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삽시다 - 스물넷 청년의 최저임금 이야기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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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1만원 논의
2016년 6월 현재, 대한민국 법정 최저임금은 시급 6,030원, 월급은 126만원(월 209시간 기준)이다. 그리고 최근 최저임금위원회는 이달 28일 마무리를 목표로 전원회의를 연이어 개최하며 내년도 최저임금을 책정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논의 중이다. 경영계는 조선업계의 구조조정 등으로 인한 중소기업의 경영난을 근거로 최저임금 동결 안을 내놓았으며, 노동계는 내수부양을 위해 최저임금으로 1만원을 제시했다.
최저임금 1만원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 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4.13 총선 당시만 하더라도 원내·원외정당의 상당수가 최저임금에 대한 공약을 제시했다. 새누리당은 2020년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하여 시간당 최고 9,000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2020년까지 1만원, 정의당은 2019년까지 1만원의 최저임금이 책정되도록 하겠다고 하였으며, 노동당의 경우 ‘최저임금 1만 원법’을 국회 제 1호 입법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청년들도 최저임금 논의에서 자유롭지 않다. 청년유니온과 알바노조 등 청년들이 중심이 된 단체들도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주장을 적극적으로 내놓고 있다. 세상에 발생하는 대부분의 현상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최저임금 인상도 마찬가지다. 거대 정당에서 공약으로 제시할 정도로 큰 이슈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현재의 최저임금에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최근에는 군복무를 마치고 부모님 집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대학생활을 위해 수도권에서 혼자 생활하던 나의 20대 초반은 제법 바쁜 날들의 연속이었다. 흔히 대학생들의 ‘바쁜 삶’이 그러하듯 연수도 다녀오고, 배낭여행도 떠나고, 토익 학원을 다닌다거나 스펙을 쌓으려고 이것저것 모두 손을 대는 시간이었다면 무척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다달이 들어가는 자취방 월세에, 어떻게든 먹고 살겠다고 무시할 수 없는 식비. 가끔 친구들과 거하게 술이라도 마시는 날에는 (그래봤자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고 2차로 노래방을 가는 것이지만) 잔뜩 취한 와중에도 머릿속으로는 통장 잔액을 계산하기 바쁜 것이 내 자금사정이었다. 학자금대출이나 휴대폰요금 같은 것을 생각하면 생각은 더욱 복잡해졌다. 결국 나는 ‘언제나’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위치의 사람이었다.
주말에는 전단지를 붙였고, 가끔 돈이 필요할 때는 물류센터에서 택배 상하차를 했다. 그렇게 귀한 주말을 보내면 많게는 하루에 7만 원 정도를 벌 수 있었다. 물론 잠을 포기해가며 새벽에 일 할 때 버는 돈이었다.
결국 내가 ‘주 수입원’ 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평일 오후에 꼬박꼬박 출퇴근하는 학원 아르바이트였다. 학원에서 내가 하는 일은 다양했다. 시험기간의 자습감독, 여러 과목의 오답정리, 보충수업이 필요한 학생의 관리, 심지어는 다짜고짜 한국사를 가르치라며 몇몇 학생을 묶어서 떠맡기기도 했다. 그렇게 받는 돈은 시급 6천원. 하루에 5시간씩 한 달을 꼬박 나가면 약 70만 원 가량이 개인구좌로 들어왔다.
약속이 없는 주말에 일을 조금 더 하면 한 달에 필요한 방세와 생활비, 술 한 두어 번 마실 수 있는 용돈, 딱 그 정도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13년 당시 최저임금은 내가 받는 시급보다 훨씬 적은 4,860원이었다.
청년의 한 달, 얼마나 필요한가
서울연구원은 지난 2013년 ‘서울시 거주 대학생의 주거비 부담능력 분석’(서울시립대 배병우 저)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서울 소재 대학생의 월평균 주거비 지출액은 31만 7천원, 식비와 의류, 교통비, 통신비 등의 생활비는 월평균 37만 8천원으로 조사되었다. 또한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조사한 4년제 대학의 1인당 평균 등록금은 667만 5천원으로, 한 달에 55만 6천원 꼴이다.
