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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청년전세임대주택 당첨자 중 28%만 입주…
현실적 여건을 고려한 제도 개선 시급
“운 좋게 집을 구해서 모든 서류를 제출하고 권리분석 결과만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집주인이 단순 변심으로 다른 사람과 계약을 해버린 거예요. 이런 사실조차 부동산은 일주일 뒤에 알려주셨어요. 부동산에 왜 미리 알려주지 않았냐고 따지지도 못하고, 다른 전셋집 있으면 연락 달라고 사정사정하며 전화를 끊었네요. 당장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나와야하는데, 낙동강 오리알이 된 기분이에요.”
올해 2월, 가정 형편이 좋지 못한 A씨(홍익대, 24)는 LH청년전세임대주택에 당첨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에서 전세금 8000만원을 지원해주면, 매달 50만원에 달하는 월세 부담을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쁨도 잠시, A씨는 LH에 당첨되기보다 주택을 물색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현실에 좌절했다. “부동산에서 없는 형편에 뭐 그렇게 (조건을) 많이 따지냐는 면박을 받기도 했죠. 허름한 집을 땡 처리하려는 목적으로 계약을 재촉하기도 했어요.” 2번의 계약 파기에, 부동산 중개업자의 박대도 여러 번. A씨는 LH 혜택을 포기할까 했지만, 대학가 인근의 높은 월세를 생각하면서 또 다시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다.
‘하늘의 방 따기’
LH 청년전세임대주택은 입주대상자로 선정된 청년이 거주할 주택을 물색하면 LH가 주택소유자와 전세계약을 체결한 후 재임대하는 형태의 사업이다. 수도권 기준 8000만원 상당의 전세금 (5월부터 2인 1억 2천만 원, 3인 1억 5천 만 원으로 인상)을 지원해준다. 입주대상자는 LH에 매월 1~3%의 이자금을 내게 된다.
(자료 : 한국토지주택공사)
이 제도는 치솟는 월세에 시달리는 지방 출신 대학생들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당첨보다 어려운 집구하기 때문에 작년에는 계약한 사람이 당첨자의 28%밖에 되지 않는다. 은평구 ㅅ부동산 중개업자 김향숙 씨는 “청년전세임대제도가 개선되려면 LH, 청년, 부동산, 임대업자의 이해관계 4박자가 모두 맞아 떨어져야한다.”면서 “현실적으로 임대업자가 굳이 LH를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이 사업의 난관으로 꼽았다.
“LH라면 질색, 차라리 더 싼 값에 다른 학생 주고 말지”
공사에서 운영하는 사업인 만큼 매물에 대한 조건과 서류과정이 복잡하다. 입주대상자가 대학생인 만큼 대학가 주택에 대한 수요가 많지만 대학가의 주택은 대부분 ‘근린생활시설’로 분류돼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한 집주인의 부채비율과 주택에 불법 설치물이 있을 경우도 지원이 제한된다. 부동산 중개업자 김 씨는 “집주인은 본인의 자산을 정부에 공개하는 것 자체를 꺼릴 뿐만 아니라, 훗날 세금 측면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LH 입주를 기피한다.”고 밝혔다. 마포구의 한 임대업자는 “(LH로) 한 번 계약해봤는데 이제는 두 번 다시 안 해. 처리해야할 서류가 평소의 3배나 되고 어찌나 번거롭던지, 괜히 사서 고생했다”며 “차라리 보증금을 낮춰서라도 일반 계약을 하지.”라며 계약과정의 복잡함에 대해 불평했다.
청년의 간절함을 이용하는 부동산의 횡포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입주대상자인 학생들은 어디에서나 ‘을’이다. 부동산에서도 복잡한 LH 매물을 알아보기를 꺼린다. 권리분석에서 LH가 요구하는 조건이 맞지 않아 계약이 쉽게 성사되지 않기 때문.
임의로 서울 내 10곳의 부동산에 “마포구의 LH 청년임대주택을 물색한다.”고 전화해보았더니, 6곳은 “LH 매물을 취급하지 않는다.”며 전화를 끊었다. 심지어 “현실적으로 포기하시는 것이 빨라요. 많은 당첨자들을 봤는데, 거의 다 못 구하더라고요.”라며 LH를 알아보는 것을 시간 낭비라고 표현한 업체도 있었다. 3곳은 “매물이 생기면 연락드리겠습니다.”고 유보하였고, 한 업체만 시간을 들여 매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마포구에 1인 청년임대주택을 구할 때 가정했을 때 연락한 부동산 중개소,
이 중 단 1곳만 시간을 들여 매물 정보를 제공했다.
