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스티븐 호킹’이 남긴 또 다른 유산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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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 아인슈타인에 이어 과학계에 새로운 파장을 일으키며, 인류를 다음 단계로 끌고 간 그의 여정은 지난 3월 14일 마침표를 찍었다. 비전공자가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시간과 우주의 정체를 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힌트를 인류에게 남겼다. 그가 남긴 힌트를 정확하게 알지 못해도, 구부정하게 기운 몸이 간신히 휠체어에 기대며 손가락 끝만을 움직이며 기계음으로 소통하는 호킹의 뒤틀린 얼굴은 누구나 안다. 그렇다, 그는 중증 장애인이었다. 21살이라는 젊은 시절, 대학교 조정에서 키잡이로 활약하던 그는 점차 움직임이 제한되게 되는 루게릭 병과 함께 2년이라는 짧은 인생을 갑자기 선고받는다. 하지만 시간과 우주를 사랑하던 낙천주의자 호킹은 약 60여 년을 더 살며, 인류에게 큰 유산을 남긴다. 과학적인 업적이 아닌, 그가 남긴 또 다른 유산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모두에게 존중받는 호킹의 우주
스스로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호킹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우주의 시작에 대한 박사 논문으로 주목받는 호킹의 ‘우주’는 장애인의 헛된 상상이라며 동료들에게 무시당하지도 않았다. 그는 루게릭병이 악화되어 자신의 목소리까지 잃은 후에도 유머러스한 모습을 유지하며 주목받는 연구결과를 끊임없이 내놨다. 혹자는 호킹의 사례를 들어 장애를 개인의 문제로 취급하기도 한다. 호킹처럼 능력이 있거나,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만 견지할 수 있다면 장애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그가 구석기나 신석기쯤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리를 이루며 점점 많은 인류가 생존하기 시작했지만, 장애인에게, 특히 호킹과 같은 중증 장애인에게는 여전히 사는 게 쉽지 않다. 호킹이 몇 세기 일찍 태어났어도 마찬가지다. 금방 죽었거나, 서커스에 팔려 모두의 웃음거리가 되거나, 또는 마녀의 저주라며 손가락질 당한다. 그러한 시대에서 호킹은 유머러스한 삶은커녕, 삶 자체를 영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호킹을 살리거나 죽일 수 있는 것은 사회다. 장애인 스스로가 해결하기 어려운 거대한 문제는 분명 존재한다. 이 문제들을 단순히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사회가 약간의 도움을 통해 그들 스스로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줘야 한다. 유머러스하지 않아도 비장애인들과 어울려 살 수 있는 사회, 호킹 같은 중증 장애인들에게도 가능성을 열어주는 사회가 필요하다.
한국은 얼마나 준비된 사회인가
한국은 어떤 사회인가? 아쉽게도 아직 한국은 장애인에게 마냥 자유로운 곳은 아닌 것 같다. 이제야 개인의 장애를 대략적인 수치로만 계산하는 장애등급제와 사회의 책임을 개인에게 강제적으로 전가시킨 부양의무제에 대해 정부가 문제를 인식하고 장애인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장애인을 좁은 공간에 두고 반강제적인 활동만을 장려하던 중증 장애인 시설에 대한 문제 역시 인지하기 시작했다. 장애인의 이동할 권리, 문화를 향유할 권리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며, 그들의 권리를 말하는 게 옳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아직 멀었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며 희망의 봉화를 이어가고 있다.
이 봉화가 가장 급하게 지펴야 하는 곳이 있다. 장애 학생에 대한 교육이다. 작년 가을, 서울 강서구에서는 장애학교를 위해 학부모들이 자식이 장애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최근 열린 공청회에서도 여전히 반대하는 목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허준이 태어난 곳이라는 이유로 한방 병원이 들어서야 한다는 주장부터, 단지 장애인 시설이 강서구 내에 너무 많다는 주장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공청회장에 울렸다. 강서구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장애학교는 장애 학생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평균 등교 시간은 한 시간이 넘고, 입학하더라도 그러지 못한 다른 학부모에게 눈치를 봐야 한다. 장애 학생 학부모가 해결하기 힘든 이 문제에 대해 한국 사회는 어떤 대답을 내릴까.
엄격한 것보다 옳은 것
아이폰의 등장과 함께 스마트폰은 모두의 폰이 되었고, 인공 지능은 안 된다고 자부하던 바둑 세계도 알파고에게 왕좌를 넘겨줬다. 영화에서만 보던 자율 주행이나, 부드럽게 휘는 화면은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사회는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이제 장애인들도 호킹이 그러하였듯이 여러 장비를 사용해 그들의 의견을 얼마든지 전달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그들이 가진 잠재력을 펼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장애인에게 안타까운 눈초리만 보내거나, 그들의 권리를 위한 예산을 아까워할 것인가. 아니면 그 학생들의 특별한 우주를 만나기 위해 노력할 것인가. 호킹의 말을 빌려서 표현하면 우리에게는 ‘엄격한 것보다 옳은 것’이 필요하다. 호킹은 떠났고 우리는 남았다. 호킹이 남긴 우주만이 아닌, 우리의 가능성을 이야기하자. 그들의 특별한 ‘우주’를 마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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