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유 광고는 왜 금지되었을까? - 젖가슴과 근대적 모성의 탄생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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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유 광고가 산모의 판단력을 흐릴 수 있다고?
한국에서는 분유의 방송 광고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방송광고심의에 관한 규정 제43조). 현재 대중에게 노출되는 분유 광고는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간 꼼수다. 분유회사들은 광고 품목이 영아 대상 조제분유가 아닌 성장기용 조제식이라는 핑계를 댄다. 정부 역시 이러한 편법을 눈감아 준다.<ifsPOST>
분유 광고 금지는 한국이 가입한 세계보건기구(WHO)의 방침에 의해서다. 1981년 세계보건기구는 모유대체식품의 광고를 금하는 국제규약에 합의했다. 모유가 아이의 건강에 더 유익하기 때문에 대체식품 이용을 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119개국 중 미국을 제외한 118개국의 찬성으로 안건은 통과되었다.
모유 수유는 그리 오래 된 전통이 아니다. 근대 이전 서유럽 사회에서는 유모를 두는 것이 매우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점차 강건한 국민을 길러낼 어머니의 의무가 강조되기 시작한다. 국경이 확립되면서 국력 증강이라는 목표가 설정된 탓이다.
프러시아에서는 1794년 모유수유를 법률로 규정하기까지 했다. 이렇듯 근대적 모성 담론은 부국강병의 틀 안에서 논의되었다. 의사 등 전문가로 구성된 모유 수유 지지자 집단도 나타났다.
포유류의 기준은 젖가슴의 유무… 린네의 ‘마말리아(Mammalia)’ 명명
포유류의 원래 명칭 ‘마말리아(Mammalia)’는 ‘젖가슴을 가진 동물’이라는 뜻이다. 이를 처음 명명한 칼 폰 린네(Carl von Linné) 역시 모유의 열렬한 지지자 중 하나였다. 전문 의사였던 그는 유모를 두는 관습을 폐지하자고 주장했다.
린네는 젖가슴을 포유강의 구별 기준으로 짚었다. 털이 나는 점, 귀가 움푹 들어간 점 등 포유강은 다른 공통성도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린네는 젖가슴 자체의 유무에 주목했다.
젖가슴이라는 기준은 포유강의 수컷과 인간 남성을 포괄하지 못한다. 번역어 포유류처럼 젖먹이동물이라고 칭했으면 모를까, 상당히 한정적인 측면을 가진다. 그러나 당시 이러한 흠결을 지적하는 이는 없었다. 린네의 분류 체계는 당시 학계와 전 사회에 곧바로 수용되었다. ‘
가슴… 가슴… 가슴… 젖먹이는 괜찮지만 젖가슴은 안 된다?
작년 여름, 여성운동단체 ‘불꽃페미액션’의 상의 탈의 시위가 있었다. 이들의 가슴팍에는 “나는 음란물이 아냐”라는 문구가 써 있었다. 페이스북코리아가 이들의 상체 노출 퍼포먼스 사진을 음란물로 규정해 삭제한 데 항의하는 의미에서였다.
남성과 달리 여성의 상의 탈의 사진은 음란물로 분류된다. 음란물 딱지를 피해가는 방법이 있다. 어머니로서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장면을 연출하면 된다.
허나 한국에서는 수유 시의 노출에 관해서도 완전한 사회적 수용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2016년 8월, 개인 SNS에 수유하는 사진을 올린 한 연예인은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 많은 네티즌이 관심을 바라고 노출을 했다며 그를 비난했다.
해당 연예인을 옹호하는 측의 표현 역시 심상치 않았다. 이들은 수유 사진이 “자연스러운” 노출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비판은 모성을 성적으로 바라보는, 반인륜적 시선이라는 것이다. 몇몇은 수유하는 어머니가 고귀한 존재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젖가슴의 이중적 이미지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 드러내…
아무런 역할을 가지지 않은 여성의 가슴은 음란물이다. 하지만 그가 어머니가 되어 수유를 할 시 그 모습은 순식간에 건전성을 획득한다. 아이를 길러낸다는 데서 중요한 기능을 행한다고 여겨지나 부재하는 상태가 기본값이다. 여성 가슴에 부여되는 이중적 이미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모순은 역할과 지위의 문제로 환원할 수 있다. 여성은 젖가슴을 가짐으로써 남성과 동등한 위치로 다뤄지지 않는다. 젖가슴은 여성이 포유강의 암컷들과 공유하는 동물적 특성이기 때문이다.
‘젖가슴을 가진 동물’이라는 포유강의 규정은 여성한테만 적용된다. 이에 의해 남성만이 동물성이 소거된 완전한 인간으로 여겨졌다. 여성은 그보다 열등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자연스러움”이 가지는 허구성
당사자 목소리 반영되어야
허구적 전통에 대한 사회적 재논의가 필요하다. 우리가 ‘자연스럽’다고 여기는 모습의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어린이집이 설립되기 시작한 시기 설명회장에는 아버지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고 한다. 지금과는 판이한 모습이다.
세계보건기구의 1981년 분유 광고 금지 규약에서 어머니의 존재는 빠져 있다. 지향점으로 제시된 모유 수유의 주체는 어머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모유대체식품 논의는 어머니를 중심으로 하지 않았다.
당시 전문가들과 언론은 아기가 분유로 인해 영양실조에 걸린 위험성만 성토했다. 수유를 하느라 직장에 나가지 못할 여성 혹은 노동하느라 수유가 불가한 여성의 이야기가 빠져 있다. 당사자가 아닌 이들이 의무를 규정한 셈이다. 근대 초기 모성 담론의 한계를 그대로 가진다.
어머니의 역할 중 상당 부분은 다른 사회 기관으로 이전되었다. 선진국일수록 여성의 사회적 진출로 인해 가사노동자 고용 비율이 높다고 한다. 사실상 수유만이 ‘자연스러운 모성’을 역설할 최후의 보루다. 실효가 없다시피 한 분유 광고 금지 조항이 사문화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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