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영혼의 경제학 여정(旅程) <26> 금융통화운영위원과 한국은행.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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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95년 9월 금융통화운영위원으로 임명됐다.
산업계의 입장을 전해달라는 취지로 대한상공회의소 추천이었다.
당시 금융통화운영위원회 의장은 재무부 장관이었다. 한은 총재도 위원중의 한 사람이었으나, 재무부 장관을 대신해서 회의를 주재(主宰)했다.
한은과 은행감독원이 금통위의 의사결정 대상기관이었다.
한은 부총재, 은행감독원장은 회의에 참석했으나 의결권이 없었고, 한은의 임원들은 회의에 배석했다. 위원들은 비상근이었기 때문에 월 15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경제학 교수로서 금통위원으로 일하게 된 것은 영광스럽고 매우 유익한 경험을 쌓는 기회였다. 당시 이규성 전 재무부 장관이 금통위원으로 계셨고, 후에 박재윤 전 재무부 장관도 금통위원으로 합류했다.
금통위 회의에 참석해보니 한은의 문화가 꽤 폐쇄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금통위 회의 자료를 회의 후 회수해가는 일이 흔했다.
“이거 왜 회수해가는 거죠?”
“시장에 미칠 영향이 커서~~~”
“뭐요? 금통위원들을 못 믿겠다는 거요?”
나는 화가 나서 강한 어조로 말하고 금통위원들을 믿으라고 했다. 그 후로 자료를 회수해가는 일은 없었다.
한은 내부에서는 금통위원들을 지나가는 손님으로 보는 듯했다. 당시 금통위원들 간의 소통을 위해서 위원 중 간사를 호선해서 정했는데, 내가 호선되었다. 나는 금통위원들과 금통위 회의록 공개에 관한 의견을 교환했다. 거의 모두 공개를 찬성했다.
동료 위원들과의 사전 교감 후, 나는 금통위 정례회의에서 회의록 공개를 제안했다. 한은 임원들은 시장에 미칠 영향을 근거로 비공개를 주장했지만, 논의 끝에 시차를 두고 사후적으로 공개하기로 했다. 그 이후 한은의 금통위 회의록은 사후적으로 공개되고 있다.
금통위는 법적으로 통화 금융정책과 은행 건전성 감독에 관한 최고 의사결정 기구였다. 위원들은 그에 상응하는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일했다. 그 책임감의 무게 때문에 한은 임직원들에게 관련 정보를 요구했다. 한은은 국내 최고 수준의 엘리트 집단이었다. 이 우수한 인재들이 정리해서 보고하는 자료의 질적 수준은 만족스러웠다. 나는 거시 금융에 관해서 이 분들로부터 많이 배웠다.
그러나 때로는 한은 임직원들의 협조가 미흡하다고 느끼는 경우들이 있었다. 위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토론을 했다. 당시 금통위는 한은과 은감원의 인사권을 가지고 있었다. 결론은 그동안 수동적으로 자동 패스해왔던 인사권을 이제부터는 일부 행사하자는 것이었다.
“총재님, 이번 인사 관련 회의에서 잠시 자리를 비워주시죠.”
“왜요?”
“승진 인사를 금통위원들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는 뜻을 몸으로 보여주시는 거죠.”
“좋습니다.”
당시 총재는 이경식 전 경제부총리였다. 그는 유머를 즐기고 화끈한 열려있는 성격의 사나이였다. 사전 교감이 있었다. 이 이례적 상황이 발생한 후, 한은 임직원들의 금통위원들에 대한 협조는 더욱 만족스럽게 되었다.
<사진: 1996년. 금통위 출장으로 워싱턴 방문 중. 링컨 동상 앞에서.>
<사진: 1998년. 금통위 회의. 좌측부터 최연종 부총재, 필자, 김인준, 윤석범, 안승철, 이재웅, 진철환 총재, 김재윤>
<사진: 1996년. 금통위 출장으로 워싱턴 방문 중. 링컨 동상 앞에서.>
<사진: 1998년. 금통위 회의. 좌측부터 최연종 부총재, 필자, 김인준, 윤석범, 안승철, 이재웅, 진철환 총재, 김재윤>
나는 금융정책이 산업 현장의 흐름에 대한 지식을 토대로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금통위 회의에서 금통위원들의 산업현장 방문을 제안했던 이유였다. 작전 본부가 최전방의 상황에 집착하면 전체적인 전략 수립에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반론도 있었다. 그러나 금통위원들의 정례적인 산업 현장 방문은 실현되었다.
