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군인’의 귀순, 우리는 그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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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3일, 북한군 병사 한 명이 판문점을 넘었다. 심각한 총상을 입은 그는 수술을 위해 아주대학교 중증외상센터로 옮겨졌다. 15일, 수술을 맡았던 이국종 교수는 기자회견을 통해 상태의 경과를 설명했다. 여기서 화두에 오른 것은 단연코 귀순 병사의 내장에 가득했던 기생충이었다. 기생충의 혐오스러운 이미지가 생생하게 펼쳐졌으며, 언론은 ‘기생충 병사’ 등의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써가며 대서특필했다. 전시된 기생충은 북한의 낙후한 위생 상태와 의료 시스템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대중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이렇게 일단락 되는가 싶던 귀순 사건은 정의당 김종대 의원이 기생충을 공개한 행위의 적절성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다른 국면을 맞이했다. 김 의원의 문제 제기는 두 가지였다. “환자의 내밀한 정보 유포, 인권 침해이지 않은가” 와“귀순 병사를 남한의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고 있지 않은가?”
<정보공개 방식은 보다 섬세했어야>
먼저 귀순 병사의 개인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인권 침해인지의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전쟁의 위험이 일상화된 현실 속에서 귀순 병사의 정보는 공적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공적인 필요성만을 근거로 개인 정보를 무제한적으로 유포할 수 있는 당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공개된 정보가 김종대 의원의 표현대로 “총격으로 인한 외상과 전혀 무관한”내용이라면, 이를 유포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 이국종 교수는 7일, 자유한국당의 세미나에 참석한 자리에서 “분변 오염과 기생충은 굉장히 중요한 수술적 소견”이라고 항변했다. 이국종 교수의 말처럼, 발견된 기생충이 총상과는 무관하지만 환자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일 수 있으므로 정보 공개 자체를 두고 인권 침해라 규정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정보를 공개한 의도와 별개로 이를 공개하는 방식은 섬세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기생충의 이미지를 진열하듯이 생생하게 공개함으로써 이에 대한 혐오와 공포의 감정이 확장되었다. 그 혐오가 귀순 병사 개인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환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유포된 정보가 혐오와 공포의 이미지로 치환되는 상황에 대한 문제 제기는 필요했다. 내밀한 사적 정보가 대중에게 던져 졌을 때 의도가 왜곡된 채 무한 증식되는 현실은 개인에게 폭력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위한 기자 회견인가>
더 중요한 쟁점은 기생충을 전면에 내세운 기자회견의 기획 의도와 이것이 소비되는 방식이다. 김종대 의원은 본인 페이스북을 통해 “누가 이 기자회견을 하도록 압박을 넣은 것일까요?”라며 기자회견에 개입한 군 당국을 향해 의구심을 표했다. 이국종 교수 역시 21일 채널A와의 인터뷰를 통해 “공개한 모든 정보는 합동참모본부와 상의해 결정했다”며, 기생충 정보의 공개가 사실상 정부 가이드라인의 영향 아래 있었음을 인정했다. 군 당국의 철저한 손익 계산이 의심스럽다.
이국종 교수에 대한 든든한 신뢰도 근거가 되었겠지만, 정부에 이득이 된다는 판단 없이 기생충 정보가 공개되기 어렵다는 뜻이다. 정부가 기자회견에서 기생충을 전면에 드러내어 북한 체제의 낙후함을 강조하려 했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기생충이 가지고 있는 불결함, 빈곤, 저발전의 함의는 명확하고, 각인되기 쉽다. 실제로 정보가 공개된 뒤 언론과 대중은 북한 사회가 얼마나 미개한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과거 국민의 분뇨를 채집하며 회충 박멸에 힘써온 남한 사회는 더 이상 기생충에 시달리는 후진 국가가 아니었다. 따라서 북한에 대비되는 남한 체제의 우월성은 효과적으로 부각될 수 있었다. 냉전적 사고가 인권에 대한 성찰보다 우선하는 남한의 현실을 보여준다.
<프레임에 갇힌 문제제기>
김종대 의원의 문제 제기는 언론이 만들어 놓은 대결구도의 프레임 속에 갇히면서 길을 잃었다. 김종대 의원이 글을 올린 이후, 보수 언론은 “이국종 저격한 김종대” “졸지에 ‘인격 테러범’으로 몰린 이 교수”라는 등의 자극적인 문구들을 사용해 그의 문제 제기를 무색하게 했다. 언론은 이를 두 개인 사이의 감정 싸움으로 묘사하며, 인권, 의료 윤리, 정부의 의도, 언론 보도의 선정성 등에 대한 논쟁점들을 은폐했다.
22일, 이국종 교수는 2차 브리핑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건 이벤트가 아닙니다. 지엽적인 것만 보지 말고, 의료 현실의 백그라운드를 들여다보십시오.”라며 언론의 각성을 요구했다. 그의 격한 반응은 김종대 개인에 대한 반박이라기보다 중증외상센터의 열악한 사정으로 고통 받는 환자와 의사들의 아픔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언론은 이를 삭제한 채 편집된 ‘이국종vs김종대’ 구도를 영웅과 악당의 싸움으로 채색했고, 악당을 향한 대중의 공분이 이어졌다. 결국 논쟁은 김종대 의원의 사과로 귀결되었다. 무엇에 대한 사과였는가? 군 당국과 언론에 대한 문제 제기는 대답을 잃은 채 여론에 떠밀려 무릎을 꿇었다.
사명감으로 극심한 과로를 극복하는 의사에게 제기된 김종대 의원의 문제 의식은 가혹한 것으로 비춰 졌을 수 있다. 그를 칭송하는 국민 여론에 반하는 의견이었기에 더욱 조심스러운 어조가 필요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수가 원하고, 생각하는 방식으로만 사회가 운영되는 것은 위험하다. 감정에 기반한 다수의 생각은 때로 틀릴 수 있다. 방식에 대한 비판이 아닌, 문제 제기 자체에 대한 매도는 새로운 주장을 펼치기 어렵게 만든다.
귀순 병사로 인해 생긴 일련의 사건들에서 우리는 다양한 이야기의 맥락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공적 영역에서 인권에 대한 가치 판단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 정부와 언론이 귀순 병사를 어떤 방식으로 다루고 있는지, 자원의 적절한 배분을 통해 응급의료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이 모든 문제 제기와 논의들은 언론의 편집과 여론의 폭력으로 가려졌다. 인권의 차원에서 소신을 밝힌 김종대 의원이 종북으로 규정되는 남한의 현실이 눈을 뜬 귀순 병사의 눈에 ‘우월한’ 자유민주주의로 보일 것인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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