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한일 위안부 합의 그 이후 : 꽃이 모두 시들기 전에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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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05월18일 17시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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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격 1번

 

 ‘돌격 1번’은 전선의 부대나 병사를 일컫는 말이 아니다. 전장에서의 작전을 의미하는 것 또한 아니다. ‘돌격 1번’은 다름 아닌 위안부를 상대하는 일본인 군인에게 지급되던 콘돔의 이름이었다. 그들의 작명대로라면 눈먼 병사는 일회성 욕구를 분출하기 위해 소녀에게 ‘돌격’한다. 무자비하고 감정 없는 돌격을 소녀는 어쩔 도리 없이 감당해낸다.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과 중국 난징을 필두로 동아시아에서 벌인 참상의 저변에는 어쩌면 ‘돌격 1번’이란 텍스트와 정신적 꼴이 맞물리는 접합부가 존재한다.

 

 그들은 천황을 위해 돌격하고, 기꺼이 죽어버린다. 파쇼적인 죽음을 애국이라 말하며 작렬하게 자폭한다. 그것이 애국인지 아닌지를 여하 막론하여 맹목적인 쇼비니즘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설령 그 과정에서 양심과 인간성을 상실한다고 하더라도, 국가에서 조직적으로 이를 관장하며 국가적 정신으로 추앙할 때는 이야기가 다르다. 폭력은 애국을 위한 명쾌하고 산뜻한 방법론으로 탈바꿈하고, 폭력이 주는 불안함과 섬뜩함은 내성이 생겨 점차 당연한 것으로 변해간다. 그리하여 폭력은 일상적인, 평범한 기류가 되어 그들이 호흡하는 공기를 메꾼다. 아무도 쓴 소리를 내지 않는다. 더군다나 남성성의 비대를 극단적으로 상징하는 제국주의의 전시에서 돌격이란 텍스트가 주는 맹목성과 집단적 무지함을 상상하는 일은 심지어 우울하기까지 하다. 위안부, 국제 석상에서 사용하는 엄연한 의미의 ‘일본군 성노예’ 혹은 ‘성폭력 피해자’는 이 돌격의 피해자들이다. 군 위안부는 일본군인 개개인에 의한 소극적 강간이 아니다. 일제의 군관 권력구조에 의하여 자행된 물리적이고 행정적인 조직적 강간 행위이다.

 

◆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이 오지 않았다. 신경팽 할머님께서는 해방 후 남편과 결혼하셨지만, 남성에 대한 공포로 마지못해 잠자리를 가졌다고 말씀하셨다. 여복실 할머님께서는 자궁 손상으로 아이 출산이 불가능하셨고 김경순 할머님께서는 자식이 정신 발작을 일으키자, 사람들이 할머님의 매독을 의심했다고 하셨다. 그밖에도 대부분의 피해자 할머님들이 대부분 결벽증 증상을 보이셨다고 한다. 치욕스런 경험이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몸을 깨끗이 하려는 마음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일본군의 만행은 할머님들을 공포에 가뒀고 해방이 와도 결코 해방될 수 없는 족쇄를 안고 살아갈 수 없게끔 만들었다.

 

 환향녀還向女에 대한 천대는 국민성을 알아보는 척도다. 유교의 망령들이 살아 숨 쉬는 대한민국에서 순결과 정절을 잃은 자에게는 은근한 비아냥거림과 수근거림이 쏟아진다. 언제나 가해자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살아가며 피해자는 고개를 숙이고 죄인의 마음으로 살아간다. 할머님들이 그 죄 없는 죄스러움을 털어내고 공식 석상에 서기까지의 시간은 영겁처럼 길고 괴로웠음을 말씀하신다. 그 시간을 보상받는 방법은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천만억금의 돈이 아니라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일 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녀들의 봄은 여전히 오지 않았고 역사는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

 

 1993년 고노담화에서 일본은 사죄와 반성의 뜻을 소극적으로 표명한 바가 있다. 그러나 1995년 일본 정부는 인도적 차원에서 민간주도의 '아시아여성기금'을 설립하여 피해자들에게 개별적으로 1인당 500만엔(한화 약 4,300만원) 상당을 지원한다. 이는 기금 설립의 본질이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의도와 피해자들을 사과와 배상의 대상이 아닌 인도적 자선사업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회피성 배금주의가 기저에 깔려있음을 알 수 있다. 민간기금은 범죄행위를 무마하는 보석금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고노담화를 비롯한 배상과 사과로 우리 정부로부터의 암묵적 동의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박정희 정부는 위 기금을 근대화 5개년 계획에 투자하여 중화학 공업 선두의 경제 발전을 이끌어낸다. 발신과 수취는 죄와 죄 사함의 메커니즘과 상통했고, 이러한 역사의 오명은 21세기 일본이 도리어 당당할 수 있는 뚜렷한 명분을 제공한다.

 

 2015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하여 파기·재협상을 넘어선 새로운 대안이 모색되고 있다. 다만 합의는 합의대로 이행하되 피해 할머님들의 상처를 보듬고 지원을 강화할 수 있는 대책이 최우선 사항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30일 향년 90세로 영면에 드신 안점순 할머님의 말씀 "억만금을 우리한테 준들 내 청춘이 돌아오지 않는데, 가해자는 자신의 죄를 모른 채 당당하고, 피해자인 우리는 고통을 받고 있다"면, 진정성 없고 실효성 없는 행정적 합의는 그네들 가슴에 다시 한 번 대못을 박는 일일 뿐이다.

 

 또한 협상 너머로 우리는 군위안부 문제를 50년 동안 제기하지 않고 피해자들을 그늘진 곳에 내버려두었던 스스로의 문제를 다시금 진단할 의무 역시 있다. 무엇보다도 위안부 문제가 수면에 떠오른 것은 국가의제가 아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의 용기가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교묘한 일본 정부로 말미암아 책임을 회피했던 우리 정부에 면죄부를 부여할 수는 없다.

 

◆꽃이 모두 시들기 전에

 

 국가적 재난 혹은 경조사의 비통함과 울분은 온 땅을 뒤덮는다. 그러나 해가 지날수록 그 슬픔은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슬픔은 유행이 아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스며들어 보이지 않는다. 어떤 상처는 치유되지 않고 영원히 떠안아 온전히 감당해야한다. 슬퍼하는 사람에게 기쁨을 강요할 수는 없다. 다만 우는 사람 곁에 앉아 같이 운다든가, 아무도 울지 않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울어버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세상을 떠나신 할머님들이 그러하였듯이,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감당하는 일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기쁘게만 살며 슬픔을, 그리고 슬퍼하는 사람을 매도하는 겁쟁이가 될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은가.

 

 지난해 8명에 이어 올 해 들어 4명의 할머님이 별세하셨고 28명의 피해 할머님들이 남아계신다. 우리가 지금 더 용기내지 않으면 봄이 와도 봄은 영원히 오지 않고, 몇 백 년 후에도 중얼거릴 것이다. “우린 아직 ‘해방’되지 않았다”는 이옥선 할머님의 말이 그러했듯이.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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