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칼’ 청와대 국민청원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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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민주주의에서 ‘공론장’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가 강조하는 공론장이란 “공적 사용을 전제로 모든 시민이 아무 제한 없이 자유롭고 이성적으로 토론에 참여해 공공 이익과 관련된 문제들을 논의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사회적 삶의 영역”이다. 다시 말해 공론장은 국가와 국민을 이어주는 매개체다.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공론장’이 생겼다. 바로 문재인 정부의 ‘국민소통 광장(청와대 국민청원)’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째에 만들어진 국민청원제는 정부와 국민의 소통의 장을 열었다. 국민 누구나 청와대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청원과 제안을 할 수 있고, 만들어진 청원에 대해 자유롭게 참여할 수도 있다.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에 힘입어 게시글 5만여 건이 넘는 등 청원 게시판이 활발해지자 청와대는 30일 안에 20만 명 이상의 동의가 이루어진 청원에 대해서 공식 답변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더 나아가, 문재인 대통령은 20만 명에 미치지 못하는 청원이라도 사회적 관심이 높으면 답변할 것을 지시했다.
국민청원제가 시행된 지 100일 남짓인 현재 조국 민정수석은 20만 명이 넘는 청원 동의가 이뤄진 소년법 개정, 낙태죄 폐지, 조두순 재심, 주취감경 폐지 청원에 대해 답변을 내놓았다. 국민이 묻고 국가가 답하는 이 제도의 취지는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청원제로 국가가 국민적 관심사를 적극적으로 반영한다는 점과 쌍방향의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가 한 층 더 강화되었다고도 평가할 수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의 ‘명과 암’
열린 자세로 국민에게 다가가는 정부의 행보에 국민소통 광장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사적이거나 여론몰이성 청원들이 난무하면서 청와대 국민청원의 ‘명암’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하루 평균 500개를 웃도는 게시글이 올라오고 있다. 일부 누리꾼들은 어떠한 청원이든 올릴 수 있다는 장점을 악용해 진영논리에 입각한 이념적인 글들과 여론몰이식 글을 게재하며 사회적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특히, ‘기독교 금지법을 제정해주세요’, ‘여성 징병제 청원’ 등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성 짙은 글들이 빈번하게 게재되며 사회적 갈등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군내 위안부 재창설’이라는 상식을 뛰어넘는 글이 올라와 논란을 산 바 있다. 이에 일부 누리꾼은 ‘군내 위안부 재창설을 청원한 자를 처벌해달라’는 글을 게재하며 맞대응을 하기도 했다.
‘익명제’에 숨어 사회 윤리에 어긋나는 글들이 무분별하게 올라오면서 게시판에 자정 작용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열린 수석 보자관 회의에서 “어떤 의견이든 국민들이 의견을 표출한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문 대통령의 말처럼 공론의 장이 형성되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편향적이거나 몰상식한 청원들이 계속해서 쏟아진다면 게시판의 본래 목적은 점차 흐려질 수밖에 없다. 황당한 청원들이 자유로운 청원 참여와 소통의 순기능에 걸림돌이 된다면 공론의 장은 결국 ‘떼법’ 창구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무분별한 청원글과 더불어 중복투표와 청원 참여 조작 논란 또한 국민청원제의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다. 청원 참여는 네이버, 카카오, 트위터, 페이스북 계정으로 한 사람당 최대 4번까지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SNS 계정으로 청원에 참여한다는 점을 악용해 여러 개의 아이디 활용, 인터넷 주소 (IP) 변경 등을 활용한 ‘중복투표’ 방법이 공유되었다. 일부 누리꾼은 특정 청원의 참여를 독려하며 중복투표를 권유하기도 했다. 이에 한 누리꾼은 “만들어 두었던 트위터 계정으로 싹 다 청원했다”며 자랑스럽게 인증 게시글을 올렸다.
실제로 한 온라인 커뮤니티 상에서 중복투표 인증이 이어지자 낙태죄 청원의 정당성 논란이 불거졌다. 낙태죄 청원 동의 인원은 27일 3만 명, 28일 5만 명이었지만 하루 만에 15만 명이 늘며 목표치인 20만 명을 달성했다. 이 수치는 역대 청원 중 가장 빠른 증가세이다. 낙태죄 폐지가 사회적으로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정말 20만 명이 청원에 동의했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이렇듯 청원 동의 수만 충족하면 청와대의 답변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중복투표에 대한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중복투표가 성행한다면 여론이 과도하게 대표되는 문제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란이 지속된다면 소수가 여론을 왜곡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국민들을 위한 소통의 장이 ‘중복투표’로 얼룩진다면 공론의 장은 절대 활성화될 수 없다. 의도적인 중복 참여를 막기 위해서는 실명 인증제를 도입하여 1인 1청원으로 청원 횟수를 제한해야 하지만, 이는 자유로운 청원 참여에 제약을 걸 수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청와대 관계자 또한 “청원 동의 횟수에 대해선 국민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시민의식과 정부의 책임의식 동시에 수반되어야
국민청원제가 바람직한 소통의 장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양심’, 다시 말해 ‘시민의식’이 수반되어야만 한다.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창구가 일부 시민들의 도를 넘는 청원으로 떼법 창구로 변질된다면 정부와 국민이 소통할 수 있는 자리는 점점 더 줄어들 것이다. 또,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발걸음이 일부 황당한 청원글로 인해 제약을 받을 수도 있다. 정부가 시민들과 소통하기 위해 한 발짝 앞으로 다가온 만큼 우리 국민들 또한 성숙한 시민의식을 증명해야만 한다.
시민의식과 더불어 정부의 책임의식 또한 동시에 발휘되어야만 한다. 국민청원제는 자칫하면 청와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을 키울 수 있다. 청원 게시판이 여론을 반영하는 곳임은 분명하나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청원에 동의했다고 해서 청원이 정부 차원에서 무조건 반영될 수는 없다. 삼권분립 국가에서 청와대가 모든 청원을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조두순 재심과 낙태죄 폐지가 바로 그 예다. 두 청원은 정부의 권한을 넘어선 영역이며 입법부에서 논의되어야만 한다. 두 청원뿐만 아니라 게시판에 접수된 청원이 대부분 정부의 권한으로 답변하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보니 청와대의 답변 또한 원론적인 입장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조국 민정수석은 답변에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라는 입장을 줄곧 고수했다. 물론 정부 차원에서 예외적인 사안을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국민들이 청원에 참여하면서까지 듣고 싶었던 답변은 분명 아니었다. 만약 청원이 ‘사회적 논의’가 되어야 하는 지점에서 더 진행되지 못한다면, 청원은 결국 사회적 논란을 재확인하는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정부 당국은 청원을 입법부 또는 사법부의 몫으로 돌리더라도, 책임의식을 가지고 청원에 대해 끝까지 관심 가져야만 한다. 정부가 책임 있는 태도로 청원에 대해 함께 신중히 논의하고 해결책을 모색한다면 소통의 창구는 크게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이 ‘떼법창구’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정부와 국민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소중한 창구임은 틀림없다. 여러 우려를 딛고 시민의식과 정부의 책임의식이 수반돼 청원제의 역기능을 극복하고 순기능을 살리기를 기대한다. 정부의 청원제에 대한 포부처럼 “(청와대 국민청원이) 앞으로도 다양한 방법으로 국민과 소통하며 사회적 논의를 발전시키고 우리 삶을 위한 정책을 ‘국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통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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