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로운 청년들, 자기계발과 사회비판 사이에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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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청년기자’ 코너란?
안녕하세요. 국가미래연구원 청년기자 김지원입니다.
여러 주제에 대해 찾아보고 공부를 하며 기사를 써보다가, 먼저 제 스스로의 식견이나 소양을 키우는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덩어리째의 지식을 담고 있는 ‘책’들을 읽고 소개하는 ‘책 읽는 청년기자’ 코너를 통해 여러분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이 코너를 통해 제가 열어본 세상 한 귀퉁이를 또래 청년들께 소개해 드리고, 독서를 통해 사회를 이해하고 물음을 던지는 성장과정을 인생 선배들께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불안한 여유, 긴장된 휴식
2월의 어느 주말 오후, 이제 막 스물한 살이 된 대학생 A는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깨어납니다. 한 손으로 휴대폰을 집어들고 페이스북 알림을 확인합니다. 후배들의 고등학교 졸업식 사진들이 뉴스피드에 가득하네요. 축하 댓글을 남기던 A는 불현듯 조급함을 느낍니다. 내가 고등학교를 떠난 지 벌써 한 해가 흘렀단 말이지, 벌써 대학에서의 첫 겨울방학이 끝나고 있다니.
A는 지난 1년 간 성공적인 대학생활의 지표로 꼽히는 학점관리, 동아리활동, 대외활동 등을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해내려 아등바등 노력해 왔습니다. 겨울에는 계절학기 강좌를 수강했을 뿐만 아니라 봉사활동을 다녀오고 영어공부도 한 걸요. 남부럽지 않은 알찬 새내기 생활을 꾸려온 A지만, 겨울 일정이 끝나 침대에 누워 빈둥거리고 있는 현재의 자신이 한심하게만 느껴집니다.
가을에 시작하는 미국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합격했다는 친구의 카카오톡 메시지가 액정에 반짝 떠오릅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 겨울부터 동기 여러 명이 CPA 시험 준비를 시작하고, 2월 말에는 몇 년 위의 선배들이 행정고시와 사법고시를 보기로 예정이 되어있다던 소식이 떠오릅니다. 바로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친구는 어학연수 자금 마련을 위해 과외를 너댓 개나 하고 있답니다. 그렇다면 나는 개강 때까지 남은 며칠을 이렇게 빈둥거리며 보내도 되는 걸까,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대학생 A의 이야기는 단지 A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현재의 대학생은 ‘실패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대학생들은 스무 살이 되자마자 사회에 안정적으로 자리잡기 위해 자기계발이라는 번듯한 이름의 궤도에 밀려들듯 몸을 싣습니다. 은수미 의원의 필리버스터 연설에 따르면 한 포털사이트에 ‘청년’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했을 때 연관 검색어로 젊음과 정열, 축제와 사랑, 욕망이 아니라 바로 취업을 위한 자기소개서 ‘글자 수 세기’가 가장 먼저 뜬다고 합니다. 모두가 죽을힘을 다해 앞으로 달려 나가는 끝없는 레이스에서 편안한 삶과 멋진 이상은 이제 사치가 되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자기계발의 레이스에는 직장인들도 열외일 수 없습니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2013년 7월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자기계발 강박증 때문에 받는 영향으로 ‘자기계발을 해도 항상 부족함을 느낀다’, ‘쉴 때도 마음 편히 쉬지 못한다’, ‘자기계발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 받는다’, ‘매일 자기계발 안 하면 불안하다’ 등을 차례로 꼽았습니다. 자기계발이라는 끝없는 레이스에 대학생과 비취업자에서 직장인까지, 청년들이 너도나도 동참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모든 원인은 ‘노오력 부족’이다
사회학자 오찬호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에 따르면, 청년들이 자기계발의 레이스에 무작정 매몰되는 것은 ‘감내하고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자기계발서의 논리 때문입니다. 환경 탓을 하지 말고, 시간관리에 최선을 다하며 고통과 희생을 이겨낼 때 성공의 열매를 맛볼 수 있다는 논리 말입니다. 이러한 논리는 ‘청소부를 했던 사람이 대통령도 되었고(이명박), 빈농의 자식이 세계적인 기업가가 되었고(정주영), 비닐하우스 집에 살면서도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는(양학선) 식’의 스토리텔링으로 독자들을 길들입니다. 청년들이 고통으로 내지르는 아우성은 그보다 더한 고통을 딛고 성공한 인물들의 이야기 속에 음소거 됩니다.
자기계발서는 타인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가시적인 성과지표만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모 기업의 어떤 자리에 올랐는지, 연매출 얼마를 달성했는지, 혹은 수능점수 몇 점을 받아 어떤 대학에 합격했는지, 토플점수, SAT점수 몇 점으로 어떤 대학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는지, 하는 것들만이 독자들의 구미를 자극합니다. 단순히 고통을 이겨내고 악착같이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는 자기계발서에서 멘토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의 피땀 어린 노력이 반드시 누구나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성과로 이어져야만 그는 비로소 자기계발의 롤모델로 자리할 수 있게 됩니다.
