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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농민(農民)일기 (8) 흥부마을 영농조합 ⑤ 불안한 장래, 농업·농촌을 지키려면…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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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5년05월06일 16시40분
  • 최종수정 2025년04월13일 17시27분

작성자

  • 이영석
  • 흥부마을영농조합법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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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부마을로 귀농하여, 유기농 오미자 농사를 시작하고, 판소리 흥부가를 품은 이 마을이 없어지지 않도록 하자고 마을주민들과 의기투합하여 영농조합법인을 만들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어딘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감추기가 어렵다.

 그동안 마을에서 생산한 들깨로 들기름을 짜는 마을기업사업을 하고, 백두대간에 둘러싸인 해발 500m 흥부마을의 쾌적한 ‘농산촌다움’과 판소리 흥부가, 가야의 아막성과 봉수대(봉화산)에 기댄 ‘체험휴양마을사업’을 해오고 있다는 이야기는 자세히 소개한 바 있다. 오늘은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흥부마을의 미래는 밝지 않다는 데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25b2ceba3360d212a0dce088e4fc82e2_1741069<흥부마을 방문자센터 전경>

 

 흥부마을에는 꽤나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아왔다. 5세기경 이곳은 가야의 땅이었다. 한반도에서 철기시대가 시작되면서, 가야의 철을 차지하려고 백제와 신라는 아막성에서 전투를 벌였다고 한다. 남원의 운봉고원-장수 일대에 산재된 제철시설들이 발굴되고 있고, 88올림픽 준비의 일환으로 건설된 광주-대구간의 88고속도로가 놓이면서 확인된 50여기의 가야 고분과 최근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유곡리와 두락리의 가야 고분이 지척에 있다. 

 

전해오는 바로는 1970년대만 해도 흥부마을에는 50여 가구에 1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았던 큰 마을이었다고 한다. 흥부마을 앞에는 해발 400m의 고원 뜰이 펼쳐져 있어서, 그만한 인구를 부양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도로망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진주에서 한양으로 향하는 큰 길이, 산적을 피하기 위하여 60명이 모여야 고개를 넘었다는 육십령고개를 피해서, 함양에서 남원 아영을 거쳐서-장수 번암으로, 번암에서는 여수 순천에서 한양으로 향하는 대로와 합쳐져서 임실을 거쳐 전주 삼례로, 삼례에서 목포에서 올라오는 호남대로와 합해져서 한양에 이르는 중요한 도로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왕래도 많았던 마을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이지만,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1962년 이래, 농촌에서 번 돈들은 학자금 등으로 도시로 보내지고, 사람들도 도시의 일터로 보내졌다. 이렇게 보면 자원이 변변치 못했던 우리나라의 경제개발과 산업화는 농업·농촌으로부터 많은 자원을 가져다 썼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지방자치가 중단되고,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반복되는 동안, 흥부마을도 여느 농촌마을처럼 인구가 줄고 빈집도 늘어났으며, 지금은 26가구에 4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내가 귀농한 2012년 봄부터 매년 한 사람씩 모두 12분이 세상을 떠났으나, 고향으로 되돌아온 사람은 1명, 마을로 귀농한 사람 1가구 2명에 불과했다. 마을 전체인구 가운데 50세 아래는 한 사람도 없으니, 이 마을이 앞으로 30년을 버틸 수 있을까 싶기 도 하다.

 

 인구 규모는 시장(市場) 크기와 같다. 시장이 작으니 상권이 없다. 장사(사업)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소비자인 농촌의 주민들도 불편해서 살기 어렵다. 더구나 농촌에서 벌어진 돈은 농촌 밖으로 쓰인다. 농촌이 갈수록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의 근대화나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잘못되었다거나 되돌려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어쩔 수 없다거나, 이대로 지켜보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유시장경제체제는 만병통치약이 아니고 단점도 있기 때문에, ‘시장실패’가 있고, 그래서 정책과 제도를 통해서 정부나 공공이 개입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문제는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얼마나 개입하고 강제하고 유도해야 할 것인가일 것이다.

