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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농민(農民)일기 <4> 흥부마을 영농조합 ① 법인 설립과 풀어야 할 과제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4년12월31일 16시34분
  • 최종수정 2025년01월13일 11시31분

작성자

  • 이영석
  • 흥부마을영농조합법인 대표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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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백두대간의 아막성 아래에 터를 잡고 집을 짖기 시작한 것이 2011년 10월 말부터다. 겨울을 넘기면서 집을 지어야 튼튼하게 지어진다고 하기도 하고, 때마침 8월 말에 정년퇴임을 한 터라 시간을 낼 수도 있고 해서 이 때에 착수한 것이다. 시골은 이웃 간에 형님, 동생 하면서 격의 없이 지내고, 대문도 없어서 아무 때나 드나들며 사는데, 대도시 아파트에서 살아온 우리가 시골 분들과 잘 지내려면 너무 가깝지도, 또 너무 멀지도 않아야 할 것 같아서, 가장 가까운 이웃이 100여 미터 떨어진 외딴곳에 집을 지었다.

 

 집을 짓고 있으니, 마을 분들이 산책 삼아 거의 매일 들여다보곤 했다. 이 마을과는 꽤나 떨어진 곳에서 배 농사를 짓는 제자가 소개하여 땅을 샀고, 마을 이장에게만 찾아가서 인사를 했기 때문에 마을 분들은 궁금한 것이 많았을 것이다. 2012년 2월경 집이 거의 다 지어질 무렵, 마을의 노인분들이 찾아와서 마을 일을 좀 도와주면 좋겠다고 한다. 

 

얘기인즉, 이 지역은 정부 예산 70억원 가량이 투입된 ‘흥부골권역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이 이미 끝났고, 그중 30억원 가량이 든 ‘우애관’이라는 이름의 커뮤니티센터가 마을 입구에 지어졌는데, 전혀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을에는 이를 운영할 사람이 없고, 마을 입구의 빈 건물은 앞으로 애물단지가 될 것 아니냐는 하소연과 함께 도시물을 먹고, 대학교수까지 했으니, 커뮤니티센터를 맡아서 운영해달라는 것이었다. 아직 이 마을도, 또 이웃들도 잘 모르기 때문에 당장은 어렵다고 했으나, 마을 이장과 원로들의 반복된 요구를 저버릴 수만도 없었다. 집도 어느 덧 다 지어져서 4월에는 어머님과 장모님을 모시고 이사를 와서 시골살이가 제자리를 잡아가는 듯해 나서보기로 했다.

먼저 커뮤니티센터를 운영할 주체로서 ‘흥부마을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기로 하고, 마을회의를 열었다. 이 마을은 25세대 50여명이 살고 있었는데, 의견은 3가지로 갈렸다. 정부가 70억 원을 들였어도 되지 않는 일을 우리가 나선다고 되겠느냐는 의견이 1/3, 그래도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놔야 자식들이라도 들어와서 살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1/3, 그리고 나머지 1/3은 일단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저렇게 설득을 해보았지만, 10만 원씩의 출자금을 내고 조합설립에 참여한 사람은 7명(세대)에 그쳤다. 총출자금은 70만원인데, 등기수수료는 그보다 많은 75만원이 들었고, 대표는 나에게 맡겨졌다. 영농조합법인 설립준비위원회를 만들고, 그때까지 커뮤니티센터(우애관)의 관리책임을 갖고 있던 ‘흥부골권역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추진위원회’에 계획을 설명하고, 추진위 이사 7명과 권역 내의 주민들도 참여해서 함께 할 것과 시설(우애관) 사용을 요청했다. 

 

ab9bc8dc32f48999f411a13078cba9d3_1734659<사진 : 흥부마을영농조합법인 대표로 취임한 필자(이영석)>

 

그러나 추진위원회는 영농조합법인에 참여하는 것은 반대했고, 시설(우애관) 사용은 전기료, 전화료 등의 공과금을 영농조합법인이 부담한다는 조건으로 허락받았다. 자본금 70만원짜리 영농조합법인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 마을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불참 이유였다. 결국은 빈 건물로 서 있는 ‘우애관’을 관리하는 책임을 흥부마을영농조합법인에게 넘기되, 당초에 흥부골권역 농촌종합개발사업을 신청할 때 제출하고 약속했던 ‘흥부를 주제로 한 휴양체험사업’에는 함께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흥부골 종합개발사업권역은 크게 친환경농업지역(해발 400m 내외의 준고냉지역)과 휴양체험지역(판소리 흥부가의 발상지)으로 구성되어 있다. 친환경농업지구에는 축사와 저온창고를, 휴양체험지역에는 커뮤니티센터(우애관)가 완공되었지만, 축사와 저온창고는 실질적으로 농가에게 맡겨짐으로써 결과적으로는 개인들의 차지가 되었다. 사업승인 당시 일부 자부담을 조건으로 한 수익사업이었기 때문에, 매년 수익금의 일부를 마을에 기부하도록 했었다. 그러나 흥부골 조합개발사업 추진위원회는 ‘매년이 아니라 한꺼번에 일정한 금액을 납부’받아서 커뮤니티센터(우애관)에 부과되는 공과금을 내고 있던 터였다.