이 조사들을 바탕으로 대학생 한 명이 한 달에 필요한 금액을 추산하면 대략 125만원이 된다. 근무시간을 월 209시간으로 산정한 올 해 최저임금 126만원에 가까운 수치이다. 서울연구원의 연구 자료가 2013년의 조사를 바탕으로 하였기 때문에, 2013년부터 2016년까지의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현재는 더 많은 금액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학교 수업도 들어야 하고, 취업을 위한 스펙도 쌓아야 하고, 학원도 다녀야 하는 대학생들이 한 달에 209시간을 근로한다는 것은 무척 요원한 일이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렇다보니 대학생 수입의 80%가량이 부모에게 받는 용돈이라는 통계까지 나온다. 사람은 저마다 각기 다른 사연을 갖는다. 부모에게 선뜻 손을 벌리기 어려운 청년들도 있다. 또한 청년에는 대학생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직장을 다니는 청년도 있을 것이고, 공부를 위해 고시촌에서 생활하는 청년들도 있다. 그들의 상황을 위의 통계와 같은 맥락에서 보는 것은 어렵다. 분명한 것은 오늘날의 최저임금은 청년들의 삶에 충분치 않다.
사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당장 최저임금을 만원으로 올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자영업자들의 인건비 부담이나 구조조정 등 최저임금인상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근거도 고려해야한다. 거대정당들이 즉각 인상 대신 몇 년의 기한을 두고 점차적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하겠다고 주장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이 논의는 단순히 최저임금이 얼마인가에 대한 논의에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최저임금과 함께 논의되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 바로 노동환경이다.
최저임금은 말 그대로 ‘노동의 대가로 최소한 지급해야 하는 임금’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르바이트나 일용직은 10원단위까지 최저임금에 맞추고 있다. 심지어 최저임금보다 적은 임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많은 청년들이 ‘너 아니어도 할 사람 많아’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적은 액수의 임금을 감수하는 것이 현실이다.
최저임금을 제대로 지급한다고 해서 만족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야간수당, 추가수당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며,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는 경우도 많다. 최저임금에 대한 논의는 곧 인권에 대한 논의, 인격적 대우에 대한 논의로 이루어져야 한다. 빈곤 문제와 열악한 근로환경은 최저임금 인상이 아니라 복지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최저임금을 받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기는 현실을 생각하면 최저임금 1만원 보다 더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인격이고 환경이며 존중이고 사람의 삶이다.
같이 삽시다
최저임금과 직결되는 사람들은 주로 사회적 약자들이다. 청년 뿐 아니라 여성, 학생, 저학력자, 서비스직, 비정규직, 일용직 노동자 등의 사람들에게는 최저임금이 곧 실질임금이다. 그들은 ‘갑(甲)질’이라는 단어가 너무나 익숙해진 우리 사회에서 ‘을(乙) 중의 을’이다. 우리 사회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을’들이 열악한 노동환경과 낮은 임금으로 인해 주변의 상권을 충분히 이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수시장은 어려워지고 자영업자들은 몰락하는 것이다.
사회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기적인 연결체다. 약자가 살아야, 모두가 산다. 언제까지 약자들의 헌신으로 우리 사회가 굴러간다는 이야기를 할 셈인가. 헌신을 강요하는 사회는 과연 건전한 사회인가. 수출 위주의 경제정책 때문에 국내의 사회적 약자들의 임금을 동결하자는 논리는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지난 5월 28일.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열아홉 살 김 군이 전철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어린 청년의 죽음 앞에 우리가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앞으로 다시는 이런 사고가 없었으면 좋겠다? 낮은 인건비와 많은 업무량이 사고를 불렀다? 부족한 인력이 젊은 청년을 사지로 몰았다? 미안하다? 이미 세상을 떠난 이에게 전부 무의미한 말이다.
김 군의 죽음이 메피아를 비롯한 거대자본에 대한 문제의식을 형성했고, 청년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최저임금에 대한 논의 들을 활발하게 이끌어 낸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것들로 위안을 삼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목숨이고 안타까운 사고이다. 최저임금은 삶 자체와 직결된다. ‘먹고사니즘’이라는 말이 통용되는 사회다. 먹고 사는 것을 이념으로까지 여기는 고단한 사회이다. 최저임금은 곧 약자들의 인권이고, 우리 사회 가장 낮은 곳의 이야기다. 현실이다.
같이 살자. 기왕 같이 사는 세상, 조금 더 행복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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