 

 지금의 농촌문제는 농업·농촌·농민들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지방의 문제도 지방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만큼 심각해져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수도권집중을 그대로 놔두고는 지역균형발전도, 도농격차 해소도 불가능에 가깝다. 전국토의 12%에도 미치지 못한 면적에 전국민의 절반 이상이 모여 살고, 인구비례로 뽑는 국회의원도 압도적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문제의 대부분이 ‘수도권 과밀(過密)의 문제’와 직결된다. 전쟁과 같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사는 수도권에서의 삶에서 결혼과 출산은 항상 후순위일 수밖에 없고, 게다가 수도권의 비싼 생활비와 집값, 교통지옥 등으로 인해 국가존립의 위기라는 인구감소와 저출산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사람이 많다 보니 의견도, 이해관계도 복잡다단하여 그의 해법을 찾는 것도 그만큼 더 어렵고, 정책비용도 그만큼 더 들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닌가. 문제는 수도권이 독자적으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쓰레기 처리도, 전력공급도, 화장장도 스스로는 한계에 이르렀고, 도로들도 이제는 지하로 내려가야 한다고 할 만큼 활용할 공간조차도 한계상황에 이른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어쩌라고?

좀 과격하다고 생각되는 처방을 나름대로 제시해 본다. 우선 수도권은 지방이 목표로 하는 일정한 자족도(自足度) 수준에 이를 때까지, 사람을 모이게 할 수 있는 일체의 사업을 중단하자. 주택도, 도로도, 백화점이나 공장 등의 사업체, 전철이나 버스노선 등등, 모든 것을 현재 상태에서 동결하여, 과밀을 피할 수 있는 사람들부터 과밀된 수도권을 빠져나가도록 하는 소위 “과밀이 과밀을 해소”하게 하자. 길게 보면 정책비용도 주민들의 저항도 가장 적게 드는 방법일 것이다. 

 

지방이나 농촌문제가 이제는 지방이나 농촌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수준을 넘었다. 물론 이보다 더 좋은 해법이 끊임없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는 KTX가, 고속화된 도로가, 고압선 노선들이, 수도권의 사람과 자원들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긍정적 효과는 거의 없고, 반대로 지방의 자원과 사람들을 수도권으로 빨아들이는 빨대효과가 월등하여 더 이상 지켜봐서는 안된다.

 

 수도권의 ‘과밀화’가 계속되는 한, 지방(농촌)의 ‘과소화’는 멈추지 않을 것이고, 과소화가 계속되면 산간오지부터 텅빈 ‘공동화(空洞化)’가 되어가고, 그러면 산불이 나고, 산사태가 나고 산길과 통신망이 끊기고, 간첩이나 범죄자들이 숨어들기 쉬운 환경이 만들어질 게 빤하다. 결국 별도의 정책수단들이 필요해질 것이고, 세금도 그만큼 더 들어갈 것이다.

 

 지금 대부분의 농촌은 과소화가 상당 수준 진행되고 있고, 일부 골짜기 등은 빈집과 함께 공동화가 진행되어, 전에는 필수적이고 유용했던 전봇대나 광케이블, 마을길, 마을상수도 등이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어가고 있다.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지금의 농촌문제, 사람이 없어서 농토가 풀밭이나 숲으로 돌아가고, 학교와 병의원이 없어지고, 파출소와 소방서가 없어지고….사람이 없으면 사업도, 장사도, 농사도 없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서울이 뉴욕이나 파리, 도교와 같은 세계적인 도시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농업·농촌·농민을 빼놓고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될 수는 없다. 전세계의 선진국들 중에서 농업·농촌·농민을 지키지 않은 나라가 있는가? 모든 선진국들은 다양한 어려운 고비(위기)를 보듬어주고 충격을 줄여주는 역할을 하는 농업·농촌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하여 각별한 노력들을 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만 해도, 한국전쟁을 버티게 해준 것이 농업·농촌이었고, IMF-외환위기 때도 폭동이나 약탈 없이, 고향 농촌에 내려가서 버티고 기다릴 수 있게 해준 것이 농업·농촌이었다. 국가적 충격을 제대로 흡수하고 완화시킬 수 있는 농업·농촌은 그래서 ‘농산물만 있으면 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이것을 깨달은 나라들만이 지금 선진국 지위에 있지 않은가!

 

 우리 흥부마을은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음악장르인 판소리 흥부가의 발상지이고, 흥부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까지 되어 있는데, 이 마을이 시들시들 쪼그라들어 20년이나 30년 후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없어진 마을’이 되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 우리가 우리 것도 지켜내지 못한 세대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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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는​ 귀농 13년차로 농업경영학을 전공하고, 농업과 농촌 연구에 몰두했던 연구자(한국농촌경제연구원)로서, 또 농업후계인력 양성에 매달렸던 교수(국립한국농수산대학교)로서 경력을 쌓았고, 이제는 농민들과 함께 살면서 ‘흥부마을영농조합법인 대표’를 맡아 농촌 농업 진흥에 앞장서고 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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