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노년의 길을 실버 타운에서 걸으며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4년06월07일 19시03분
  • 최종수정 2024년06월12일 10시25분

작성자

  • 김광두
  • 국가미래연구원 원장, GFIN 이사장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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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햇살 아래

젊은 날의 추억이 서린 노을 진 언덕에 앉아 인생의 길을 돌아보니 무지개처럼 다양한 색으로 물들어 있구나.

어린 시절의 꿈과 열정, 청춘의 용기와 도전, 성숙의 열매와 지혜의 씨앗 모두가 내 안에 있어 노년은 삶의 한 과정이며 새로운 시작의 문이야.

이제는 삶의 여유를 즐기며 마음의 평화를 찾아 떠나리라.

인생의 여정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모험의 시작이야.

노년의 햇살 아래 나는 행복하게 걸어가리라.

                                         - 세이스강  (한국의 시인)

 

이 시인의 마음이 내게 와닿는다.

나는 76세가 되는 해, 거울 앞에 서서 나를 보며 이 시인의 감성과 비슷한 생각에 젖었다.

나의 노년을 어떻게 살다 저세상으로 떠날까?

 

나의 내면에서 “자유로운 일상”이 떠올랐다.

음식 준비, 청소, 세탁 등, 사람의 생활에 필수요소지만 이런 일을 할 시간에 내가 더 좋아하지만 못해본 경험들을 하고 싶었다.

가방 하나 들고 언제든 가고 싶은 곳에 다녀와도 되는 생활을 하고 싶었다. 단순한 자유로운 삶에 필요 없는 물리적 도구들의 유혹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거울에 비친 나의 얼굴은 나에게 “너 늙었다. 네 몸은 성하니?”하고 물었다. “그래, 내 육신을 구성하고 지탱하는 인체 조직들도 이제 지쳐있겠지. 애들을 다독여 가며 함께 가야지.” 건강 관리에 더 유념해야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제 남아있는 시간을 건강하고 자유롭고 단순하게 살기 위해서 나는 어떤 변화를 모색해야 할까?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주거 환경이었다. 보다 더 자유로운 일상과 건강 관리에 도움이 되는 주거 시설은 없을까? 식사, 청소, 세탁이 나의 시간을 앗아가지 않고 체력 단련에 도움이 되는 환경을 갖춘 주거 시설은 없을까? 문을 열고 나가서 가고 싶은 곳에 머물다가 아무 때나 돌아와도 일상적 일로 신경 쓸 일 없는 공간이 없을까?

 

한 선배 교수와 이런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자기도 비슷한 문제를 고민하다가 하나의 선택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실버 타운을 제시했다. 그 주거 시설이 삶의 자유로움과 건강관리에 적합하다는 주장을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했다. 나는 그런 주거 개념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는 그와 함께 여러 현장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생활하는 분들과 대화도 나누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이 주거 형태가 내가 추구하는 노년의 삶에 상당히 적합하다고.

 

현장을 방문하기 전 우리는 실버타운별 특성을 고려하여 방문지를 골랐다. 빌딩 숲에 있는 도심형, 전원의 아름다움과 함께하는 지방에 위치한 전원형, 서울 근교에 있는 중간형.

 

나는 전원생활을 좋아한다. 그런데 막상 가서 보니 서울에서 너무 먼 거리에 있었다. 나의 사회적 관계를 거의 다 내려놓아야 가능한 물리적 거리였다. 사회적 관계를 줄여가야겠지만 다 내려놓을 순 없지 않을까?

 

 빌딩 숲에 있는 한 빌딩 속에 있는 주거 시설은 여러 가지 편리하고 신축이라 내부 디자인과 설비가 깔끔했다. 나와 함께 방문한 선배는 이런 종류의 실버타운을 선택했다. 그러나 나는 도심이라는 환경이 싫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것이 모두 회색 빌딩이고 나가면 사람과 차들로 붐비는 거리를 통과해야 했다.

 

나의 선택은 전원 분위기와 도심 접근이 쉬운 중간형이었다. 서울과의 거리가 좀 있었으나 셔틀 버스와 지하철로 40~50분 정도에 연결되는 교통환경이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입주 절차를 밟으려 하니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2년 정도는 대기하셔야 합니다.”

아니 이럴 수가!

“왜요?”

“현재 만실인데 누군가 집을 비워야 들어오실 수 있죠”

 

이런 주거 형태를 좋아하는 노년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담당자는 요즈음은 입주를 희망하는 60대가 늘고 있다고 했다.

 

나는 기다리다가 내 차례가 와서 이 실버 타운에 입주했다. 내 판단이 옳았을까? 새로운 형태의 거처(居處)에 대한 불안감으로 그동안 살던 집은 비어 놓았다. 나의 새 둥지가 마음에 안들면 다시 돌아가려고….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현재를 소중히 여기고

미래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

                           <김남조, 늙는다는 것> 중에서

 

이런 마음으로 시작한 실버 타운 생활이 이제 8개월 되었다.

그동안 비어 놓은 내 집을 이제는  팔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나의 시간을 보다 여유롭게 해주고 나의 건강 관리에 도움을 준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다.

비어있는 내 집의 공간을 아직 채우고 있는 젊은 시절에 필요했던 여러 물리적 도구들과도 이제 이별할 때가 되었다.

 

이곳이 특히 나에게 좋은 것은 젊은이들( 유치원 아이들 포함)과 어울릴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는 점과 산책과 휴식에 좋은 드넓은 정원(26,000여 평)이 조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실버 타운 내에 있는 유치원의 아이들, 그리고 주거동과 가까이 별도로 건립된 체육 문화 의료용 시설에서 (3,800평 규모)에서 운동과 문화 예술을 함께 즐기는 지역 주민들은 노년의 나에게 활력을 준다. 각종 수목이 어울려 하늘을 가리고 있는 산책로와 그 옆에 넓게 조성된 꽃밭과 잔디 광장은 걷기의 즐거움을 준다. 느티나무 거목(巨木) 아래 놓인 벤치에서의 휴식은 70여 년을 지탱해온 나의 노쇠한 영육(靈肉)의 생기(生氣) 회복에 도움을 준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길

누구나 가야하는 길이지만

노년에는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는 길

                           - <김광섭, 노년> 중에서

 

나는 아직 산티아고(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의 열정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누구나 가야 하는 길을 자유롭고 건강하게 걸어가려는 소망을 가지고 이곳을 찾아왔다.

 

우리 모두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고

떠나는 순간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 <정호승. 노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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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24년06월12일 10시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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