 

당시 농림부는 농촌종합개발사업을 마무리하면서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으로 지어진 모든 시설과 그 운영을 지자체에 이관하도록 하고,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추진위원회는 ‘운영위원회’로 바꿔 운영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우애관을 비롯한 휴양체험시설들은 남원시 소유가 되었으나 추진위원회는 운영위원회로 바뀌지 않았고 그대로 남아있었다, 남원시는 흥부마을을 휴양체험마을로 지정하고, 추진위원회에 사무장을 지원하여 시설관리와 휴양체험사업을 관장하도록 했다. 그러나 추진위원회는 휴양체험사업보다는, 사무장으로 하여금 시설관리만 하도록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우리는 여러 준비와 절차를 거쳐서 2013년 3월에 ‘흥부마을 영농조합법인’의 설립등기를 마치고 휴양체험사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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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의 첫 사업은 농식품부의 농촌마을 활성화 포럼이었다. 이 사업은 농촌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① 마을의 자원을 찾아보고,② 그 자원을 활용할 방안에 대해서 토론하고, ③ 앞서가는 농촌마을을 찾아가서 묻고 확인하고 자신감을 얻고,④ 자신들의 마을을 위한 계획을 구체화해 나가는 4단계를 통해서, 농촌주민들이 마을 발전을 주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하려는 사업이었다. 그런데 농촌마을 활성화포럼은 조합법인 출자조합원들에게는 주도적인 역할과 적극적인 참여를 다짐하는 계기로 작용했지만, 때로는 선진국 농촌을 견학하고 돌아와서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하다는 부정적 의식이 더 심해지는 것처럼, 어떤 이는 ‘우리는 그렇게 잘할 수 없다’거나 ‘우리 마을은 안된다’거나, ‘이 나이에 무슨?’ 등으로, 반대의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 뒤를 이은 마중물 사업(문체부)은, 마을 스스로가 휴양체험사업을 감당할 역량을 키우도록, 역량 있는 업체(단체)로 하여금 흥부마을 탐방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마을이 참여하여 전수(傳受)받도록 하는 사업이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유치원생들로 수익이 없는 봉사 수준의 사업이었고, 파급효과나 사업 확대는커녕 지속해나가는 것도 기대 난망이었다.

 

 농촌마을 활성화 포럼이 영농조합 스스로의 내적(內的) 역량을 자극하고 키우기 위한 사업이었다면, 문체부의 마중물 사업은 외적(外的) 역량을 키우기 위한 사업이었다.

 그러나 흥부골권역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의 한 축이었던 판소리 흥부가를 소재로 한 농촌휴양체험사업은, 그 계획과 기대가 무리였던 셈이다. 아직 이가 다 나오지 않은 어린애에게 갈비를 먹으라고 한 것처럼, 농촌주민들은 사업을 추진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할 역량이 안 되는데 몇 십억을 지원해준다고 될 일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30억 원 가량을 들여서 객실, 세미나실, 부엌과 식당 등을 갖춘 체험휴양시설이 지어져 있으니 휴양체험사업을 포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계속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처해 있었다. 어떻게든 출구(해법)를 찾아야 했다. 특히 나 스스로가 현직에 있을 때, 전문가로서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의 심사와 자문, 관련자 교육 등에 깊이 관여했었는데, 현장에서 실제로 부딪쳐보니, 당시 제대로 살피지 못했었다는 ‘죄의식(?)’까지 들기도 했다.

 

 앞으로 흥부마을영농조합법인이 해법을 찾고, 지금까지 망하지 않고 버티어온 과정으로, 마을기업사업휴양체험마을사업을 차례로 설명하고, 농촌의 노령화와 공동(空洞)화-소멸이라는 암울한 미래를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인 지에 대한 생각과 고민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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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25년01월13일 11시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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