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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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길’을 아시나요?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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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03월16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18년03월16일 16시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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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김광석 길)’은 수많은 명곡을 남긴 아티스트 김광석을 테마로 꾸며졌다. 김광석의 얼굴이 그려진 벽화를 배경으로 잔잔한 노래가 흘러나오는 김광석 길은 대구 여행 시 꼭 들려야 하는 명소로 꼽힌다.

 

2009년만 해도 김광석 길은 개발되지 않은, 방천둑 옹벽만 있던 지역이었다. 김광석 길옆의 방천시장 또한 사람들이 찾지 않던 전통시장이었다. 2010년 중구청과 시장 상인, 예술가는 방천시장을 살리기 위해 공동 프로젝트 ‘별의별 별시장’ 예술 프로젝트, ‘문전성시’ 사업을 펼쳤고, 이를 계기로 일대는 변환점을 맞았다.

 

옹벽 아래 방치된 길은 김광석을 테마로 한 벽화를 시작으로 ‘김광석 길’로 재탄생됐고, 시장의 빈 점포에는 예술가들이 입주했다. 야외공연장, 골목방송 스튜디오까지 들어서며 골목에 활기를 더했다. 공공예술과 전통시장의 만남에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지금은 한 해에 100만 명이 다녀갈 정도로 시민이나 관광객이 즐겨 찾는 거리가 되었다.

 

‘김광석 길’의 성공으로 주변 상가 또한 활황을 맞이했다. 김광석 길에 위치한 여러 카페와 음식점은 소위 ‘핫플레이스’로 통하며 ‘인증샷’을 남기기 좋은 장소로 통한다. 하지만 실제로 찾은 ‘김광석 길’은 인스타그램에서 보던 ‘핫플레이스’와는 사뭇 달랐다. 김광석 길 초입엔 임대를 놓는다는 광고가 붙여져 있었고, 길이 끝날 때까지 비어 있는 가게들을 볼 수 있었다.

 

김광석 길, 임대료 3년간 3배 상승

 

김광석 길이 점차 알려지게 되며 생각지 못한 부작용이 일어났다. ‘젠트리피케이션’ 이었다. 전통시장을 살리는 데 기여한 예술가들은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쫓겨났고, 방천시장 내 영세상인들 역시 오래 버티지 못했다. 방천시장 점포 60여 곳 가운데 영세상인이 운영하던 절반 정도가 지금은 새 주인을 맞았다. 

 

방천시장의 한 상인은 방천시장을 오랫동안 함께 했던 사람들이 상승한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떠났다고 밝혔다. “임대료가 비싸지면서 세를 감당할 수가 없으니까 사람들이 다 떠나는 거죠”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착잡한 기분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렇듯 낙후된 도시를 살리는 활성화 정책으로 상권이 활기를 띠면서, 기존 영세업자와 지역주민이 치솟는 임대료와 집값을 감당하지 못해 지역에서 밀려나는 현상을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한다.

 

김광석 길은 연구용역 결과로 대구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을 실제 확인한 첫 번째 사례다. 계명대 산학협력단 연구에 따르면 김광석 길 일대 공시지가는 5년 새 23.7% 올랐다. 평균 30m² 상가 월 임대료는 2011년 30만∼40만 원에서 2014∼2015년 90만∼100만 원으로 약 3배로 올랐다. 그동안 없던 권리금이 생기고 보증금 또한 500만 원에서 3000만 원으로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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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트리피케이션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

 

젠트리피케이션은 두 가지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젠트리피케이션 긍정론자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도시의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이를 과도하게 억제할 경우 오히려 도시의 슬럼화가 진행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또,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경제 성장으로 높은 임대료로 쫓겨난 사람들의 삶 역시 개선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와 반면에 젠트리피케이션 부정론자는 ‘도시에 대한 권리’라는 개념을 주장한다. 도시는 모든 시민의 힘으로 생성되고 유지되기에, 어떤 시민도 도시 공간이 주는 혜택으로부터 배제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개념에 따르면 젠트리피케이션은 기존 원주민으로부터 도시에 대한 권리를 빼앗고, 나아가 도시의 성장과 발전을 방해한다.

