역분쟁과 통화긴축 등으로 인해 금융시장이 약세를 보였고, 이에 따라 국민연금은 –0.92%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5조 8천억원 이상의 손실을 본 것이다. 이는 국민연금공단이 직접 제공한 <수익률 설명자료, 2019.1월>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예금보험공사의 경우 은행이 파산하더라도 예금자가 최대 5천만원까지 예금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한국경제가 극단적으로 악화되어 국가 부도 사태가 발발한다면 국민들은 납부한 원금을 보장받을 길이 없다. 공적연금이라는 국민연금의 성격상 국민 이름으로 된 연금 적립금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사보험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점으로서, 국민연금의 존립여부에 대한 의문까지 들게 하는 대목이다.
연금사회주의 VS 대기업의 백기사
연금사회주의, 대기업의 백기사. 이는 모두 언론에서 보도된 국민연금의 수식어다. 보수언론들은 3월 27일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안 부결에 국민연금이 개입한 사실을 비판하기 위해 ‘연금사회주의’ 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반면 국민연금공단은 2015년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에 동의한 사실에 대해 ‘대기업의 백기사’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는 정반대의 의미를 가진 수식어다. ‘연금사회주의’는 국민연금이 기업의 오너를 끌어내렸다며, 그 위력이 지나치게 높다는 주장을 시사한다. ‘대기업의 백기사’는 국민연금이 오너의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을 비판하는 용어다. 이렇게 상반된 관점에서 만들어진 수식어지만, 우리는 이를 통해 공통된 한 가지 의문을 이끌어내야 한다.
바로 국민연금은 정부의 의사와 무관하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국민연금을 통해 정부가 기업의 의사결정에 개입하는 것은 국민연금의 본래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공단이 해야 할 일은, 국민들이 납세한 돈을 국민복지를 위해 적절히 사용하는 일이다. 만약 국민연금이 주주총회에서 찬성 혹은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여 그 영향으로 해당 기업의 주가가 떨어진다면, 그래서 운용수익률이 감소한다면 이를 결코 국민복지를 위한 일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움직이는 돈은 바로 국민의 돈이며, 후에 다시 국민에게 2배로 돌려주어야 할 돈이기 때문이다.
주주(株主)가 주주 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이다. 그러나 국민연금공단이 주식을 대량보유하고 있다고 하나, 그들은 근본적인 주(主)가 아니다.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면 국민 5천만의 의견을 반영해야 마땅하다. 국민연금이 누구의 돈으로 주주가 되었는가를 명심해야 한다.
국민연금공단은 국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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