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 불안 더 키운 식약처의 ‘엇박자 행보’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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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필수품인 생리대 안정성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특히, 가습기 살균제부터 살충제 계란 파동 등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생활 속 화학물질이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이미 경험한 국민들의 불안감은 ‘케미포비아(화학물질 공포증)’로까지 확산됐다.
지난해 10월 여성환경연대와 김만구 강원대 환경융합학부 교수팀은 생리대 독성 실험을 자체적으로 시작했고, 올 2월 10개 생리대 제품에서 총휘발성유기화합물질(TVOC)가 검출됐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여성환경연대는 생리대 제조회사에 유해물질 검출시험 결과를 보내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업체들은 이 사실을 일찍이 알고서도 생리대 유해 가능성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지난달 21일까지 약 6개월간 모르쇠로 일관해왔다. 여성환경연대의 위험 경고를 전해 받았음에도 불구, 침묵을 지키며 별다른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여성 소비자들은 해당 업체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며 분노를 표출했다.
물론 김 교수팀의 연구 결과를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달 30일 김 교수의 실험이 객관적인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과학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소비자의 불안감이 높아지자 식약처는 본래의 주장을 뒤엎고 4일 여성환경연대가 최종적으로 제출한 보고서와 유해물질이 검출됐다는 의심을 받는 제품명을 대리 공개했다. 식약처는 “생리대 유해성에 대한 정부 조사를 투명하게 진행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취지”라며 “여성환경연대나 김 교수팀이 결과를 발표하는 게 맞지만, 여성환경연대가 공개 여부를 식약처에 위임해 다신 공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투명한 조사를 입증하기 위해 식약처가 시민단체 조사 결과를 공개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식약처는 앞서 “김 교수팀의 자료가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입장을 꾸준히 고수했고, 소비자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느닷없이 ‘신뢰성을 인정하지 않는’ 조사자료를 공개했다.
또, 어떤 제품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자료만 공개한 발표는 소비자들의 혼란을 더 부추겼다. 식약처가 논란을 수습하기 위해 모든 제품명을 대리 공개해야 했다면 여러 자료를 분석해 해당 제품이 왜 유해한지 또는 왜 유해하지 않은지에 대해 설명했어야만 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무책임한 처사에 소비자들은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식약처의 ‘오락가락 행보’에 소비자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소비자들의 좌절감과 불안감은 ‘면 생리대’와 ‘생리컵’ 직구 매출 급증으로 나타났다. 이는 분명히 여성들의 불안한 심리를 입증하는 결과이다.
하지만 대다수 소비자는 발암물질 논란에도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가장 손쉽게 쓸 수 있는 일회용 생리대를 대체할 수 있는 제품이 아직은 없기 때문. 특히, 일회용 생리대 대체품으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생리컵’은 의약외품으로 분류되어 아직 국내에 판매 허가가 나지 않았다. ‘생리컵’을 사용하기 위해선 해외 직구 사이트를 이용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기에 많은 여성은 찜찜한 마음으로 어쩔 수 없이 일회용 생리대를 선택하게 된다.
분통이 터질 일이지만, 최소 한 달에 한 번 사용해야 하는 생리대 사용을 멈출 수도 없을 터. 소비자들은 피해를 오롯이 떠안고 불안에 떨고 있다.
이와 더불어 식약처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이 여성환경연대와 정부, 업체의 시각이 엇갈리며 진실공방으로 번졌다. 애초에 여성환경연대가 논란이 불거질 때 제품명을 투명하게 알리지 않고 단 한 제품명만을 공개했기 때문. 일부 여론은 실험비 출처와 경쟁사와의 관계 등을 거론하며 여성환경연대의 배후에 대한 의구심까지 제기했다. 가장 먼저 제품명이 알려져 큰 피해를 입은 깨끗한나라 측은 명예훼손 등으로 김 교수를 고소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그렇지만 최종 결과 발표에는 모든 제품명이 공개됐고, 국제암연구소가 규정한 1, 2군 발암물질에 대한 검출 총량이 가장 높은 것이 유한킴벌리 제품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이 가운데 ‘배후’에 집착하며 진실공방을 벌이는 것은 오히려 생리대 유해성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정부와 여성환경연대가 시험 결과를 놓고 ‘진실공방’을 벌이며 각자에게 유리한 정보만을 공개하는 사이 여성들의 걱정은 깊어지고 있다. 본말이 전도됐다. 책임 공방을 벌이기 전 과학적 방법으로 생리대에 대한 검사를 실시하는 것이 급선무다. 정확한 정보를 발표해 소비자들의 피해와 불안을 더는 것이 식약처가 마땅히 해야만 하는 우선순위이다.
물론 검사 자료 공개는 신중해야 한다. 파장이 크기 때문이다. 이미 식약처는 책임회피식 ‘엇박자’ 발표로 소비자들의 원성을 산 바 있다. 앞선 중간발표 때처럼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자료 공개는 소비자들의 혼란만 고조시킬 뿐이다. 이미 일각에서는 사태가 급하게 전개되며 조사가 부실하게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왔다. 식약처가 소비자들의 신뢰를 다시 찾고 불안감을 덜기 위해서는 깊은 조사를 통해 도출된 조사 결과를 신속히 발표 해야 한다.
식약처의 ‘늑장 대응’은 이미 국민에게 많은 실망감을 안겼다. 이번 ‘생리대 유해성’ 논란에도 식약처는 실험의 신뢰도 여부를 먼저 따지며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를 보였다. 식약처는 지금부터라도 빨리 유해 여부를 확인해 국민적 혼란에 종지부를 찍어 생리대 불안을 해소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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