우리는 전국 각지의 생산 현장을 찾아가 애로 사항을 청취했다. 그 지식이 통화정책과 은행 건전성 감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해 보진 못했다. 그러나 나는 현재도 생산 현장에 대한 이해 없이는 어떤 종류의 경제정책도 높은 실효성을 가지기 어렵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산업 현장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인 정책 수단을 시행할 경우, 그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 정책 대상들의 정책 소화 능력에 격차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정책 대상별로 차별화된 정책이 그 실효성의 기준에서 세련된 정책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사진: 1995년. 금통위원회 산업 시찰 현장. 좌측부터 이재웅 위원, 김인준, 한 사람 건너 이규성, 윤석범, 유시열 부총재, 필자, 김재윤, 추인석.>
<사진: 1995년. 금통위원회 산업 시찰 현장. 좌측부터 이재웅 위원, 김인준, 한 사람 건너 이규성, 윤석범, 유시열 부총재, 필자, 김재윤, 추인석.>
나는 대학 시절부터 테니스를 즐겼다. 그런데 한은에도 테니스 매니아(mania) 들이 있었다. 당시 조사 담당 김영대 이사가 그중 한 분이었다. 금통위원들이 재미있는 제안을 했다. 김영대 이사와 내가 단식 경기를 하고, 모두 각자의 판단에 따라 판돈(?)을 걸자는 것이었다.
예컨대 이 총재는 나의 승리에, 은행감독원장은 김 이사의 승리에 10만 원씩을 각각 걸었다. 이렇게 모인 판돈은 경기 후 회식비로 쓰기로 했다. 경기 심판은 박재윤 위원이 맡았다. 장소는 한은 강남 사무소 테니스 코트였다.
나도 자신이 있었지만, 김 이사도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매일 아침 테니스 동호회에서 운동을 한다” 고 심리전까지 폈다. 우리는 여름의 해가 긴 어느 날, 업무시간이 끝나자마자 경기를 시작했다. 3세트 2승으로 승자를 결정하는 경기였다. 결과는 무승부였다. 1 대 1 스코어에서 3세트의 승부가 어두워질 때까지 나지 않아 박재윤 심판이 무승부를 선언했다.
그날 이 총재를 비롯한 한은 임원들과 금통위원들은 우리 게임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장면을 안주로 초등학생들이 운동회를 끝낸 기분으로 즐거운 회식을 했다. 그날 게임은 실질적으로 내가 졌다. 스트로크에서 내가 밀렸다. 나는 로빙(lobbing)을 활용해서 위기를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 나도 몸놀림이 빠른 편인데, 김 이사는 마치 적토마(赤兎馬)처럼 뛰었다.
<사진: 세기의 대결의 개획식. 좌측부터 필자, 김영대 이사 그리고 심판석에 앉은 박재윤 위원.>
<사진: 1996년. 한은에서 세기의 대결을 무승부로 마치고 이경식 총재로부터 무언가 기념품을 받았다. 좌측부터 이경식 총재, 필자, 김영대 이사.>
<사진: 세기의 대결의 개획식. 좌측부터 필자, 김영대 이사 그리고 심판석에 앉은 박재윤 위원.>
<사진: 1996년. 한은에서 세기의 대결을 무승부로 마치고 이경식 총재로부터 무언가 기념품을 받았다. 좌측부터 이경식 총재, 필자, 김영대 이사.>
1995년 나는 서강대 경제대학원에 “기술이전 협력론” 강의를 개설했다. 기술경제학 수강 후 들을 수 있는 과목이었다. 1996년에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 국제경제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 “기술혁신중심의 신산업전략” 이란 영어 논문을 발표했다.
<사진: 경제대학원 강의용 '기술이전협력론' 교재.>
<사진: 1996년. 일본 국제경제학회에서 논문 발표 후, 오랜 교류를 해온 일본 중앙대의 사이토 마사루 교수와 함께. 사이토 교수는 “기술이전론”분야에서 훌륭한 연구 업적을 쌓은 분이었다. 앞줄 좌측부터 이석봉 특파원, 필자, 사이토 교수, 안충영 중앙대 교수.>
<사진: 경제대학원 강의용 '기술이전협력론' 교재.>
<사진: 1996년. 일본 국제경제학회에서 논문 발표 후, 오랜 교류를 해온 일본 중앙대의 사이토 마사루 교수와 함께. 사이토 교수는 “기술이전론”분야에서 훌륭한 연구 업적을 쌓은 분이었다. 앞줄 좌측부터 이석봉 특파원, 필자, 사이토 교수, 안충영 중앙대 교수.>
한편 서강대 본부에서는 1995.2~1996.8 사이에는 21세기 기획단장을 맡아 서강대의 장기발전계획을 마련했다. 그 계획은 카톨릭의대와의 통합 프로젝트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현재까지도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사진: 1996년. 서강대 21세기 기획단장 시기에 서정호 부총장과 함께. 좌측부터 필자, 서정호 부총장, 故윤여덕 교수(당시 총무처장).>
<사진: 1996년. 서강대 21세기 기획단장 시기에 서정호 부총장과 함께. 좌측부터 필자, 서정호 부총장, 故윤여덕 교수(당시 총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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