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명분이 실종된 우리 정치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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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1월18일 17시40분
  • 최종수정 2019년09월03일 15시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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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무소속 이용호, 손금주 두 의원의 민주당 입당이 불허되었다. 사유는 다음과 같았다.

 

신청인들이 우리 당의 정강정책에 맞지 않는 활동을 다수 해왔다는 점이 확인됐고 대선과 지방선거를 통해 타당의 주요 직책 간부로서, 무소속 신분으로서 우리당 후보들의 낙선을 위해 활동했으며 지난 시기 활동에 대한 소명이 부족해 우리 당원들과 지지자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책임윤리와 신념윤리

 

막스 베버는 자신의 저서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인이 갖춰야 할 자질에 대해 언급한다. 열정, 책임감, 균형적 판단이 그 자질이다. 열정은 단순히 흥분만을 하는 상태가 아니다. 이는 열정적으로 헌신함을 의미한다. 열정이 있어도 책임감이 없다면 훌륭한 정치인이 될 수 없다. 대의를 위한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또한 사물과 사람에 대해서 일정한 거리를 둘 수 있는 균형적 판단이 필수적이다.

 

이밖에도 베버는 신념윤리와 책임윤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떻게 보면 사회적으로 가장 많이 인용되고, 책의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신념윤리는 정치인의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노선이라고 볼 수 있겠다. 책임윤리는 어떤 의도로 정치행위를 했든지 상관없이 그 행위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다. 베버는 이어 정치인에게는 신념윤리보다는 책임윤리가 더 강조된다고 주장했다.

 

베버의 책을 읽으며 우리나라 정치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과연 신념윤리보단 책임윤리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가? 아니 애초에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가지고 정치를 하는가? 최장집 교수의 일침이 떠오른다. "우리나라 정치인은 신념윤리도 없다." 책임윤리가 신념윤리보다 중요하다고 말하기 이전에 애초에 신념윤리조차 없다는 것이다. 뼈아픈 말이다. 우리나라 정치인을 다 알지 못하기에 일반화할 순 없겠다. 그러나 언론에 자주 등장하여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정치인들 중 신념윤리조차 가진 정치인이 얼마나 될까?

 

신념도, 책임도 없는 우리 정치

 

지금 원내정당의 이름을 완벽하게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의 정당들은 수없이 많은 분당, 합당을 거쳐 또 다시 신당을 창당하는 희한한 구조다. 이는 특정 정치세력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치인들이 당적을 변경하거나, 성향이 맞지 않는 정당들이 합종연횡을 할 때마다 그것을 관통하는 것은 결국 소위 현실론이었다. 결국 당을 옮겨야 계속 정치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누구를 위해 정치를 하는 것인가?

 

물론 정당을 바꿀 수 있다.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바꿀 수도 있다. 보수에서 진보로, 진보에서 보수로 전향한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정치인이라면, 적어도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자신의 주장을 바꿀 때에는 설명이 필요하다. 설득력 있는 이유로 국민들을 납득시켜야한다. 국민의 표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 하지만 정치적 책임을 지는 정치인을 찾기란 쉽지 않다.

 

정치선진국이라고 불리는 영국, 미국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은 모습을 쉽사리 찾아보기 힘들다. 과거 힐러리와 오바마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치열하게 맞붙었고, 씻을 수 없는 정치적 앙금이 생겼지만, 힐러리가 탈당하여 공화당으로 가거나 신당을 창당하진 않았다. 영국 노동당 당수직을 걸고 밀리밴드 형제가 치열하게 싸웠지만, 형 데이비드는 선거에서 지고도 탈당하지 않았다. 결국 영국이나 미국과 같이 정치선진국들이 지금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정당정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형식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정당정치는 굳건한 고목처럼 버티고 있다. 다시 말해 힐러리가 탈당하지 않은 것은, 힐러리에게 민주당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중요한 자신이 정치를 하는 가치이자 명분이기 때문이다. 결국 힐러리의 민주당이 아닌 민주당의 힐러리인 것이고, 힐러리라는 정치인은 민주당 밖에서는 존재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혐오를 넘어 참여로

 

이런 식의 정치는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혐오만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혐오는 결국 국민과 국가에 손해다. 정치권력은 그 힘이 매우 세다. 그 힘이 소위 선한 권력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중요하지 않다. 힘이 세다는 이유만으로 그 자체로 견제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선한 권력도 언제든지 부패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혐오 현상은 국민들이 정치권력을 견제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정치인들이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가지고 행동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정치혐오'가 아니라 '정치참여'를 하면 된다. 엉뚱한 소리 같지만 정치가 싫을수록 관심을 가져야한다. 그래야 바꿀 수 있다. 정치참여는 꼭 정치인이 되라는 것이 아니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자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에서의 투표가 가장 좋은 예시다. 이러한 직접적인 행동이야말로 정치인들이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가지고 정치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향이다. 이것이 우리 국민들이 나아가야 할 '우리의 길'이다.

 

아직까지도 적폐청산이라는 키워드가 매우 화제다. 정치영역에서 굳이 적폐를 뽑자면, ‘정당정치를 훼손하는 일이 적폐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다수의 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일부 정치인들의 잘못된 결정으로 우리나라의 정당정치는 심각히 훼손되어 놀림거리가 되어버렸다. 덧붙여 부디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정당을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만 보지 말기 바란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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