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출판, 문화계의 새로운 바람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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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불황, 사양산업. 출판계에는 항상 이런 부정적인 단어들이 딱지처럼 붙어 다닌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문화, 예술, 지식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가 존재하는 한 출판 산업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남아있는 산업이기도 하다. 그런 미미한 확신을 기반으로 불황에 두려워하지 않고 책과 지식에 대한 열정과 애정으로 용감하게 출판계의 새 길을 개척해나가는 출판인들이 있다. 1인 출판사를 차리고 책을 출판하는 출판인들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1인 출판사는 말 그대로 책 제작과 편집, 출판, 유통을 한 사람이 맡는 출판사를 말한다. 본래 출판사 중 1인 출판사의 비율은 높았으나 최근 몇 년간 1인 출판사의 숫자가 늘어나며 출판계에 변화로 주목받고 있다. 이들이 주목받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바로 1인 출판사의 소신출판이 출판시장의 트렌드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1인 출판사는 개인의 취향과 철학이 반영된 책을 출판할 수 있다. 대형 출판사가 비즈니스적으로 흥행 여부를 따져서 만들 책을 정하는 것과는 다르다.
시장논리에 연연하지 않으니 오히려 더 좋은 책만을 위해 집중할 수 있는 구조이다. 출판업에 대한 낮은 기대감이 오히려 다양한 실험을 가능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작아진 산업규모에 적응하는 방식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만 오히려 그 방식이 질적으로 더 훌륭한 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1인 출판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정말로 작가가 원하는 책, 혹은 출판사가 원하는 책을 만들다 보니 이전에는 없던 새롭고 정성들인 좋은 퀄리티의 책이 출판된다. 그리고 이런 새로움이 독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꼭 1인 출판사가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출판을 원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큰돈을 벌기 위해 출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식과 글을 나누기 위해 책을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 이에 발맞춰 지난 5월 2일 카카오는 자사의 콘텐츠 퍼블리싱 서비스인 브런치를 통해 주문형 출판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주문형 출판 서비스는 독자의 주문을 받은 후 책을 제작하기 때문에 1권만 주문을 해도 출판이 가능하다. 때문에 기존의 출판계에서 작가와 출판사가 맺는 복잡한 계약관계는 간소화 하고 자신의 콘텐츠를 출판하고자 하는 창작자는 얼마든지 부담 없이 책을 만들 수가 있다.
1인 출판사에서는 출판물의 깊이를 더하고, 인터넷 콘텐츠 퍼블리싱 서비스는 출판 진입 장벽을 낮춰 출판물의 양을 늘리고 있다. 다시 말하면 공급의 양과 질의 변화가 일어나고 그에 따라 시장의 전체 파이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특수한 계층만이 소비한다고 여겨졌던 출판계가 고립되지 않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소규모 출판에는 자본이 없는 대신 사람이 있다. 일본의 1인 출판사 나쓰하샤의 창업자 시마다 준이치로는 “시대는 변했지만,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 …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거나 판매 방식이 아무리 변해도 바뀌지 않는 점은 모든 일이 사람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사람이 없는데 매력적인 곳은 없다.”고 말한다. 사람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가장 알기 어려운 것도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의 진심과 열정이 만드는 책에 독자들이 반응하는 것이 아닐까.
현재 각종 온·오프라인 서점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린 『언어의 온도』와 『자존감 수업』은 1인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으로 이와 같은 변화의 긍정적인 지표로 분석되고 있다. 두 책은 모두 출간된 지 7~8개월이 지난 후에야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두 책은 별다른 마케팅 없이 SNS를 기반으로 입소문이 번지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또한 두 저자는 기존 출판 시장에서는 알려지지 않았었지만 인터넷에서는 이미 글을 잘 쓰기로 유명한 작가들이었다. 1인출판, 소규모출판이 최근 몇 년간 힘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인터넷과 SNS의 역할이 컸다. 블로그 같은 온라인 플랫폼의 대중화된 지 벌써 10년이 훌쩍 지났다. 온라인 퍼블리싱도 출판의 기능을 하지만 상품 가치를 얻기 위해서는 종이 책으로 인쇄되는 것이 여전히 주효하다. 한편 취향의 다양화와 동네 서점의 부흥 역시 1인 출판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문학계에 있어서 1인 출판은 신춘문예, 등단 시스템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장르 문학을 출판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되어왔다. 데뷔한지 6년만에 문학상을 6개나 수상한 소설가 장강명은 1인 출판사를 통해서 sf소설을 출간해왔다. 기존의 문단 시스템과 새로운 출판 시스템의 공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2000년 후반 무렵 1세대 독립서점들이 생겨났다. 독립서점은 책 판매와 더불어 인문예술에 관련된 강의, 행사를 진행하며 동네의 인문, 예술의 구심점으로서 자리잡아가고 있다. 경험과 판로가 부족한 1인 출판인에게도 독립서점은 직거래로 자신의 책을 판매할 수 있는 통로가 되고 있다. 대형 출판사와 대형 서점을 통해서만 책을 만들고 판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더 다양한 소규모 출판물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게다가 90년대 이후 일본에서 수입된 ‘동인문화’는 암암리에 사비 출판, 판매를 해왔고 이를 배경으로 성장한 사람들에게 소규모 출판은 먼 얘기가 아니다. 그곳에서도 충분히 재미있고 가치 있는 책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현재 도서시장의 주소비층인 20,30대가 된 것이다. 이처럼 소규모이지만 새로운 시스템이 생겨나고 있는 것을 최근 문화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고급 취향에 대한 욕구가 늘어날수록 출판물은 다양해 질 것이고, 소비층의 전반적인 안목이 올라가면 더 높은 수준의 콘텐츠를 바라게 될 것이다.
결국 콘텐츠 개발과 인문학과 예술에 대한 교육이 중요해진다. 문화계 전반에 선순환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저 희망사항이자 가장 긍정적인 미래에 대한 대책 없는 바람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출판계에서 불황이나 갖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좋은 책을 만들려고 하는 끈질김이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꿈틀거리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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