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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근무 환경, 여기는 방송업계입니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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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3월29일 17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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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고에 흔들리는 한국 드라마들


지난 3월 21일 SBS TV 수목 드라마 ‘빅이슈’에서 특수효과가 마무리되지 않은 장면이 그대로 방영되는 방송사고가 발생했다. 21일 방영분에서는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 다 지워주세요’, ‘창 좀 어둡게’와 같은 특수효과 요청 자막이 그대로 노출됐다. 특수효과가 촬영 장면과 일치하지 않거나, 아예 덧입혀지지 않은 채 방영된 장면도 있었다. 무려 10개의 장면이 후반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은 채 지상파 방송 전파를 탔다. 다음날 SBS는 시청자 게시판을 통해 “촬영 및 편집에 더욱 최선을 다하겠다.”고 사과했다. 이러한 드라마 방송사고는 ‘빅이슈’가 첫 번째 는 아니다. 2017년 12월 방영된 tvN 드라마 ‘화유기’ 2화에서도 유사한 방송사고가 발생했다. 배우가 매달린 와이어가 지워지지 않은 채 그대로 방영이 됐다. 심지어 특수효과 작업 지연으로 제작에 차질이 생겨, ‘화유기’는 조기 종영 되기까지 했다.

 

고강도 노동을 ‘갈아 넣어’ 이뤄지는 턴키계약


영미권 드라마와 비교했을 때 사전제작 비율이 현저히 낮은 한국형 드라마에서 편집 실수나 작업 미완으로 인한 방송사고는 아주 빈번하게 일어난다. 제작사나 방송사 측에서는 이러한 방송사고를 ‘기술적 결함’으로 치부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최근의 한국 드라마 방송사고들은 근로자의 태만이나 우연한 실수 때문이라기보다는 방송업계 자체의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속칭 ‘생방송 드라마’라고 불리는 한국 드라마 제작환경은 전반부 방영 중에 후반부 편집이 동시에 이뤄질 정도로 열악하다. 

 

드라마는 제작 기간이 제작비와 직결되기 때문에 방송사와 제작사는 그 비용을 최대한 절감하려 한다. 관행적으로 택하는 방법이 바로 ‘턴키(Turn Key)계약’ 방식이다. ‘턴키(Turn Key)계약’이란 열쇠를(key) 돌리면(turn) 모든 설비가 가동되는 상태로 인도한다는 뜻으로, 작업을 의뢰받은 업체가 제작의 전 과정을 책임지고 완료한 후 의뢰자에게 넘겨주는 일괄수주방식을 뜻한다. 대부분의 한국 드라마들은 외주업체와 턴키방식으로 계약을 체결한다. 비용절감과 효율성 차원에서 선택한 계약 방법이지만, 이로 인해 스태프들의 일일 노동시간은 무한정 늘어나게 된다. 대다수 스태프들은 일급 단위로 돈을 받기 때문에, 하루 노동시간을 최대한 길게 하는 것이 비용절감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방송업계의 지옥같은 노동환경


방송 콘텐츠 업계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오래전부터 문제가 되어왔다. 지난 2018년 2월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 TF’가 드라마 제작 종사자 11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명 중 6명은 하루 20시간 이상, 3명은 15시간 이상 일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상 거의 모두가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에 일하는 셈이다. 지난 2016년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이한빛 PD 자살 사건으로 방송 제작 현장실태가 여실히 드러났다. 이 PD는 유서에서 일 20시간 이상의 장기 노동, 비정규직 차별 등을 고발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열악한 방송 제작환경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지난 2017년에는 tvN 드라마 ‘화유기’의 미술 스태프가 3m 높이에서 조명을 설치하는 새벽 근무를 하다가 추락해 하반신 마비를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2018년 8월에는 SBS 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의 스태프가 내인성 뇌출혈로 사망했다. SBS 측에서는 과로사가 아닌 스태프 개인의 지병으로 인한 사망사고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해당 스태프가 사망 직전 5일간 40도를 넘나드는 날씨에서 총 76시간 동안 노동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과 노동으로 쌓인 피로를 그의 사망 원인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개정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방송업계


2018년 2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2018년 7월 1일부로 주당 근로시간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어들었다.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올해 7월부터는 기업 규모에 상관없이 방송업계 모든 사업장이 주 68시간을 초과해 근무할 수 없게 된다. 그와 동시에 ‘방송업’과 ‘영상·오디오 기록물 제작 및 배급업’이 특례업종에서 삭제되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개정근로기준법에도 불구하고 방송 제작업계 근로자들의 근무환경은 쉽게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8년 2월 조사 결과에 따르면, 드라마 제작 노동자 중 85%는 프리랜서/계약직으로 구분되어 방송사 및 외주업체와 다단계 하청계약을 맺고 있다.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 TF, 드라마 제작 종사자 112명 대상) 스태프 대부분이 근로기준법상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아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방송 제작현장은 노동법의 사각지대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개정근로기준법이 실효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근로계약 형식보다는 노동현장의 실질을 따져 방송 제작업계 종사자들의 ‘근로자성’을 판단해야 할 것이다.

 

반드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방송사고들


한류 열풍으로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높아지고 해외 수출도 활발해지고 있는 반면, 드라마 방송사고는 더욱 잦아지고 있다. 대다수의 한국 드라마는 시청자 반응을 살펴 유연하게 스토리를 전개하기 위해 사전제작 방식을 피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에 쫓겨 스태프들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현 드라마 제작 상황에서, 방송사고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드라마의 사전제작 비율 확대, 방송제작환경의 실질적 개선은 비단 방송 제작업계 근로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방송 제작업 근로자에 대한 법적 보호는 결국 한국 드라마의 전반적인 품질 및 경쟁력 향상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스태프들의 노동력을 갈아 넣는 쪽대본, 쪽잠과 밤샘 촬영의 관습을 없애고, 한국 드라마의 전반적 제작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방송관계자들의 책임감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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