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권, 기회로의 접근 가능성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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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서비스 격차가 초래하는 불평등 문제
부동산 중개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에서 자취방을 구하다 보면 여러 가지 기준을 설정해 매물 목록을 정렬할 수 있다. 그중 하나는 ‘역과의 거리’인데, 주요 지하철역과의 도보거리가 5분만 가까워져도 매매 가격이 급등한다. 당연한 현상이다. 흔히 말하는 역세권일수록 교통 서비스에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고, 이는 결국 삶의 전반적인 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저렴한 가격에 매물을 구하고 싶어 비역세권 지역에 방을 마련한 경우를 생각해보자. 도보로 인근 정류장까지 7분가량 걸어간 뒤 두세 정거장을 지나서야 지하철역에 닿는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반면에 오피스텔 자체가 아예 지하철역과 연결되어 교통카드를 찍고 난 뒤 곧장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역세권과 비역세권의 차이가 한동네 안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떤 지역구는 그 동네 전체가 역세권이지만 어떤 구는 그 자체가 교통취약지역인 경우도 있다. 서울특별시를 예로 들어 살펴보자. 강남구와 서초구의 경우에는 전철역이 3개 이상 있는 동의 비율이 65%이다. 반면 금천구, 구로구의 경우에는 도보 10분 내로 도시철도역에 접근하기 어려운 동의 비율이 각각 90%와 73%였다. (「서울자치구별 도시철도 인프라 격차」, 2019년 6월,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실) 버스 노선의 경우에도 지역 간 격차가 심하다. 산간지대거나 비포장도로 지역일 경우 마을버스의 배차 간격이 길 뿐만 아니라 중앙버스전용차로가 설치되기도 어렵다.
의-식-주-통의 시대
교통권은 국민들이 보편적 교통 서비스를 제공받아 자유롭고 안전하게 이동할 권리를 의미한다. 이는 경제적, 사회적, 신체적 조건에 상관없이 교통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교통권은 헌법상에 보장된 기본권일까?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이나 제 34조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에서 간접적으로 그 근거를 도출할 수는 있다. 그러나 조문에서 직접적으로 교통권을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헌법 제35조에 주거권과 환경권이 제시되어 있듯 교통권도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할 필요가 있다. 흔히 의-식-주를 삶의 필수 3요소로 꼽는다. 현대사회에서는 의-식-주에 접근하기 위해 ‘통(通)’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직장에서 집으로 출퇴근하기 위해, 통학하기 위해, 식료품을 구매하러 가기 위해, 문화생활을 향유하기 위해, 의료시설을 이용하기 위해, 기타 모든 기본적 삶의 요건을 누리기 위해 최소한의 교통 여건이 국민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접근의 기회, 효율과 형평의 두 축
효율이냐 형평이냐의 문제는 늘 어렵다. 정책을 마련할 때나 법안을 입안할 때 두 축의 한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와 1980년대의 고도 성장기를 거치며 주요 도로망을 설치하고 교통정책을 마련해왔다. 그 당시의 기준은 ‘효율성’이었다. 유동 인구가 많고 주요 서비스가 집약되어있는 지역을 대상으로 교통기반시설 투자가 이뤄졌다. 수익성의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당연하다. 그러나 이는 교통서비스로 향유할 수 있는 이익의 분배에서 ‘형평성’의 문제를 초래했다. 기초 교통서비스를 원활하게 이용할 수 있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의 차이가 결국 기회의 불평등과 사회적 배제라는 이슈로 이어진 것이다.
교통약자를 위한 고려도 필요
교통권의 차별을 초래하는 것은 비단 지역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동 약자(휠체어, 유아차 이용자, 이동장애인)의 교통 서비스 접근 기회 또한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 수도권 이동 약자의 대중교통 결합불평등지수는 1.55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이동약자의 경우 일반 사람보다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데 55%가량 이동 시간이 더 소요됨을 뜻한다. (「수도권 대중교통의 교통복지 정책방향」, 경기연구원) 지하철 역사에 설치된 휠체어 리프트가 오히려 이동 약자들의 안전을 위협하기도 한다. 불완전하게 설치된 리프트로 인해 추락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2001년부터 지금까지 휠체어 리프트 중상·사망 사고는 9건에 달한다. 서울시는 지난 2015년에 지하철역 입구에서 지하철 승강장까지 이어지는 직통 엘리베이터를 오는 2022년까지 37개 역사에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역 구조상 엘리베이터만으로 승강장까지 연결되기 어려운 곳이 많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보편적 교통 복지 정책 마련과 법제적 뒷받침
지난 2010년 국토교통부가 현대인의 기본권으로 교통권을 명시할 것과 최저교통서비스 기준을 향상할 것을 국회에 제안했지만 입법으로 이어지는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모든 국민이 보편적 수준의 교통 서비스를 누리기 위해서는 우선 교통권이 헌법상으로 보장받는 기본권이 되어야 한다. 그 전제하에서 지역, 계층, 신체적·사회적 조건을 고려한 적절한 교통 복지 정책이 마련될 수 있다. 기초 교통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정책적 뒷받침을 통해 기회로의 ‘접근 가능성’이 국민에게 공평하게 주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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