운 좋게 입주해도 눈칫밥 신세
힘든 난관을 다 겪고 운이 좋게 입주에 성공해도 여전히 청년들은 ‘을’의 지위이다. 집주인이 계약 전에는 수리를 약속했다가 입주 후에는 모르는 척 하는 경우도 많다. LH로 계약을 체결해주었다는 집주인의 ‘선심’은 갑을관계를 공고히 한다.
LH청년전세임대주택 카페에 게시된 글에 의하면, 서울대 입구 주변에 집을 구한 C군은 10년이 넘은 집에 입주하게 되었다. 화장실 수도와 환풍기를 수리해주겠다는 집주인 말을 믿고 계약을 체결했다. 입주 후 계약된 내용을 요구하였으나 “공짜로 살면서 말이 많다고, 왜 새집처럼 살려하냐”는 등의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사례가 게시판에 다수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청년들을 보호할 수 있는 조치는 없다. 유일하게 청년들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카드는 ‘수리쿠폰’이다. LH에서 도배·장판을 수리할 때 일정 금액 지원해주는 제도이다. 실제로 ‘수리쿠폰’은 집주인과의 협상에서 요긴하게 쓰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평생 한 번 지원으로 제한되어있어서 주택에 대한 계획이 불분명한 청년이 그 카드를 쓰기란 쉽지 않은 것이 현실. ‘수리쿠폰’ 이외의 인센티브가 절실하다.
LH도 모르는 LH,
아쉬운 사람끼리 뭉칠 수밖에
“상담원마다 알려주는 정보가 달라요.” “문의하려고 제가 전화했다가 오히려 상담원에게 한참 설명했네요.”라며 LH 센터의 직원 교육수준을 높여달라는 요구도 나오고 있다.
전문용어가 난무한 LH공사 공지만으로는 계약과 관련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 이 사업이 처음으로 시행된 2012년에는 정보 공유를 위해 자발적으로 커뮤니티가 생기기도 했다. 현재는 4천 명의 회원을 보유한 카페로 성장하여 부동산 업체와 청년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청년끼리 집구하는 요령을 공유하기도 한다.
제도 개선을 위한 서명운동 및 언론사에 보도 요청을 진행하였으며, 5년이 지난 지금 제도 개선에도 반영될 정도로 제도와 현실의 괴리를 좁히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착한부동산’알리기 캠페인을 통해서 입주대상자를 돕는 중개업자를 소개하는 공간을 마련하여 보다 편리하게 매물을 찾아다니는 것이 가능해졌다. 카페 매니저 서세광 씨는 “공사 관계자가 아닌 민간인이지만 카페를 중간에 이어받게 되었다.”며 “부동산과 회원의 권익 사이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는 것이 까페의 목적이자 과제”라고 밝혔다.
LH에서 제공하는 정보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기 때문에 생겨난 커뮤니티, 그
탄생 배경이 다소 아쉽다. 하지만 청년들의 목소리가 합쳐져서 LH 공사에 전달되고, 부동산 중개업자와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대화의 장이 마련됨으로써 제도의 미흡한 점이 보완되고 있다. 집이 아쉬운 청년들, 그들이 목소리가 모여서 집단지성을 발휘하자 아쉬움이 점점 해소되고 있다.
(LH 청년전세임대주택 온라인 커뮤니티)
희망의 빛줄기, LH공사도 노력 중
다행인 것은 LH공사에서 현실 부분 반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6월 11일, 서울지역본부 전세임대1부 부장은 ㄱ부동산에서 부동산 중개업자와 30분간 개선 방안에 대해 논의를 진행했다.
ㄱ부동산 대표 이승남 씨에 따르면, 현실적으로 LH가 수용할 수 있는 방향과 계약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 청년들에게 어떤 혜택을 주어야 할지를 주로 논의했다고 한다. 특히 입주대상자 사이에서 가장 불만이 많았던 이주재계약 과정을 보다 편리하게 바꿀 것을 약속했다고 한다. LH공사로 이주재계약 신청서를 접수하느라 처리 과정이 늦어진 점을 개선, 7월부터는 법무사를 직접 보내서 신속한 권리분석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한다고 약속했다.
