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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풍요 속 빈곤
현재 80년대 말부터 90년대에 출생한 20대는 ‘가짜 풍요’ 속에서 세대적 정체성을 형성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대부분의 20대에게 절대적 빈곤은 아주 먼 개념이다. 근대화, 한강의 기적은 이미 이전 시대에 완료되었고, 20대를 둘러싼 물질적 환경은 20세기와 단절된 21세기만의 시간과 공간이 되었다. 21세기의 사회인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개성을 찾고, 원하는 활동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의 바탕에는 자본주의 체제 국가가 완성한 중산층, 정규직, 정년퇴직, 각종 사회 보험과 의료체계, 대중적인 대학 교육과 같은 것들이 갖춰진 물질적 풍요의 세상이 있었다.
이런 풍토에서 성장한 20대에게는 새롭고 재미있는 것을 소비하는 것이 당연한 삶의 방식이다. 그런데 가장 최근 거리를 채워가는 유행 중 하나는 인형 뽑기 가게이다. 무인으로 운영되고, 이전의 가게의 간판과 인테리어를 교체 하지 않은 채 기계만 세워놓은 가게들이 수두룩하다. 단돈 몇 천원으로 얻을 수 있는 뽑기의 짜릿함에 소비자들은 반응하지만 그 짧은 쾌락은 이제 과연 몇 달을 지속될 수 있을까. 벌집 아이스크림 가게의 노란색 간판이 남아있는 인형 뽑기 가게의 새하얀 형광등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것의 조악함, 무신경함, 허름함 때문에 그것이 마치 커다란 구멍처럼 느껴진다. ‘2010년대에 남은 소비문화의 유산은 무엇인가?’를 물었을 때 ‘빠르게 바뀌는 유행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유행이 교체될 때마다 생기는 빈 구멍들이 점점 늘어가는 추세는 이 상황 자체를 긍정할 수 없게 한다. 실질적으로 현재 20대의 삶은 빈곤해져가고 있다. 그러나 물질로 완성된 사회에서 태어난 20대는 생산되는 것들의 물리적인 총량에 속아 스스로의 빈곤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청년세대의 경제적 빈곤은 비단 한국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의 현대 국가들은 기본적으로 “자본 축적을 통한 생산성 증대와 이를 통한 임금 상승 및 경제성장, 인구의 지속적 관리를 재생산 혹은 증가”를 토대로 하고 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뉴노멀”이라는 용어가 통용되고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저성장, 저소득, 저소비와 같은 현상이 ‘기본’ 혹은 ‘당연한’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전 세계의 베이비부머 세대는 이 시대의 분수령이다. 베이비부머들이 경제 호황 시기를 이끌고 누렸다면 그 이후의 세대는 더 이상 가져갈 것이 없다. 사회의 자본이 고갈되고 있는 것이다. 베이비부머들이 만들어낸 성공을 쫓기에는 20대들에게 닥친 상황은 지나치게 가혹하다. 대기업들의 하청 구조와 고용 불안정, 비정규직의 증가로 인해 양질의 일자리는 구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진다. 악조건의 노동 환경에서는 지금 당장 먹고 살기도 빠듯해지는 것이다.
20대는 YOLO(You Only Live Once)현상과 같은 소비행태를 통해서 지금 당장의 작은 사치, 인형뽑기, 맛집인증과 같은 것들로만 행복을 충족시킬 수 있다. 시간과 돈이 드는 정신적인 가치들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삶의 진짜 풍요를 잃어 가게 만든다. 이처럼 자본주의는 20대에게 가짜 풍요에 만족하라는 회유를 하며 저품질의 만족만을 생산한다. 그리고 동시에 20대가 나약하고, 포기할 줄밖에 모른다며 더 노력해서 기업의 마음에 드는 인간형이 되라고 질타한다. 현대 사회의 번영을 이끌어온 자본주의는 어느새 20대를 억압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다. 20대는 결혼 후 내 집 마련, 평생직장과 정년퇴직과 같은 베이비부머들이 이룬 것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아파트 가격은 폭등하였고 양육비용을 온전히 벌 수 있을 만한 안정적인 직장도 부족하다.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본 경제 활동 단위였던 중산층 가족모델을 거부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20대는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저항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본주의의 한계에 다다른 세상에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까. 자본의 반대말이 공산주의가 되는 시대는 이미 저물었고, 자본주의 이후를 대응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준비하는 자세를 갖춰야 할 때이다. 20대들의 노동형태는 분명 가까운 미래에 급변할 것이다. 코앞으로 다가온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일자리의 자동화로 많은 직장은 사라질 것이다. 비정규직의 증가는 프리랜서 고용형태가 주가 되는 노동시장을 만들 것이다. 기존의 노동 구조에서 행복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분명 “자본이나 생산도구를 독점하는 기업이나 조직에 몸담지 않고도 스스로의 능력을 발휘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모델”일 것이다.
