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 진짜 기대하는 공약] 6·13 지방선거 후보자가 귀 기울여야 할, 세상 절반의 목소리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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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뽑은 후보가 내 삶을 바꾼다
지난 대선, 친구 A는 “공무원을 많이 뽑겠다”고 공약한 후보에게 투표한다고 했다. 그는 3년째 공무원 공부 중이었다. 그의 고향은 경상도였고, 대학에서 경영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자유시장경제의 신봉자였지만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이라는 신분이 다른 모든 정치적 성향을 압도할 만큼 절실했다. 강남에 집이 있는 친구 B의 아버지는 선거 때마다 오로지 ‘강남 집값’을 건드리지 않는 후보에게 투표한단다.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사회 초년생 C는 청년 임대 주택을 많이 공급해 주겠다는 후보자가 매력적이라고 했다. 그렇다. 대의 민주주의 하에서 우리는 선거를 통해 나를 대신할 이를 대표자로 뽑는다. 그러려면 지금 내게 제일 중요한 공약이 뭔지 알고, 나만큼 이를 중히 여기는 후보자를 뽑아야 한다.
나는 청년이고 여성이다. 내 고향은 충청도고, 개혁적 보수를 지지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하루에 서로 다른 성향의 뉴스를 3개씩 보며, 현재 취업준비생이다. 이런 부분들이 모여 하나의 ‘나’를 이루고, 각각의 정체성은 때로 충돌한다. 따라서 선거 때마다 이번엔 어떤 공약을 최우선순위에 둘지 생각해야만 한다. 2018년 6·13 지방선거를 앞둔 내게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청년 여성’이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청년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맨 앞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주변에서 “당 상관없이 여성 후보자를 뽑겠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걸 보면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닌 듯하다. 세상의 절반이자 세대의 절반인 청년 여성 유권자의 표심이 궁금하다면 제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시라.
공약 키워드 하나, ‘안전’
안전한 일상: 송곳, 실리콘, 스티커. 공공화장실 몰카 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여성들의 필수품이 됐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구멍’이 보이면 송곳으로 찌르고 실리콘이나 스티커로 막는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카페서건 음식점에서건 화장실은 웬만하면 둘씩 간다. 지하철 성추행에 대비해 자세한 신고 방법쯤은 상식으로 외우고 있다. 혼자 사는 여자는 엘리베이터를 타면 일부러 다른 층을 누르기도 하고 택배는 ‘남자 이름’으로 받는다. 2018년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꿀팁, 아니 ‘일상의 생존팁’은 끝도 없다. 아침에 집을 나서 밤에 돌아올 때까지 안전 센서를 곤두세우고 때로는 내 집 안에서조차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안전한 일상을 보장해 줄 후보자를 ‘무조건’ 뽑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안전한 육아 환경: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피해자 중에는 어린아이들이 많았다. 좋은 공기 속에서 아이를 키우려는 엄마들은 가습기를 열심히 틀었다. 그게 결과적으로 아이들의 목숨을 위협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 테다. 지난해 7월에는 햄버거병 논란이 있었다. 그 의혹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마음 놓고 자녀에게 패스트푸드를 먹일 수 있는 부모는 아직 없다. 6·13 지방선거 중에서도 특히 서울시장 후보들은 미세먼지 관련 공약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 나날이 심해지는 미세먼지의 습격 속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엄마들의 표심은 ‘미세먼지 대책’이 결정할 거라는 말이 돈다. 여성, 아내, 노동자이기도 하지만 아이가 생기면 일단 ‘엄마’가 되는 이들은 마음 놓고 아이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후보자가 절실하다.
공약 키워드 둘, ‘공정’
공정 채용과 경력 단절 해소: 작년 말, 청와대가 ‘블라인드 채용’ 방식으로 대통령비서실 전문임기제 공무원을 뽑은 결과 합격자 전원이 여성이라는 점이 화제였다. 경력과 전문성만을 봤다고 한다. 한편, 얼마 전에는 “여성 지원자가 많으면 곤란하다”며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이 남성 지원자 수 백 명의 점수를 임의로 올렸다는 기사가 터져 나왔다. 공기업마저 ‘남녀고용평등법(7조 1항 사업주는 근로자를 모집·채용할 때 남녀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을 지키지 않았다. 한국가스안전공사는 면접 점수를 조작해 합격권 여성 지원자를 탈락시켰다 적발됐다.
