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맞대어 고민하는 환경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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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의 정치는 그 형태와 특징을 달리하며 실패와 성공을 거듭해 변해 왔다. 오늘날 문재인 정부 역시 특정한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이에 걸맞은 정치 형태를 내세우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어떤 민주주의를 추구하고 있을까?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국민 청원 게시판’과 지난 10월에 실시된 ‘원전 공론화’ 등에서 우리는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위의 두 행보는 촛불 시민 혁명에 따른 직접민주주의 그리고 쌍방향의 열린 소통을 연상시킨다.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국민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요구한다. 문재인 정부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정치 이념인 숙의민주주의를 강조한다.
포항 지진 이후, 고리 원전과 월성 원전 주변 부산과 울산 시민들의 불안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백지화 논의와 함께 원전에 대한 우려가 또 다시 떠오르는 것이다. 이에 문재인 정부가 강조하는 숙의민주주의는 환경 분야에서 해결책 중 하나로 꼽힌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환경문제 극복의 어려움
민주주의 체제에서 지도자의 임기는 통상 4-5년이고 기껏해야 한 번 연임한다. 따라서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 볼 수 있는 시간적 지평은 대단히 제한되어 있다. 그런데 환경문제는 그 특성상 장기적인 차원의 대책 마련을 요할 때가 많다. 가령 핵폐기물에서 나오는 방사능 물질 중에는 안정 상태로 되돌아가는 기간, 즉 반감기가 만 년에서는 길게는 백만 년에 이르는 것도 있다. 민주적인 정부라면 4년 이내에 다가올 선거에서 대중이 선호할 단기적인 처방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지도자들은 권위 아래의 결정을 존중한다. 현재의 상황이 위기상황이라는 점에 공감하고, 위기 타개책으로 강력한 상호 규제에 합의해야 한다. 각자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현재의 시스템에서 환경이라는 공공재적 성격이 강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종의 ‘상호 합의에 의한 상호 강제’가 필요하다는 사실, 정상적 절차로는 난국에 대처할 수 없으니 강력한 권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성적 숙고’를 통해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여기서 ‘이성’의 역할은 위기에 직면해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함께 모색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해 우리의 판단력과 자유를 전문가와 같은 절대자에게 양도하는 소극적인 지혜에 머무른다는 점이다.
적극적인 머리 맞대기, 숙의민주주의란?
숙의(deliberation)는 다른 종류의 의사소통과 구별되는데, 그 이유는 숙의자가 서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판단과 선호 그리고 견해를 바꿀 태세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또 숙의는 설득과 관련된다는 점에서도 투표, 협상, 흥정, 이익 총합과 대비된다.
또한 숙의민주주의는 선호 교육의 의미를 지닌다. 숙의적 의사결정은 대중들이 갖고 있는 선호를 모아 그것에 기초해 선호 만족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시장이 전제하고 있는 선호 총합적 민주주의와 다르다. 선호 총합적 민주주의에서는 개인들이 선호를 미리 주어진 것으로 전제하고, 이것들을 공평하게 모으는 집합적 결정을 민주주의로 본다. 이에 반해 숙의민주주의는 참여와 숙의의 과정에서 선호와 가치정향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투표만이 공평한 민주주의가 아니다
즉 시민들의 선호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대화, 토론, 숙의를 통해 변화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결국 숙의적 의사결정의 과정은 상호 발견, 설득, 교정의 과정을 통해서 집단적 의사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이다. 여기서 시민들은 자신의 선호를 형성하고 자신의 잘못된 선호를 교정할 기회를 갖는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사안에 대해 아직 확실한 의견 형성이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또는 의견 형성이 이루어졌다 할지라도, 그 사안에 대한 일정한 정보를 갖고 타인들과의 충분한 대화와 토론 과정을 거쳐 자신이 이전에 가졌던 선호와 판단이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런 선호의 이행을 통해 더 책임 있는 판단이 가능하며 동시에 합의의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것이 숙의민주주의자들의 기대이다.
환경문제에서 전문성의 역할, 결정자 아닌 인도자
환경문제는 전문성을 요구할 때가 많다. 환경 관련 쟁점 중에는 물리학, 생물학, 사회학적 인과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들이 많고, 또한 환경변화 중 어떤 것들은 누적적 변화과정을 거쳐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나 식별이 가능해, 일상적인 지각으로는 제대로 그 위험성을 인식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이때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일반시민이 인지하지 못한 장기적인 위험을 알려주고, 복잡한 전문지식을 알기 쉬운 형태로 분석해 시민들이 이를 기초로 책임 있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 때 합의회의 모델은 전문가의 강의나 질의응답을 통해 대중들이 전문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결론적으로 주변문화와 공론 영역 내부에서 자연에 대한 광범위한 숙의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시민들은 환경과 생태계의 상호 의존성에 눈뜨게 될 기회를 갖는다. 숙의민주주의와 환경가치간의 필연적 연관은 없다. 즉 숙의가 우리 사회의 녹색화를 가져다준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숙의는 현존하는 다른 의사결정 장치보다는 자연에 대한 배려가 가능하며, 무엇보다 다양한 환경가치와 자연세계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공론영역에서 발언되고 고려되는 통로를 제공하며, 이를 통해 시민들의 생명·생태 의식을 고양시킨다는 점에서 환경 문제의 해결 과정으로 모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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