청년들은 저마다의 고통 속에서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을 때조차 ‘너보다 힘든 누군가도 열심히 해서 성공의 사다리에 올라탔다’는 자기계발서의 충고와 힐난에 둘러싸입니다. 힐난의 목소리에 지친다 싶을 때는 힐링의 목소리에 잠시 몸을 맡겨보지만 그것 또한 결국 ‘너의 노오력만이 답이다’라는 귀결로 청년들을 레이스장으로 인도하고 말 뿐입니다.
혜민 스님의 저작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쌤앤파커스, 2012년 1월)은 누구나 한번쯤은 읽어보았을, 혹은 들어보았을 법한 대표적인 힐링서적입니다. 이 책은 ‘뭐든 세상 탓만 할 일이 아닙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다’는 말로 청춘들을 다독입니다. 청년들이 처한 현실은 결국 청년 스스로의 부던한 노력과 인내로 이겨나가야 하며 이러한 현실을 가져온 사회에 책임을 물을 필요가 없음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자기계발서와 궤를 같이 하는 것입니다. 저자 오찬호는 이러한 힐링서적을 두고 “사회구조에 대한 불만을 ‘멈추면’ 비로소 자신이 왜 부족한지를 알게 되고, 그러면 이 경쟁사회에서 사랑받는 비법이 ‘비로소 보인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하는 돌직구를 던집니다.
청년, 그리고 타인을 향한 냉엄한 잣대
자기계발서의 당근과 채찍에 이를 악물고 계속 레이스를 달리는 청년들은, 타인과 사회에 대해서도 냉정한 잣대를 내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KTX 여승무원들의 철도공사 정직원 전환요구에 대해 토론하는 수업에서 저자 오찬호는 ‘입사할 때는 비정규직으로 채용되었으면서 갑자기 정규직 하겠다고 떼쓰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행위’라는 학생의 발언을 접하게 됩니다. 숨가쁜 레이스를 뛰고 있는 청년들에게 비정규직은 ‘정규직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은 자들’이며, 이들의 정규직 전환 요구는 ‘정당하지 못한 도둑놈 심보’로 비춰지는 것입니다.
청년들이 20대로 접어들면서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위계의 형태인 ‘대학교 서열’ 또한 이들에게 자신과 타인을 재는 잣대로 체화됩니다. 저자와 만난 대학생들이 고백하건대, 그들이 처음 만난 상대방의 역량을 판단하는 데 가장 먼저 작용하는 것은 창의성과 발전가능성, 대학 입학 후의 경험이 아니라, 수능점수로 결정된 대학명입니다. 청년들은 공신력 있는 성과지표인 수능점수로부터 짜여진 배치표에 자신을 끼워넣고, 결국에는 스스로 대학 서열이라는 위계를 유지시키는 강력한 지지자로 거듭납니다.
청년 스스로와 사회가 들이댄 잣대에 짓눌린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또래의 청년들은 청년들에게 어디까지나 ‘남’일 뿐입니다. 학내 비정규직의 임금이 올라가면 등록금 또한 올라갈 것이라는 논리로 시간강사와 청소노동자 노조와 연대하는 것을 반대한 2013년도 모 대학 학생대표들의 결정이나, 동년배 취업준비생의 딱한 처지를 담은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다가도 취업시장에서의 차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대학생들의 모습이 그러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청년, 그리고 사회를 보는 모순된 시선
대학생이라면 진보적인 게 ‘자연스럽지 않겠’냐고 생각하던 저자 오찬호는 강단에 서서 마주한 청년들의 보수적인 면에 놀라 이십대에 대한 연구와 저작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쓰고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 이 책을 인생의 책 다섯 권 가운데 하나로 꼽은 서민 교수 또한 책을 ‘읽고 나니까 제자들이 예전같이 안 보’였다며, ‘책을 읽으면서 손이 너무 떨려서 책장을 넘길 수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저자가 진단한 대로라면, 사회구조와 규범, 사회에서 내세우는 가치를 적극적으로 긍정한다는 점에서 요즘 청년들에게 보수주의자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청년들이 마냥 저자의 표현대로 ‘차별과 해고를 정당하’다 여기며 ‘동병상련은 없다’는 생각으로 ‘사회에 눈 감’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최장집 교수의 지적처럼 이 책에서 20대 학생들의 정치적 태도에 대한 암묵적인 준거는 민주화운동 시기의 학생 세대들입니다. 사회경제적 조건이 크게 변화한 요즘의 현실에서도 많은 청년들은 한국의 교육환경과 사회체제, 부의 재분배 방식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그들은 진보주의자입니다. 어려운 환경과 불합리한 현실 가운데 놓인 청년들은, 머리로는 현실 비판적 사고를 놓지 않으면서도 몸으로는 자기계발에 쫓기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모순적 존재’인 것입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후루이치 노리토시, 이언숙 역,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 어려운 시대에 안주하는 사토리 세대의 정체』, 민음사, 2014.
참고문헌
1) 오찬호,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개마고원, 2013.
2) 혜민,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쌤앤파커스, 2012.
3) 네이버캐스트 지식인의 서재 「기생충학자 서민의 서재: 서민의 서재는 제2의 자궁이다」, 2015.11.3.,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254&contents_id=102528」, 2016.02.23.
4) 최장집, 네이버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에세이 시리즈 「청년 문제, 한국과 일본 - 두 권의 책에 비추어」, 2015.3.11.,
「http://openlectures.naver.com/contents?contentsId=84081&rid=253」, 2016.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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