올해 들어 당첨자들에게 기쁜 소식도 두 가지나 있었다. 먼저 거주자 수와 관계없이 호당 8천만 원 수준이던 전세임대 지원 한도를, 수도권의 경우 거주자 수에 따라 최대 1억 5천만 원까지 인상한 것이다. 지역별로 전세금이 2~3배 차이나는 점과 현실적인 집 평수를 고려한 것은 큰 변화이다. 아직 계약을 성사하지 못했던 학생들에게도 소급 적용되었으니 파격적인 혜택이다. 당첨자에게는 개별적으로 연락이 되었으나 대부분의 부동산은 이 정보를 알지 못해 매물 시장이 단기간에 확대가 되지 못한 점이 다소 아쉽다.
다음 희소식은 전세임대뱅크(BANK)제 도입이다. 이전에는 청년 혼자 모든 정보를 알아봐야 했다면, LH가 적극적으로 정보를 알려주게 되었다. 계약이 만료될 예정인 LH공공주택을 사전에 확인, 아직 전세계약을 체결하지 못한 청년에게 1:1 안내를 제공한다. 이 제도를 통해서 청년과 주택의 매칭이 보다 잘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따뜻한 보금자리로 나아가려면.
LH 청년전세임대주택 사업은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그럼에도 지방 출신의 저소득층 청년들에게 큰 버팀목이 되고 있다. 주택 복지에서 완전한 사업은 있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타협과 개선의 과정이다. LH가 더 많은 청년들에게 따뜻한 보금자리를 제공하려면 어떤 방안들이 있을까.
먼저 제대로 된 정보 제공이 필요하다. 신청기간도 2일밖에 되지 않는 이 사업에 대한 정보는 법률용어로 가득한 12페이지짜리 공고문이 전부다. 청년이 유일하게 가지는 협상카드 ‘수리쿠폰’에 대한 내용도 명시되어있지 않다. 계약 경험이 전무한 청년들은 결국 중개업자가 하는 말을 무조건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악덕 업체로부터 피해사례가 생기는 것이다. 명확한 정보 제공은 임대업자가 LH전세에 갖고 있는 부정적인 인식을 없앨 수 있다. 임대업자도 이 사업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고 일반계약을 더 선호하게 된다. 명확한 정보 제공과 알기 쉽게 홍보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더불어 상담직원 교육도 필요하다. 아무리 정보를 많이 제공하더라도 부동산 계약에는 수많은 케이스가 존재하기 마련, 정확한 상담을 위해 직원들에게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이는 LH 계약 파기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느린 행정 처리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인센티브 제공은 ‘대학생-LH-중개인-임대인’이라는 복잡한 관계를 원활하게 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LH 주거복지사업 좌담회에서 LH 인천지역본부 박수영 주임은 “전세임대는 공공복리 측면이 강한만큼 중개인 등에게 세금혜택 등 인센티브가 있으면 좋을 듯하다."고 말했다. 대학생이 장기적으로 본인의 권익을 지킬 수 있는 협상카드에 대한 논의도 더 필요해 보인다.
전세임대사업은 유동적인 부동산 시장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때문에 모두의 타협점을 찾는 대화의 장은 지속적으로 빈번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청년-임대업자-부동산-LH 공사’라는 사각관계를 한 자리에 모아 제도개선을 논의하는 간담회는 한 번도 없었다. LH 내부의 좌담회와 특정 간부들의 시찰이 전부였던 것이다. 명쾌한 해답이 나오지 않고 5년 동안 정체된 이유는 대화의 부족일지도 모른다. 제도 개선에 현실을 반영할 때 모두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희망이 희망고문이 될 때,
청년의 말뚝은 너무나도 위태롭다.
박완서 작가의 「엄마의 말뚝」에는 자녀를 신여성으로 키우기 위해 삯바느질 해가며 상경한 어머니가 있다. “기어코 서울에 말뚝을 박았구나. 문밖이긴 하지만…” 어머니는 상경한 이후에도 ‘문밖’과는 다른 동경의 삶 즉, ‘문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늘 꿈꾼다.
기어코 수도권으로 유학 온 지방 출신 청년들에게 대학가 근처나 상태가 좋은 집을 구하기란 여전히 넘볼 수 없는 ‘문안’이다. ‘문밖’에서 휘청거리는 청년들에게 LH 청년전세임대주택은 분명히 큰 희망이다. 하지만 매번 당첨소식에 기뻐하다 곧 좌절하는 청년들에게 이 제도는 희망고문이 되고 있다. 이대로 머무르면 그들의 말뚝은 더 위태로워진다. LH 주택공사에서는 꾸준히 부동산 시장의 변화와 현실적인 한계를 살펴보고 제도에 반영해야한다. 언젠가 청년들의 말뚝이 견고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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