그런 바람들은 스타트업, 크라우드 펀딩 같은 새로운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 1인분의 생계를 유지하는 노동자들은 공동주택을 통한 새로운 가족 형태를 시도하고 있다. 이처럼 직장은 파편화 되고 줄어든 소득에 대비하면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은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더 이상 20대에게 부의 창출, 지속적인 경제 성장, 인구 재생산과 생산성 증대가 보장하는 미래는 없다. 줄어든 사회 자본에 맞게 스스로의 규모를 줄이는 방식들이 도입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20대의 반자본주의적 태도, 즉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태도는 일종의 미래를 향한 투쟁이다.
미래를 위해서 청년 세대는 어쩔 수 없이 구조를 부수고 파편화 시키며 전반적인 규모를 줄여가야 하지만 이는 현재 자본주의의 신화에 기대어 성장해왔고 여전히 그것을 믿고 있는 기성세대의 공격에 맞부딪히게 된다. 국가가 나서서 스몰웨딩을 장려하는 공익광고를 만들어 결혼을 하라고 하고, 저출생 대책에서는 고학력 여성의 눈을 낮춰 혼인율을 높이자는 백색 음모를 꾸민다. 기업들의 광고에서는 가난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꿋꿋이 살아가는 20대의 모습을 미화한다. 이것들은 결국 20대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20대의 투쟁 그리고 페미니즘
20대의 투쟁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그 투쟁의 증거이자 최전선은 페미니즘일 것이다. 자본주의의 수혜를 받지 못하는 20대들의 경제 상황은 최근 두드러지는 사회 현상으로서의 페미니즘 기저에 존재하는 중요한 키워드이다. 가장 먼저 희생을 강요받는 것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이다. 여태껏 그래 왔듯이 노동력 생산에 임하여 달라는 주문은 여성에게만 쏟아지고 여성들이 가장 먼저 이에 반대하고 싸울 수밖에 없는 흐름이 만들어진다. 결국 자본주의 체제에서 부합하는 중산층 모델의 수혜를 받는 자들과, 더 이상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될 수 없음을 직간접적으로 실감한 이들의 저항이 맞부딪히는 과정에서 페미니즘이라는 현상이 돌출된다.
페미니즘의 1차적인 목표는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는 것”이다. 페미니스트는 여성들의 가사노동으로 만들어지는 가부장적인 가족 구조에 반대한다. 그리고 그것은 중산층 가족모델의 붕괴를 현실화 한다. 내 집을 마련하고 육아를 실행할 돈이 없는데 그것을 위해 착취당하며 고통 받느니 개인의 행복을 지키겠다는 20대의 저항은 정부의 황당한 저출생 정책에 ‘비혼, 비출산’을 외치는 젊은 여성들에게서 적극적으로 발산되고 있다.
새로운 경제 주체들이 어느 때보다도 더 큰 규모로 자본에서 소외되고, 우리는 막연히 그것을 경제 불황이라고만 인식한다. 20대가 대두시킨 수저계급론은 더 이상 20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경제 계급을 바꿀 수 없음을, 20대에게 있어 자본은 단지 윗세대에게서 물려받아 지속되는 것일 뿐임을 자조한다. 이들의 절망을 직시하는 감각은 한국 사회를 객관화하고 문제를 지적하는 데에 탁월하다.
이들은 단지 절망에만 멈추지 않고 분명히 여러 가지 형태로 맞서고 있다. 20대가 저항하는 이데올로기는 20세기의 공산주의/자본주의의 대립과 같은 이념 싸움이 아니다. 개인의 행복과 개성을 지키기 위한 각각 개인의 싸움인 것이다. 현재의 젊은 세대는 필연적으로 다가올 4차 산업혁명에 의한 경제 변화의 기반이자 주역이다. 이들이 무엇을 대비하고 만들어내는지는 미래와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우리는 산발적으로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젊은 세대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그것에 대응하는 방향을 계속해서 점검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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