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코피노를 아시나요?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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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06월29일 19시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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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대표’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무게는 얼마나 될까. 최근 성황리에 펼쳐지고 있는 지구촌 축제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한창 국가대표 이슈가 뜨겁다. 국가대표다운 모습을 기대했던 많은 국민들은 긍지와 투지 없는 모습에 비난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월드컵을 통해 대한민국의 얼굴로 축구장을 누비는 선수들처럼, 우리도 매년 외국을 누빈다. 처음 우리를 마주하든 여러 번 보든, 외국인들에게 우리는 대한민국의 얼굴이다. 외국에 가면 우리 모두가 ‘국가대표’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아쉽게도 외국에 나간 일부 한국인들이 국가대표의 자격을 망각했다.

 

부끄러운 낙인, ‘어글리 코리안’

 

 ‘어글리 코리안’. 외국에서 몰상식한 행동을 하는 한국인을 말하는 단어다. 다양한 나라가 ‘어글리’라는 접두사를 만났었다. 과거 미국과 영국을 비롯해, 일본도 그러했다. 최근에는 ‘어글리 차이니즈’, 다시 말해 중국이 불명예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다. 흔히 경제 발전이 도덕·교육 발전 속도보다 빠른 사회에서 관찰된다. 경제와 교육 모두 충분히 발전한 한국이지만 일부 나라, 특히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여전히 ‘어글리 코리안’ 소리가 들린다.

 

 외국 유적지에 하는 낙서부터 타국 문화 무시 등 다양한 유형의 어글리 코리안들 중 악질 부류가 있다. 코피노(Kopino)의 아버지들이다. 코피노는 코리아(Korea, 한국)과 필리핀의 단순한 합성어다. 단순히 코피노는 한국인과 필리핀 사이의 자녀를 뜻하지 않는다. 필리핀 사회에서 코피노는 그 이상의 뜻을 가진다. 동거 또는 결혼을 하고 있던 한국인 아버지가 가정을 버리고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연락을 끊는 경우, 남은 아이에게 ‘코피노’라는 슬픈 족쇄가 씌워지게 된다. 

 

 

코피노에게만 향하는 날카로운 눈초리

 

 한국 사회에서 코피노가 이야기되기 시작한 시기는 2006년쯤이지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동성착취반대협회의 2014년 보고서에 따르면 코피노를 약 3만 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벌써 성인이 되었고, 일부는 아직 어머니 배 속에 있다. 성인이 된 코피노가 아버지를 찾는 경우도 허다하다. 단순하게 가정에서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로도 상처가 큰 그들이지만, 그들을 둘러싼 사회도 가만히 두지 않는다.

 

 단순한 남녀 사이 치정을 왜 사회에서 해결해야 하는지 반문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2003년은 약 천 명으로 추산되던 코피노는 현재 30배가 더 늘었다. 필리핀 사회에서 코피노들은 편부모 밑에서 극심한 빈곤과 사회적 냉대를 겪으며 자란다. 한국 사회의 무책임에 고통받는 아이들의 비극을 단순 남녀 치정사로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버지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코피노 가정을 향하는 시선은 더 차갑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십 년 동거를 하다 사라진 아버지를 수소문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인터넷에 신상을 올려 찾으려 하니 개인 정보 침해라며 막는 사람들이 있었다. 겨우 찾아서 양육비라도 달라 하니 욕하며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국제 소송을 통해 양육비를 받기 위해 노력하는 국내 단체들과 코피노 가정에게 돈만 바란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글리 코리안은 국내에도 있다.

 

 

우리의 존재를 알아주세요.

 

 아버지에게 존재를 부정 받은 코피노에게 가장 필요한 건 관심이다. 미국-필리핀 혼혈인의 수는 5만 명, 일본-필리핀 혼혈인의 수는 10만 명으로 추정된다. 과거 일본-필리핀의 혼혈을 자피노라고 부르며 현재의 코피노와 비슷한 사회 문제를 보였지만, 현재 자피노는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고 필리핀 사회에서 강력한 사회 계층으로 나섰다. 그에 비해 한국 정부는 아직까지 코피노에 대한 지원은 물론, 언급도 없다. 한국 사회에서도 코피노의 존재는 희미하다.

 

 사업, 관광, 유학 등 다양한 이유로 필리핀을 찾아갔던 코피노의 아버지들을 지금 어디에 있을까. 자신의 무책임으로 평생을 고통받는 코피노의 아픔을 알까. 코피노맘(코피노의 어머니) 가족들의 눈물을 알까. 자신의 쾌락을 위한 선택이 어떤 결과를 알기나 할지 묻고 싶다. 몇 해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코피노맘의 아버지 유서에는 한국에서 편하게 지내고 있을 그들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했다. 

 

 

 최근 언론에서 다시 한 번 코피노가 조명되고 있다. 계절이 돌아오면, 코피노와 관련된 기사도 돌아온다. 그리고 매번 ‘코피노를 아시나요.’라며 독자에게 묻는다. 기사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코피노의 존재를 알고 도와주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인간의 도리를 비웃고 국가를 욕되게 한 그 사람들의 존재를 기억해야 한다. 두 다리 뻗고 편하게 자고 있을 그들에게, 자신의 쾌락을 위해 거짓 약속으로 상처만을 남긴 그들에게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코피노를 진정 아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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