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픈 청춘이 ‘꼰대’와 ‘위선자’에게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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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1월18일 17시30분
  • 최종수정 2019년01월18일 13시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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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 꼬리표를 떼고 사회인이 될 준비를 막 하기 시작한 24살은, 사람의 수명을 24시간에 비유했을 때 오전 7시 12분이라고 한다.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의하면 이는 "이제 집을 막 나서려는 시각과 비슷하다"라고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제 막 집을 나서는 24살 젊은이는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른다. 어디로 출근할지, 아니 출근을 해야 할지 다른 일을 할지 등, 사회로의 '첫발'을 어떻게 떼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어떻게든 집에서 나와야 하는 시기인 것이다. 첫 단추인 만큼 숱한 고민을 하면서, 크게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까지 청춘은 숙명적으로 안고 있다. 


 햄릿은 운명을 받아들일 것인지를 고뇌했고, 조자룡도 포부를 어떻게 실천할지에 대한 고민을 했다.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고자 하는 청춘의 방황은 오래전부터 숙명으로 내려온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라'라고 하지만, 그것마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면 치열한 자아성찰이 동반되어야 하는데, 고작 몇 년 경험해본 사회생활로 '이게 내 길이다!' 하기는 정말 어렵다. 어렵게 꿈을 찾았다면, 다음은 꿈에 대한 기회비용을 계산하는 일이다. 올인할지, 현실과 타협해야 한다면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을지...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다. 꿈이 있어도 문제, 없어도 청년들은 고민한다. 

 이러한 숙명적인 고민이 또한 청춘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래서 이 시기를 거쳐간 어른들은 자신들의 경험으로 이들이 숙명적인 고민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기를 바랄 것이다. 본인의 후회와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실된 조언과 지혜를 나눠주고 싶은 마음에서 김난도 교수 역시 책을 집필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분명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었고,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교정을 나서는 그대에게' 등을 읽으면서 그런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배움과 학생, 또 교육의 장인 대학에 대한 그의 고찰을 읽으면서 교육자로서 학생들이 청춘을 현명하게 마주했으면 하는 마음을 느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발간 9년째 되는 올해는, 대형 서점에서 이 책을 찾기가 어려웠을 정도로 그의 조언이 사회에서 외면받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무시하고 개인의 노력만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주로 이러한 이유로 소위 진보 논객이라 불리는 이들에게 집중포화를 맞은 것을 보면, 이는 세대 갈등의 문제가 아닌 생각의 차이이다. 생각의 신구 대결, 즉 진보와 보수적 가치의 입장 차이라고 볼 수 있다. 김난도 교수가 얘기하는 '치열한 자아성찰'을 통한 청춘의 현명한 선택은 곧 개인의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다소 보수적인 담론과 연결된다. 중산층으로서 핵가족을 꾸리며, 열심히 일하는 '짱구 아빠'에게 느껴지는 묘한 경외심 등이 이러한 전통적 가치를 대변한다. 그러나 구조적 문제가 겹겹이 쌓이면서 이러한 보수적 가치들도 흠이 갔다. 지켜야 할 가족의 개념이 파편화되기 시작했고, '수저론', '헬조선' 등의 유행어가 생기면서 '해도 안된다'라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에 사회의 변화를 먼저 요구하는 진보 논객들에게 "답은 그대 눈동자 속에 있다" 등의 말이 곱게 들릴 리가 없다. 

 미국의 고유한 정체성이라고 여겨지던 '아메리칸 드림'과 이에 대한 비판이 이와 비슷한 양상의 대결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자유와 평등을 토대로 세워진 미국에서는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간단한 이념이다. 거지 출신이었지만 성실하게 일한 결과 신사로 거듭나게 되는 호레이쇼 앨저의 '넝마꾼 딕'(Ragged Dick)이 대표적이다. 소년 딕이 자라서 중산층 가정을 꾸리고, 제2의 록펠러로 자수성가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월남전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이 발전하면서 역시 전통적인 개념, 이상들이 입체성을 띠게 되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한 사회가 되고, 또 평등을 보장했던 국가에 대한 조건 없는 애국심의 전체주의적 면모가 드러난 것이다. 개인적으로 정말 재미있었던 영화 '폴링 다운'에서 주인공은 극 중 내내 '미국의 고유한 정신'의 소멸과 변질을 부정한다. 그러나 그가 꿈꿔왔던 모든 아메리칸 드림, 즉 단란한 가정과 경제적 안정은 무너지고 국가는 결국 끝까지 그를 지키지 못한다. 이러한 영화들로 대표되는 진보적인 도전들이 '노력하면 된다'라는 보수적 전제를 끊임없이 위협해왔다. 김난도 교수의 자기 계발서를 놓고 벌어진 진영 간 다툼은 이러한 맥락을 공유한다. 

 이러한 다툼이 결국 청년들의 삶을 더 낫게 해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도 않다. 문제를 밝혀낼 정보에 더 접근성이 많은 사람, 직접적으로 법을 제정하고 수정하는 사람, 사회의 관계자들은 청년들이 아니다. -- 어느 쪽 진영이 세를 잡아도 현상은 나아지지 않는다.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고 변화를 이상으로 꿈꾸어야 할 사람들이 정권을 잡았지만 고용률은 사상 최저점을 찍었고, 채용비리 역시 끊이지가 않는다. 사회적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그저 앞으로 열심히 나아가라고 하는 꼰대나, 구조적 문제를 외면한다고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어놓고도 적폐를 계속 쌓는 위선자나 청년들에게는 다 똑같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청년들이 살기 참 힘든 요즘이다. 제기되는 문제는 쌓여가는데 막상 해결은커녕 나날이 심화만 되고 있으니, 현실도피라 할지 몰라도 힐링이나 받겠다는 마음으로 한물간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는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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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1월18일 17시30분
  • 최종수정 2019년01월18일 13시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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