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수칙 지키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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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일본 도쿄를 다녀온 친구가 여행 후기를 전해주었다. 일본에서 먹은 맛있는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그녀는 내 예상과 다른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녀가 일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 손잡이를 닦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잠깐 질문, 에스컬레이터 손잡이를 닦는데 사람 몇 명이 필요할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녀가 본 바로는 총 4명이 필요했다. 손잡이를 닦는 사람 두 명과 에스컬레이터 위, 아래 끝에서 각각 에스컬레이터 이용불가 안내를 맡은 사람 두 명이다. 청소 중인 걸 모르고 사람이 몰려 사고가 나거나 헛걸음하는 걸 방지하려고 ‘안내원’까지 두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 취객이 비틀거리다 승강장 안전선을 넘자 어디선가 지하철 직원 둘이 달려와 취객의 양 팔을 잡고 안전선 밖에 서게끔 했단다. 그녀가 머문 동네 한 켠에는 공사장이 있었다. 인적이 드문데도 야광 조끼를 입은 안전요원은 밤새 공사장 입구를 지켰다. 처음엔 비효율적이라고 여겼는데 나중엔 ‘일본은 안전 규칙 준수가 철저한 사회구나!’라고 느꼈다고 한다. 인력 낭비처럼 보일지라도 매뉴얼에 따라 안전 요원을 두는 게 일본에선 당연했다. 그녀가 유독 이런 장면들에 주목한 건 한국 사회에서 잇따라 발생하는 사건·사고를 안타깝게 여겨서일 테다. 그녀가 도쿄에 가 있는 일주일 사이에도 한국에선 “광교 오피스텔 공사 현장 화재” “빙판길 차량 연쇄 추돌” “크레인 버스 위로 쿵”하는 사고들이 뉴스를 장식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고는 29명의 사망자를 낸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였다. 화재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피해를 키운 원인은 분명하다. 그 중 하나가 불법 주차다. 지난 12월 21일, 화재 발생 당시 소방 사다리차는 스포츠센터 앞에 불법 주차된 차량 때문에 진입로를 확보하지 못해 약 500m를 돌아가야 했다. 소방차 진입이 늦어지니 구조 골든타임을 놓치고 인명 피해는 커졌다. 이후 불법 주차에 대한 비판과 자성(自省)의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화재 발생 닷새 후 다시 찾은 제천 참사 현장에는 여전히 불법 주차된 차량들이 길을 막고 있었다. 새해 첫 날에는 경포대에 일출을 보려고 몰려든 차량 중 일부가 경포안전센터 앞마당까지 들어와 불법 주차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금방 갔다 올 거라서…’ ‘나 하나쯤이야’하는 생각이 사고를 참사로 키운다.
작년은 타워크레인 사고가 유난히 많았던 해다. 사망자 17명으로 최근 6년 중 가장 많은 사망사고가 있었다. 작년 5월에 있었던 남양주 공사 현장 사고와 지난 달 강서구에서 크레인이 버스를 덮친 사고는 특히 안타까웠다. 남양주 크레인 사고는 순정 부품을 쓰지 않은 탓이었다. 시공업체는 장비에 문제가 생기자 스페인 회사에서 순정 부품을 사 쓰는 대신 서울 한 철공소에서 모조품을 만들어 썼다. 타워크레인 부품은 완벽하게 들어맞아야 한다. 순정 부품이나 모조품이나 별 차이 없다고 여겼으니, 사고가 날 만 했다. 강서구에서는 건물 철거 현장에서 이동식 크레인이 기우며 옆 도로에 정차 중이던 버스를 덮쳤다. 철거 하루 전날 구청에서 허가 받은 공법 대신 다른 공법으로 바꾸었고, 연약한 지반 위에서 크레인을 운용한 탓이다. 이 두 사고는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은, 명백히 ‘인재(人災)’였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 국가’에 대한 국민 열망은 커졌고 사고에 대한 경각심은 높아졌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와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타워크레인 사고에는 차이가 있다. 세월호 참사는 선박 불법 개조를 가능하게 했던 법과 무능한 정부 대처가 문제였다. 비난의 대상은 ‘정부’여야 마땅했다. 하지만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타워크레인 사고 관련해선 엄연히 규칙이 있었다. 제천 스포츠센터 주변에는 불법 주‧정차를 단속한다는 경고가 붙어 있었고, 공사 현장에도 타워크레인 안전 매뉴얼이 존재한다. 사고는 이를 무시한 ‘사람들’ 때문에 발생했다. 그동안 사고가 터지면 ‘안전 불감증’이라는 말이 자동으로 떠올랐다. 사고가 거듭되면서 안전 불감증이란 단어에 조차 ‘불감(不感)’하게 반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타워크레인 사고를 겪으며 안전 불감증을 비로소 통감(痛感)하게 됐다.
참사 이후, 정부는 소방차 진입을 방해하는 차량에 부과하는 과태료를 대폭 상향 조정했다. 또한 정부는 타워크레인을 전수 조사해 안전 점검을 강화한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가 법을 통과시키는 건 문제 해결의 시작일 뿐이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타워크레인 사고는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에 경각심을 일깨웠다. 스포츠센터 앞에 불법 주차했던 사람, 타워크레인 부품을 모조품으로 끼워 맞춘 시공업체 인부, 공사 하루 전날 철거 공법을 변경한 현장 소장, 크레인 기사만 비난하고 끝날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안전 규칙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일본을 두고 “규칙대로 사회의 위력”이 있다고 말한다. 한국 사회에도 일상 곳곳에 안전 매뉴얼을 준수하는 습관이 뿌리 내려야 한다. 사고는 언제 어디서든 터질 수 있고 한 번 발생하면 피해는 돌이킬 수 없다. 철저히 규칙을 지키는 것을 두고 느리다거나 비효율적이라고, 융통성 없다고 비난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안전 수칙을 가벼이 여기는 사람에게 엄중히 경고하는 사회적 감수성은 강경할수록 좋다. 2018년, 한국 사회에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의 사고 수습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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