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브 미 초콜릿과 두유 노우 김치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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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주말에 인사동이나 명동을 거닐다 보면 한국인보다 외국인의 수가 더 많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제 외국인은 외부인 혹은 이방인으로 여겨지기보다는 오히려 우리 삶에 침투해 들어오는 사람들로 느껴진다. JTBC의 <비정상회담>, tvN의 <서울메이트>, MBN의 <헬로우 방 있어요?> 등 외국인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도 많아졌다. 최근 외국인 관찰 예능 신드롬을 선두에서 이끄는 프로그램은 MBC every1의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이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한국에서 활동 중인 외국인 방송인이 자신의 친구를 한국에 초대해 함께 여행을 다니는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이다.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작했으나 좋은 반응을 얻어 정규 편성되었고, MBC every1 개국 이래 최고 시청률을 여러 번 경신 하고 있다. 현재 시즌 2까지 편성되어 방영 중이다. 주요 관전 포인트는 외국인에게 한국의 관광명소와 문화를 소개하고 그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내는 것이다. 한국인의 외국인에 대한 서사가 “기브 미 초콜릿”에서 “두유 노우 김치?”로 바뀐 셈이다.
유사한국인으로서의 외국인
그러나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 재현된 한국은 각색된 한국이며,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외국인들은 유사한국인으로서의 외국인에 가깝다. 관광지의 낙후된 시설이나, 외국인 관광객에게 아직 미흡한 교통 서비스의 단면은 카메라에 거의 담기지 않는다. 대신에 낭만적인 서울의 전경을 담은 영상들이 프레임을 가득 채운다. 외국인들은 한국 문화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그와 동시에 외국인들을 친절하고 호의적인 태도로 대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이 강조된다. 단순히 시스템과 문물의 차이일 수 있는 점들이 한국 문화의 우월성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외국에는 없는 한국의 자동문, 톨게이트 시스템, 휴게소의 다양한 음식을 보며 출연자들은 놀라워한다(시즌 1 독일 편). 길을 알려주는 한국인 할머니가 미국인과 달리 너무 친절하다며 칭찬하기도 한다(시즌 2 미국 편). 패널들도 이에 맞장구를 치며 외국인의 긍정적인 반응을 강화한다. 외국인 출연자가 “우리나라에는 이런 거 없어.”를 외치는 비중이 “한국에는 그런 게 없네?”라고 말하는 것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반면 외국인이 한국문화에 잘 수용되지 않는 모습을 보일 때는 민감해진다. 문화적 충격을 주되, 그 충격이 갈등으로 읽혀서도 안 된다. 새로운 한국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이 음식의 재료는 뭐야?”라고 묻는 출연자에게는 ‘초딩 입맛’이라는 자막이 달린다(시즌 1 독일 편).
시청자들의 반응도 편중되었다. 시즌 1 프랑스 편에서 외국인 출연자들은 한국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 빵으로 끼니를 때웠고, 한국에 조성된 프랑스 마을을 방문했다. 이에 대해 “왜 한국까지 와서 프랑스 것을 찾느냐.” 라는 식의 악성 댓글이 많이 달렸다. 몇몇 사람들은 해당 회에 출연한 프랑스 출신 방송 연예인 로빈 데이아나와 인스타그램에서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한국 문화를 그 본질보다 과장하여 설명하는 경우도 많다. 고급 한정식집을 방문하며 이것이 한국인들이 끼니마다 보편적으로 갖추는 건강한 식단인 것처럼 설명했고, 외국인들은 그에 대해 감탄했다. 사실상 소위 ‘국뽕’(국가에 대한 자긍심에 과도하게 도취되어 자국을 찬양하는 행태를 비꼬는 말)에 대한 한국인의 욕구와 이를 충족해주는 외국인의 반응이 점철되어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한국에 대해 진정한 타자로서의 외국인이라기보다, ‘한국인이 보고 싶어 하는’, ‘한국인의 시선을 대변하는’ 유사한국인으로서의 외국인의 모습이 재현되고 있다.
“어서와.”는 과연 진정한 환대인가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지금껏 파일럿 프로그램을 포함해 약 70회 정도 방영되었다. 그런데 그중 50회 정도는 핀란드,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권 국가 위주로 편성되었다. 시즌 2에서는 네팔, 터키, 모로코 편을 편성하여 외국인 출연자의 출신 국가를 다양하게 하려 노력했다. 사실 대한민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은 중국, 일본, 대만과 같은 아시아 국가에서 대부분 유입되고 있지만, 여전히 서구 유럽, 미국 출신의 외국인 출연 빈도가 우세하다. ‘한국을 사랑하는 매력적인 백인’이 시청자의 호감을 쉽게 사기 때문이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문구에서 과연 “어서와.”는 모든 외국인에게 해당하는 진정한 환대일까 혹은 한국인의 백색 열망 심리를 내포하는 선택적 환대일까. 백인·서구문화로부터 겪은 과거의 상처는 한국인의 민족적 정서에 잔재해 있다. 서구열강의 문화제국주의 질서에서 겪었던 상흔은 백인우월주의나 백색 열망과 같은 사회적 현상을 낳기도 했다. 한국인들은 한국문화에 관심을 두고 그에 동화되려 노력하는 백인들을 좋아한다. 그들로부터 우리 문화를 인정받았다고 느낄 때 우월한 백인과의 동질감을 느낀다.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한국인은 열등한 유색인종과의 차이에서 우리 문화의 우월성을 인정받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어서와.”라는 친절한 말은 유색인종을 청자로 설정한 것이 아니다. 매력적인 백인이 서툰 한국어를 하면 준비성이 있는 것이고, 유색인종 외국인이 서툰 한국말을 하면 “남의 나라에 오면서 한국어도 배우지 않았느냐?”라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인종적 편견 속에서 문화의 지위를 설정하고 그 구도 속에서 한국의 위치를 설정하려는 셈이다.
최근 제주도로 입국하는 예멘 난민들을 대상으로 한국인들의 찬반 논쟁이 뜨겁다. 제주 난민을 둘러싼 가짜뉴스의 확산, 반이슬람 정서를 바탕으로 한 청와대 국민청원, 난민혐오 반대, 포용과 공감 등의 쟁점이 거세게 부딪힌다. 이러한 논점들을 우선 차치하고, 과연 제주 예멘 난민만이 문제인가? 한국에는 시리아, 이집트, 파키스탄 등지에서 온 난민과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체류하고 있고 그 숫자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외국인이 바라보는 한국과 외국인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태도는 미화된 채 혹은 극단적으로 왜곡된 채 미디어에서 양산되고 있는 듯하다. 한국 체류 외국인에 대한 정책적 논의와 국민 담론은 과연 건강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고민해보아야 할 시점이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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