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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블라인드 채용, 학벌사회 타파 가능할까?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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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08월25일 17시11분
  • 최종수정 2017년08월25일 17시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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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채용 의무화가 학벌주의를 타파할 수 있을까. 8월부터 모든 공공부문에 블라인드 채용 의무화가 실시됐다. 문재인 대통령 공약 이행의 일환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7월 ‘블라인드 채용 추진방안’을 통해 “출신학교나 외모에 대한 편견으로 재능 있는 사람이 탈락돼서는 안 된다”며 블라인드 채용의 의의를 밝혔다. 채용에서 평등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다. 입사지원서와 면접에서 출신지역, 가족관계, 신체적조건, 학력 등에 대한 요구를 원칙적으로 할 수 없도록 강제한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단연 ‘학력’이다. 각종 취업 커뮤니티에서는 “학벌이 낮은데, 괜찮을까요?”라는 고민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채용 과정에서 학벌이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이 한국사회에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2014년 취업포털 ‘사람인’의 전문대 이상 재학·졸업 구직자 546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출신 대학의 간판이 취업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283명(51.8%)이 ‘그렇다’고 답했다. 구직자 절반은 출신 대학이 취업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학벌에 따른 ‘채용에서의 차별’은 과도한 사교육과 입시경쟁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작년 한국의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총 18조 2천억 원으로 전년대비 2천억 원(1.3%)이 증가했다. 학령인구는 갈수록 줄어드는데, 사교육비는 증가하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이러다보니 블라인드 채용이 ‘학벌사회’를 타파하는 첫걸음이 될 거라 기대하기도 한다. 단순히 ‘학벌’만으로는 원하는 회사에 취직할 수 없다는 분위기를 형성하겠다는 취지는 다수의 공감을 받고 있다.

 

대학을 선택하는 입시과정에서 학생들은 ‘대학 간판이냐, 적성에 맞는 전공이냐’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블라인드 채용의 영향으로 후자를 선택하는 중고등학생들이 많아질 때 ‘학벌사회 타파’의 기능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명문대에 진학하기 위한 과도한 사교육은 단지 ‘채용에서의 차별’ 때문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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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등급의 절반 이상이 명문대

 

교육부에서 2015년 실시한 ‘대학구조개혁 평가’에 따르면 일반대는 20%가 D이하의 등급을 받았지만, 전문대는 35%를 기록했다. 평가는 교육여건, 학사관리, 학생지원, 교육성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 특히 A등급 명단 중 절반은 서울 주요대학이다. 거점국립대인 전남대, 전북대, 충북대까지 합하면 소위 명문대로 지칭되는 대학이 A등급의 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우수 집단에서 함께 공부하는 효과를 기대하기도 한다. 인천지역의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김 모(19·인천 계양구)군은 “명문대에 진학한 학생들은 아무래도 다른 대학의 학생들과는 뭔가 다를 것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대에 온 친구들이니까 내가 배울 점도 많을 것이고, (본인도 명문대에 가게 된다면) 서로 공감하는 지점도 많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 상위권 대학에 재학 중인 김 모(24·서울 서대문구)씨는 “학교를 다니며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우수한 친구들과 함께 공부를 했다는 점”이라며 “과거와 달리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어졌지만, 10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걸 20까지 하는 친구들을 보며 자극 받는다”고 말했다. 이어 “긍정적인 자극이 나를 더 노력하게 만들었고, 능력치를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며 주변인에게 상위권 대학진학을 추천할 것이라고 밝혔다.   

 

◇ “사내에서 명문대 출신끼리 도움 주고받아”

 

명문대 출신이 사회에서 공고하게 형성하고 있는 ‘사회적 네트워크’ 역시 학벌주의를 뒷받침하는 요소다. 각 기업의 임원과 사회지도자 집단을 구성하는 대다수는 명문대 출신이다. 삼성전자가 제출한 ‘17년도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소위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대학 출신이 전체 상근 임원 1047명 중 21%를 차지하고 있다. 2015년에는 sky, 카이스트, 성균관대, 한양대 등 6개 학교 출신이 전체 임원의 40%를 차지했으며, 작년 역시 명문대에서 두 자리 수 이상의 임원을 배출했다. 

 

기업 임원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명문대 출신은 학연으로 관계망을 형성한다. 같은 대학 출신끼리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일종의 카르텔을 형성한다. 국내 7대 기업에서 4년째 근무 중인 강 모(29·서울 동작구)씨는 “사내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출신 대학”이라며 “같은 명문대 출신들끼리 배타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다. 물론 이는 인사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 한다”고 밝혔다.

 

취업에 유용한 정보의 접근성 측면에서도 명문대 학생들이 가지는 이점이 존재한다. 대학서열이 높을수록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등 청년층이 선망하는 일자리에 취업하는 비율이 높다. 2013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표한 ‘대졸자의 선망 직장 취업스펙과 정책과제’보고서에 따르면 상위 5개 대학의 취업희망자 1만1504명 중 4918명(42.7%)가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등에 취업했다. 지방대학의 경우 구직자 중 ‘선망 직장’에 취업한 학생은 17%(3만4256명)에 불과했다. 선망 직장에 취업한 명문대 출신자들은 취업과정에서 축적한 정보를 선후배, 동기끼리 공유한다. 학교 내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서 취업 정보를 나누기도 한다. 실제로 각 학교 커뮤니티의 취업 게시판에는 “xx회사 최종합격 후기”, “자소서 팁 공유합니다.” 같은 글이 올라온다. 

