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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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과 비평 사이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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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01월19일 16시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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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방송’을 폐지하라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는 전국학부모교육시민단체연합(전학연)과  기독교 부모들 등이 EBS 프로그램 중 하나인 <까칠남녀>를 향해 외친 말이었다. 몇 학부모는 방송사 앞에 계란을 던지거나 바닥에 들어 눕고, 한 쪽에서는 콘돔을 씌운 당근을 던지고 있었다. 음란(淫亂), ‘음탕하고 난잡하다’는 사전적 의미가 누구를 향해 설명하고 있는지 모를 기이한 현상이었다.

 

‘음란’ 방송의 논거는 EBS 프로그램 중 하나인 <까칠남녀>가 다룬 ‘성소수자(LGBT) 특집’에서 불거졌다. 이는 수많은 ‘비평’을 낳았다. 다양한 해석과 반응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시청자들은 댓글이나 블로그 등의 형태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여기서 중요했던 또 다른 논점 중 하나는 청소년들이 주 시청자인 EBS가 교육방송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한국에서 꼭 필요했던 방송’이라며 칭찬했다. 이러한 개념이 익숙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도 성 결정권의 기회를 주고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는 비평이었다. 몇몇의 시청자는 ‘불편하고 보기 꼴 사납다’는 의견을 내비췄다. 심한 욕설을 하며 인신공격으로 도배된 악성 댓글이 큰 부분을 차지했다. 

 

문제는 이 방송에 대한 비평이 프로그램의 텍스트에 대한 비평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프로그램이 구성방식이나 다루고 있는 내용보다는 이를 전달하는 출연자들과 성소수자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자신의 신념에 반대되는,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전면으로 부인했다. 이는 비평을 가장한 폭력과 배척이다. 즉, 작품의 생산적 관계를 위해 주고받는 피드백이 아닌 단순한 감정적 반응이었다. 

 

과거 전문가들의 영역이었던 비평은 대중문화의 확산과 함께 비평의 대상을 다양화시키면서 비평가의 기준과 조건에 대한 범위까지 확산시켰다. 비평가를 기준 짓는 경계가 허물어진 것이다. 비평의 대상인 컨텐츠 역시 문학과 영화뿐만 아니라 특정 인물의 의견이 담긴 짧은 글까지 그 범위가 넓어졌다. 가령 하나의 짧은 글에 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트럼프의 트위터부터 페미니즘을 키워드로 다는 수많은 글들이 그러하다. 

 

오늘날 미디어 상에서 이뤄지는 대중의 피드백은 배제와 폭력을 기반으로 한다. 자신과 맞지 않는 이념은 배척하고 폭격하는 형태다. 이는 왜곡된 형태의 타인대비 자기선호인 자기편애(amour-propre)의 발현의 형태 중 하나다. 루소는 자기사랑(aour de soi-meme)을 자연 상태에서의 자연적으로 갖게 되는 감정으로 설명한다. 이 감정은 동물이 자기 보존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고 나아가 이성(raison)과 동정(pity)을 통해 인간미와 덕성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반면 자기 편애는 사회 상태에서 생겨나 경쟁과 배제를 불러일으킨다. 즉, 이기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고 다른 이들이 져야 한다는 마음이다. 이 마음은 진정한 자기애와 목표 성취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에 대한 장애물을 파괴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비평이란 비평가의 주관적 가치와 취향이 투영되는 작업이다. 그럼에도 비평에는 절대적인 객관성이 아닐지라도 그에 준하는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 여기서의 전문성이란 엘리트적인 고차원적의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논제를 합리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정당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각 개인의 취향으로 작품 감상 행위가 끝나는 시대다. 

 

그래서 비평 역시 하나의 취향으로 배치되고 감상 또한 일반 상품과 다를 것 없는 소비행위로 전락한다. 텍스트를 비평하지 않고 논외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이유다. 이러한 환경에서 건강한 비평의 힘은 점점 약해진다. 비평에 담긴 자신의 이념과 이데올로기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두렵다. 자신과 맞지 않는 이념을 맹렬히 비난하고 위와 같은 비평을 세련되지 않다고 평가하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결국, 비난의 표적이 됐던 은하선 패널은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EBS가 은하선 작가의 출연을 정지한 것이다. 그가 공영방송 출연자로서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는 EBS의 입장은 성소수자 혐오 단체들의 ‘프레이밍’에 굴복한 결과다. 녹색당은 “공격과 혐오와 마주한 출연자를 보호해야 할 공영방송인 EBS가 합당하고 강경한 대응은커녕 은하선 작가를 제물로 바치고 사태를 수습하려 했다”고 비판했다. 방송법 제 5조 6항에 따르면 방송은 소수자와 약자 집단의 이익을 충실히 반영하도록 노력할 의무가 있다. 방송을 통해 다양한 텍스트가 대중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다양한 담론과 견해, 주장은 방송을 통해 접해지고 대중에 의해 교환되어야 한다. 비난이 아닌 비평이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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