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박물관 산책, 어떠세요? (上)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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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멘토의 초대장
“우수 경칩에 대동강 풀린다”는 속담이 있다. 지난 2월 19일은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을 맞이한다는 우수(雨水)였다. 겨우내 실내에서 생활하느라 찌뿌둥해진 몸을 일으켜 슬슬 야외 활동을 탐색해볼 때다. 평창올림픽을 보는 동안 거실에서 엉덩이 들썩이던 심정은 알지만 무작정 뛰쳐나갈 수는 없는 노릇, 준비 운동 격으로 박물관 산책은 어떨까?
마침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한글박물관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기념 특별전을 하고 있다. 전 세계인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 올림픽의 여운이 박물관에서 이어진다. 국립중앙박물관 청년 멘토의 경험을 더해 이번 전시의 감상 포인트를 알려드리고자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동아시아의 호랑이 미술>
한국 국립중앙박물관, 중국 국가박물관,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전시다. 호랑이는 동아시아인들이 예부터 공통으로 사랑하는 동물이었다. 호랑이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통해 한·중·일 문화의 보편성과 독자성을 엿볼 수 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마스코트는 수호랑이다. 수호랑은 백호를 모티브로 하여, 올림픽 관련자들을 ‘수호’한다는 의미와 강원도 정선아리‘랑’을 합쳐서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3분의 2가 산으로 이루어져 일찍부터 호랑이가 많이 서식했다. 세계적으로 9종의 호랑이가 있는데, 한반도에 서식하던 호랑이는 시베리아종이다. 엄밀히 말해서 백호는 인도 벵골 호랑이의 변종이다. 시베리아 호랑이는 거의 멸종 상태로, 함경도 깊숙한 산 속에 적은 수의 개체만이 살아 있다고 한다. 현재 전 세계엔 6종의 호랑이가 남아 있다.
전시관 입구에 들어서면, 근·현대 작품들이 먼저 보인다. 그보다 한국의 호랑이-일본의 호랑이-중국의 호랑이로 이어지는 전시관을 모두 둘러본 후, 맨 마지막에 최근 작품들을 감상할 것을 추천한다. 과거 3국 작품에선 호랑이의 상징성에 주목해야 한다. 최근 작품에선 화려한 표현법이 눈에 띈다. 선(先) 호랑이 상징성 이해, 후(後) 작품 기법 감상의 흐름이 매끄럽다. 입구와 출구가 같으니, 나중에 감상하더라도 동선에 무리가 없다. 전시 해설 시간에 맞춰 방문하면 해설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한국의 호랑이
호랑이의 상징성은 다양하다. 군자, 난세의 영웅, 산신(山神) 지킴이, 귀신을 쫓는 벽사(辟邪), 다산(多産) 까지, 좋은 의미는 다 갖고 있다고 보면 된다. 특히 한국 문화에선 호랑이를 해학적이고 친근한 존재로 여긴다. 우리 불화(佛畫)에 등장하는 호랑이를 보면 알 수 있다. 불교에서는 16명의 뛰어난 제자를 ‘16나한’이라고 한다. 그 중 호랑이를 전담으로 다루는 부처님 제자가 있었다고 한다. 나한 앞에서 순한 양처럼 엎드리고 있거나 나한 품에 안겨 있는 호랑이 모습을 담은 작품을, 한국 호랑이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호랑이와 매가 함께 등장하는 작품도 있다. 매는 재앙을 물리치는 동물이고 호랑이는 귀신을 쫓으니, 둘이 결합한 그림은 삼재(三災)를 막아주는 부적으로 여겨진다. 까치, 소나무, 대나무도 호랑이와 함께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까치, 소나무는 전통적으로 길상(吉祥)의 의미가 있어 영물(靈物)인 호랑이와 같이 그려지는 게 자연스럽다. 특히 조선시대 신재현이 그린 <호랑이와 까치> 민화는 인상적이다. 좋은 의미를 지닌 소재를 몽땅 그려 넣어 복된 삶을 바라는 백성들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호랑이는 본래 혼자 살아가는 동물이다. 그런데 조선시대 유치봉의 <산중을 노니는 호랑이들>이라는 작품은 무리 지은 호랑이를 그린 군호도(群虎圖)다. 호랑이를 통해 인간 세태를 묘사한 흥미롭다.