 

◇ ‘대학 수준=개인 수준’이라는 생각

 

명문대 출신에 대한 사회적 호의는 암묵적으로 존재한다. 대학 수준이 그 학교에 다니는 개인의 수준을 보여준다는 인식 때문이다. 강남 세종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이모(19·서울 강남구)군은 “소개팅, 혹은 결혼할 때 (명문대 출신이라면) 상대 쪽의 평가나 시선이 좋을 것이다. 부모님 말씀을 들어보면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명문대를 가는 게 좋다고 한다. 때문에 명문대 진학에 대한 욕구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타인에게 (좋게) 비춰지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유명한 명문대에 진학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실제로 인터넷 커뮤니티, SNS에는 명문대가 아닌 대학을 ‘지잡대(지방 잡다한 대학)’라고 표현하는 게시물도 심심찮게 올라온다. 학교 수준을 비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삶을 평가하는 것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방대에 재학 중인 김 모(24·충북 청주)씨는 “명문대 진학-사회적 성공’의 메커니즘이 블라인드 채용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된다고 해도, 대학을 통해 개인의 삶을 평가하는 사회적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

 

가장 근본적 원인은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다. 학벌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국가는 여러 정책을 시행해왔다. 교육당국은 ‘능력중심사회를 구현하는 교육’을 목표로 다양한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산학협력 활성화, 고교 단계 산학일체형도제학교, 유니테크,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자유학기제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다. 2015년 한국교육개발원이 우리나라 성인(만 19세 이상 75세 이하)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육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6.8%가 우리나라의 학벌주의는 큰 변화 없이 유지되거나(57.8%) 지금보다 심화될 것(28.8%)라고 답했다. 이러한 답변 비율은 2011년 조사 때부터 비슷하다. 

 

정권이 바뀌면 정책도 함께 바뀌는 경향은 불신에 큰 몫을 한다. 성과연봉제가 대표적 예다. 성과연봉제는 공공부문의 효율성을 위해 박근혜 정부에서 도입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며 확 틀어질 조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성과연봉제를 원점에서 검토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정책 방향이 완전히 바뀌자 혼란스러운 건 공공기관이다. 한국전력공사는 작년 말 성과연봉제 우수기관으로 지정돼 전 직원이 월봉의 최대 20%까지 인센티브를 받았다. 이 기세를 몰아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성과연봉제를 실시할 예정이었지만 주춤했다. 겨우 설득해 노조의 성과연봉제 합의를 이끌었지만, 합의한 노조도 성과연봉제 무력화 움직임을 보이며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일관적이지 않은 교육정책은 정책에 대한 학생들의 불신을 더욱 키운다. 이명박 정부 때는 특목고·자사고로 대표되는 고교다양화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지난 7월 국정기획위원회에서 발표한 100대 과제 안에 ‘외고·국제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이 포함되며 정책이 완전히 뒤집혔다. 또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엔 거의 매년 교육과정이 개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7년, 2009년, 2015년에 총론 개정이 있었다. 2011년 교과 교육과정, 2012년과 2013년 총론 부분 개정까지 고려하면 지나치게 개정이 잦다. 

 

2015년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8%가 교육과정 수시 개정은 혼란 문제가 크므로 개선해야 한다고 답했다. 대다수의 국민이 불안정한 교육정책의 개선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다. 인천교육포럼 부회장을 맡고 있는 최형목 명현초등학교 교장은 “정권 교체시기에만 이루어지는 말뿐인 교육 개혁은 ‘수박 겉핥기’식일 뿐, 근본적 개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 서열화를 개선하려면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 국가 정책과 학교 현장에서의 분위기 변화가 함께 병행돼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었다”며 일관성 없이 바뀌는 교육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 사회분위기를 반전시킬 것이란 기대

 

한편 블라인드 채용이 대학간판을 우선하는 사회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시작점이 될 것이란 기대도 있다. 중고등학생들은 당장 취업을 앞둔 취업준비생이 아닌 만큼, 블라인드채용 정책으로 인한 변화를 직접적으로 느낄 순 없다. 또한 학벌사회의 원인은 ‘학벌을 중시하는 채용’에만 있지 않다. 그러나 블라인드 채용이 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변화시킨다면, 중고등학생들의 대학진학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경북 의성고등학교 김기문 교장은 “기존에 중요시했던 학벌과 같은 가치보다 그 사람이 어떤 실력을 가졌는지가 더 중요해진다면, 실체 없는 타이틀에 매달리기보다 실질적인 능력을 키우는데 집중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 진학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블라인드 채용에 따른 사회적 분위기 반전을 기대했다. 

 

블라인드 채용은 학벌주의 타파의 만능열쇠가 아니다. 여러 정책이 보완, 병행돼야 한다. 정부는 학벌주의의 원인을 다각적으로 살펴보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정책을 생각해야 한다. 인천 명현초등학교 최형목 교장은 “명문대 진학이 앞으로의 인생을 결정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바뀌기 위해선 실제 교육이 진행되는 학교에서부터 개선이 시작돼야 한다”며 “교원행정업무 축소, 입시제도 개편, 자유학기제 등의 정책이 유기적으로 이뤄져 학교에서 개혁을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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