현재 2030세대 여성들은 “여자도 똑같이 공부하고 일할 수 있다”는 부모의 믿음과 지원사격에 힘입어 단군 이래 최대 대학 진학률(남성보다 7.2% 높은 73.5%, 2017년 기준)을 자랑한다. 하지만 취업의 문턱 앞에서 번번이 좌절하며 그 박탈감에 잠 못 이룬다. 제한된 일자리 수를 놓고 남녀가 대결하자거나 여성을 배려해달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최소한,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로’ 탈락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게 아닌가. 공정 채용의 연장선상에서 ‘여성 경력 단절 해소’도 중요하다. 바늘구멍을 뚫고 취업하는 데까진 성공했는데! 결혼과 출산을 거치며 공 들인 커리어를 제 손으로 무너뜨려야 하는 위기를 맞은 (예비) 워킹맘들은 “내가 이러려고 공부하고 입사 했나 자괴감 들지” 않을 수 없다.
멀쩡히 대학 졸업하고 피땀눈물 흘려가며 공부하는 데도 여전히 백수를 벗어나지 못하는 딸을 보다 못한 아빠. 결국 본인의 정치적 신념은 고이 접어두고 “그래서 누굴 뽑아야 내 딸이 취업 된다고?” 물어 오셨다. 이게 우리 집만의 얘기가 아니란 건 확실히 안다. 공정 채용과 여성 경력 단절 해소, 어쩌면 딸 가진 부모의 표까지 확보할 수 있는 기회다.
여성 정치인이 많아지면, 망할까요?
여성의 삶이 바뀌려면 여심 저격용 공약에 대한 이해가 높은 여성 정치인이 늘어나야 하는 법. 문재인 대통령은 “여성 장관 30% 달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현재 여성 장관 비율은 27.7%로 역대 정부 최다지만, 처음 약속했던 30% 벽은 넘지 못했다. 20대 국회 여성 의원은 고작 17%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2018년 6·13 지방선거 여성 후보자 현황은 어떨까. 시·도지사와 구·시·군의 장, 교육감, 국회의원 보궐의 경우 모두 여성 후보 비율이 10%를 밑돌았다. 원내 정당별 여성 후보자 비율을 보면, 더불어민주당(28.9%)은 OECD 평균(28.8%)과 엇비슷했고 정의당(39.3%)은 크게 웃돌았으며 나머지는 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했다.
국제사회에선 이미 2016년부터 ‘여성 지자체장’ 바람이 불었다. 일본 고이케 유리코 전 방위상은 1947년 도쿄지사 선거를 실시한 이래 첫 여성 도쿄지사로 선출됐다. 그녀는 “여성 도쿄지사로서 육아 문제 등 여성 정책을 확실하게 추진하는 것이 행복한 도쿄를 실현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같은 해 루마니아 지방선거에서 가브리엘라 피레아가 수도 부쿠레슈티의 첫 여성 시장으로 당선됐고, 이탈리아 총선에선 비르지니아 라지와 키아라 아펜디노가 각각 최초의 여성 로마 시장과 토리노 시장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 5년으로 범위를 넓히면 프랑스 파리, 독일 쾰른,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10여 명의 여성 시장이 탄생했다.
여성 정치인이 늘어나도 세상은 망하지 않는다. 이것은 거스를 수 없는 사회 변화의 물결이다. 다른 국가들은 다 변하는데 우리만 변하지 않으면 그것이야말로 퇴보나 다름없다. 무엇보다 여성의 삶이 변하면 동반자인 남성의 삶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뀔 거라고 확신한다. 남녀 불문, 2018년 6·13 지방선거에 나선 후보자들이 이와 같은 ‘시대정신’을 외면하지 않는지 꼼꼼하고도 단호하게 지켜볼 것이다. 시민의 대표자가 되고자 하시는 분들, 부디 세상 절반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시길 바란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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