 

또, 부정론자는 대형 자본의 유입을 통한 ‘문화 백화현상’을 우려한다. 대형 자본, 프랜차이즈만이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랜차이즈의 골목 입성은 골목 고유의 색을 해치고, 동네의 문화적 매력을 상실하게 한다. 결국, 골목은 프랜차이즈만 넘쳐나는 ‘몰개성’ 거리로 전락하게 된다.

 

실제로 예술가들이 떠난 ‘김광석 길’에는 여러 프랜차이즈 음식점과 커피전문점이 들어섰다. 어디에나 찾아볼 수 있는 그런 커피전문점이었다. 길에서 만난 한 20대 행인은 “예전에는 아기자기한 소품 파는 가게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몇 개밖에 남지 않았다”며 “그 자리에 프랜차이즈 카페가 자리 잡으면서 이 거리만의 특색이 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김광석 길’을 자주 찾는다는 40대 행인은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서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황폐했을 때 보다는 훨씬 보기 좋다. 사람들이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을 개발하니 활기가 돈다”고 고백했다. 

 

핵심 키워드: ‘상생’

 

김광석 길은 성공적인 도심재생사업 모델로 꼽히는 동시에 대표적 젠트리피케이션 사례로 지적된다. 이렇듯 젠트리피케이션이 도시의 발달에 따라 생겨날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해도, 소수의 권리를 박탈하는 현상을 마냥 손 놓고 볼 수는 없다. 

 

모두의 권리 보장을 위해 젠트리피케이션의 장점은 극대화하고 단점을 최소화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여기서 중요한 키워드는 ‘상생’이다. 도시의 발달을 추구하면서 주민들과 함께 상생할 수 있어야 모두의 권리가 지켜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성동구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완화하기 위해 관련된 조례를 재정하고 전담 부서를 신설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이에 더해 성동구는 뉴욕시의 ‘커뮤니티 보드’를 벤치마킹해 상호협력주민협의체를 운영하고 있다. ‘커뮤니티 보드’는 도시계획에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자문기구로, 지역 주민들은 커뮤니티 보드를 통해 정책 의사결정 전반에 대해 의견을 피력할 수 있다. 성동구의 상호협력주민협의체 역시 입점제한업체 입점동의, 임차권 보호, 지속가능발전에 대한 주민 의견 수렴 등의 사항을 협의 자문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성동구의 상호협력주민협의체는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대책을 선도적으로 추진해 온 결과 지난 1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시행령 개정’을 끌어내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이렇듯 주민협의체와 성동구청의 협력은 ‘상생’을 위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대책의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물론, ‘상생’을 위한 조례 재정과 대책 마련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높은 임대료로 경제적인 혜택을 얻을 수 있는 건물주 입장에선 상생협약체결이 불합리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건물주와 세입자의 ‘상생’만이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길이다. 프랜차이즈 입성으로 문화 백화현상이 일어나면 골목의 개성이 사라져 찾는 사람이 줄고, 결국 상권이 죽게 된다. 모두에게 손해인 것이다. 건물주가 뒤늦게 임대료를 내린다 해도, 이미 죽은 상권을 회복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표류하는 대구의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

 

성동구와 달리 대구 중구청의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안’은 2년째 통과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중구의회가 ‘재산권 침해’라는 이유로 조례 재정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구청은 기존 조례안에 ‘상생협력상가’라는 조항을 집어넣어 구의회 설득에 나선다고 한다. 이 조항은 개별 상가의 임대, 임차인이 임대료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생협약’을 체결하면, 구청이 예산 범위 내에서 시설보수, 환경개선 등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중구청은 다음 달 열리는 구의회 임시회에서 조례 재정을 끌어낼 방침이다.

 

골목은 자본뿐만 아니라, 골목만의 특색이 있을 때 오랫동안 번성한다. 대구의 명소인 ‘김광석 길’이 오래 사랑받으려면,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대책이 조속히 마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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