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안철수의 국회의원 출마?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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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에서 실패한 이재명, 안철수 두 사람이 각각 인천 계양과 성남 분당 보궐선거에 나서려는 것 같다. 대통령 선거에서 실패한 두 사람이 선거가 끝난 지 불과 두 달도 안 돼서 치르는 보궐선거에 나서는 모습은 좋지 않다. 두 지역구는 현역 의원이 서울시장과 경기지사에 나서는 바람에 발생한 보궐선거인데, 그 빈자리를 채우겠다고 나섰으니 더욱 그 모습이 좋지 않다. 더구나 두 지역은 각각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절대적 우세지구라서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되는 지역구이니, 그런 지역구에 대선에 나왔던 사람이 나서는 모습은 더욱더 좋지 않다.
대선에 나왔으나 실패한 사람이 얼마 후 곧 다른 선거에 나온 유명한 경우로는 리차드 닉슨이다. 닉슨은 1960년 대선에서 아주 근소한 차이로 케네디에게 패배했다. 그리고 불과 9개월 후인 1961년 9월에 이듬해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닉슨이 나선 데는 이유가 있었다. 닉슨은 캘리포니아가 고향이고 캘리포니아 주민들에 의해 하원의원과 상원의원이 되어서 부통령을 지냈다. 당시 캘리포니아는 공화당 우세지구였다. 하지만 1958년 선거에서 민주당은 주지사로 팻 브라운을 내세워서 승리했고, 다른 선거에서도 공화당을 눌렀다. 1960년 대선에서 닉슨은 케네디를 상대로 캘리포니아에서 승리했다. 따라서 1962년 주지사 선거는 공화당이 캘리포니아를 다시 찾아오느냐, 아니면 그대로 팻 브라운한테 재선을 허용하느냐는 중대한 의미가 있었다.
당시 공화당으로선 닉슨만큼 훌륭한 후보가 없었다. 닉슨이 주지사 출마를 선언하자 초기에는 닉슨이 지지도에서 팻 브라운을 리드했으나 얼마 후 역전되고 말았다. 펫 브라운은 닉슨이 1964년 대선에 다시 나오기 위해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출마할 뿐이고 캘리포니아 사정을 잘 모른다고 공격했다. 선거 결과는 닉슨의 패배였다. 대통령 선거에 나와서 매우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던 닉슨이 2년 후에 자기 고향에서 주지사 선거에서 5% 차이로 패배했으니 큰 충격이었다.
그 때 닉슨은 자신의 패배를 언론 탓으로 돌렸다. 닉슨은 이제 “당신들은 더 이상 걷어찰 닉슨이 없다”("You won't have Nixon to kick around any more.")고 고별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이 모습을 본 ABC 방송의 앵커 하워드 스미스는 ‘리차드 닉슨의 정치적 조사'(弔辭)’(“The Political Obituary of Richard Nixon.”) 특집방송을 내보냈다. 스미스는 닉슨의 정치적 생명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그러면 정말 닉슨은 1964년 대선에 나서기 위해서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을까? 닉슨의 속마음은 정반대였다. 1964년 대선은 공화당에서 누가 나와도 케네디 대통령을 상대로 이길 수 없다고 생각됐으며, 1960년 대선에서 아주 근소한 차이로 패배한 닉슨은 1964년 대선 출마를 거부할 명분을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따라서 닉슨은 1964년 대선 출마를 피하고 1968년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 1962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나섰던 것인데, 예상 외로 패배해서 분노의 눈물을 삼킨 것이다. 당시 민주당은 그들의 정치적 숙적(宿敵)인 닉슨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했다.
1962년 주지사 선거에 패배한 닉슨은 뉴욕의 로펌에 자리를 얻어서 뉴욕시로 이사를 갔다. 1963년 11월, 케네디 대통령은 암살됐고, 1964년 대선은 케네디 후광으로 존슨이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1966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선 공화당 후보 로널드 레이건이 팻 브라운 주지사를 상대로 승리해서 4년 전에 닉슨이 당한 치욕적 패배를 극복했다. 레이건은 주지사를 8년 간 하면서 공화당 대선 주자로 체급을 확실히 키웠고, 닉슨은 1968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이처럼 1962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는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었다. 그러면 이재명과 안철수가 각각 자기 정당 우세지구 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것은 무슨 정치적 의미가 있을까 ?
나는 전혀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
<사진 : 1962년 닉슨의 고별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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