일본의 호랑이
일본에는 호랑이가 서식하지 않는다. 일본인들은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호랑이 무늬 청동거울을 통해 ‘호랑이’라는 동물의 존재를 알게 됐다. 실제로 호랑이를 본 적이 없으니, 호랑이 모습을 제대로 묘사하기 힘들었을 테다. 호랑이를 그린 몇몇 일본 작품들을 보면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다. 우리나라 호랑이의 눈동자는 동그란 반면, 일본 회화에 등장하는 호랑이 눈동자는 길쭉하다. 고양이 눈동자를 참고해서 그렸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호랑이는 ‘용맹함’의 대명사다. 사무라이 전투복이나 소방수 방화복에 호랑이 무늬를 넣어 용맹함을 강조했다. 일본에서도 병풍에 호랑이를 그렸다. 우리나라는 병풍을 폭으로 세지만 일본은 쌍으로 센다. 호랑이가 그려진 병풍과 용이 그려진 병풍이 한 쌍을 이룬다. 거센 기운을 강조하려고 파도를 배경으로 그리기도 한다. 에도시대 간쿠는 “호랑이에 미친” 화가로, 호랑이를 직접 볼 수 없으니, 중국에서 호랑이 두개골을 수입해 골격을 연구해가며 호랑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전시관에 있는 간쿠의 <호랑이와 파도를 그린 병풍>을 놓치지 말자.
중국의 호랑이
중국 대륙에선 동북 지역과 남쪽에 아모이 호랑이가 서식했다. 중국은 고대부터 호랑이를 숭배해왔다. 중국에서 호랑이는 ‘수호신’의 의미가 강하다. 중국의 호랑이관을 둘러볼 때는 호랑이가 들어간 유물을 중점적으로 봐야한다. 권력자들은 전쟁 용품에 호랑이 무늬를 많이 새겨 넣었다. <호랑이 장식 꺾창>이 대표적이다. 전장에 나간 장수와 왕은 호랑이 모양 조각을 반씩 나눠가졌다. 왕이 가진 호랑이 조각이 장수에게 전달돼 그 모양이 하나로 딱 맞으면, 전쟁 개시를 의미했다고 한다. 전쟁터에서 진군과 퇴각을 알릴 때 사용하는 북에도 호랑이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나중에 민간에서도 호랑이가 들어간 물건을 많이 쓴다. 중국 금나라 때 호랑이 모양 도자기 베개인 <호형자침·虎形磁枕>이 눈에 띈다. 호랑이는 양(陽)의 기운이 강해 음(陰)의 기운을 가진 귀신을 막아준다고 한다. 호형자침은 자는 동안 호랑이 기운을 빌려 악몽을 물리쳐주는 유물로 알려져 있다. 호랑이의 상징성을 부각하는 유물 제작은 후에 한국과 일본에도 전해진다. 18세기 청나라 화가인 이세탁(1687~1771)이 손가락으로 그린 호랑이 그림도 인상적이다. 모르고 보면 손가락으로 그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힘들다. 전시관에 가서 그의 손길이 닿아있는 그림을 찾아보길 바란다.
마무리로 호랑이 다큐멘터리 <호랑이, 우리 안의 신화> 순서다. 영상실은 근·현대 호랑이 전시실 옆쪽에 자리잡고 있다. 박종우 감독이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 헤이룽장성 호랑이 야생보호소를 찾아 2017년 가을부터 겨울까지 촬영한 6분 50초 길이의 영상이다. 정면뿐 아니라 좌우 벽면까지 스크린으로 활용해 호랑이 모습을 실감나게 볼 수 있다.
이번 평창올림픽 때 마스코트 수호랑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동아시아의 호랑이 미술展>을 보고 나면 호랑이가 한층 가깝게 느껴진다.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모두 흥미롭게 볼만한 전시다. 참, 호랑이·소나무·산 모양의 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 ‘나만의 엽서’를 기념품으로 잊지 말자.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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