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즈부르크에 모차르트는 없었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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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좋은 기회가 있어 유럽을 장기간 여행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스트리아 짤즈부르크를 방문할 즈음, 마침 ‘모짜르트 축제’ 기간이라고 한다. 이게 왠 떡인가! 많은 작곡가 중에서도 특히 모차르트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더 없이 반가운 일이었다. 서둘러 다른 도시 방문 일정을 조절하고, 같이 간 일행들에게도 은근슬쩍 ‘모차르트 음악을 실제 연주로, 그것도 모차르트의 도시인 짤즈부르크에서 들을 수 있는 것은 흔한 기회가 아니다.’라고 반 강요성 설득과 협박(?)을 하여 음악회 티켓도 조금 비싼 돈을 지급하고 구하였다.
여기까지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짤즈부르크에 막상 도착하여 시내 관광을 하면서 너무 의외의 모습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축제이고 또 짤즈부르크는 누구나 아는 모차르트의 도시 아닌가? 그런데 도시 어디를 봐도 모차르트 축제의 간판이나 싸인 또는 눈을 끄는 장식물들을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내가 잘못 찾아왔나? 날짜는 맞지만 혹시 월(月)을 혼돈한 것 아닐까? 그러나 확실히 정확한 월, 정확한 날이었다. 그런데 더욱 황당한 것은 모차르트 시어터(모짜르트 축제가 벌어지는 극장)를 찾고 찾아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니 내가 혹시 오스트리아 짤즈부르크와 오스트레일리아 짤즈부르크를 혼돈한 것 아닌가?
별별 희안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마침 클래식 CD를 파는 가게를 찾았다. 그래서 여기는 알겠지 하고 가게에 들어가 잘 생긴 젊은 점원에게 물었다. 그러나 우선 가게 안에 들어가서 느낀 첫 인상은 클래식 CD가 차지하는 진열장 크기가 너무 적다는 사실이었다. 어떻든 젊은 점원에게 나의 목적을 얘기하고 좋아하는 모차르트 CD를 구입하였다. 그러면서 “왜 이리 모차르트 축제기간인데도 그 축제를 아는 사람도 없고, 또 모차르트 시어터를 아는 사람도 없느냐? 그리고 음악의 도시라는 짤즈부르크에 클래식 음반 가게도 이리 찾기 힘드냐?” 라고 물었다.
그 점원의 답변은 나를 더욱 당황하게 만들었다. “모짜르트 음악회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고, 클래식 CD를 파는 가게도 자기가 이 지역에서 거의 유일하다는 답변이었다. 그리고 더 많은 CD를 사고 싶으면 시청 어디어디로 가라.”고 답변하였다.
어쨌든 이리저리 길을 물어 드디어 모차르트 시어터에 도착하였다. 그 안의 장식이나 참석하러 온 관람객들은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바로 그 화려한 모습의 극장 그리고 어깨를 들어낸 그 화려한 예복을 입고 있는 관람객들이었다.
이것은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래 이것이 서양문화의 보편성이고, 클래식 음악의 시장이란 말인가? 이렇기 때문에 세계 유수의 베를린 필, 런던 필 그리고 뉴욕 필 등이 재정난을 겪고 있단 말인가?
주마등 같은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는 파리 루부르궁전 박물관을 보면 그 규모와 화려함 그리고 콜렉션에 감탄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안내 방송을 듣는 기계가 우리 KAL이 기증한 것이어서 기분 좋기도 하였다.). 그러나 역사책을 읽어 보면 루브르 박물관을 지은 루이14세 때 불란서 여성들의 월경이 20대 후반이면 끊겼다는 기록이 있다. 이 무슨 해괴한 말인가? 가장 화려했던 태양왕 시절의 프랑스 국민들의 영양상태가 이렇게 열악했단 말인가?
중국을 우리는 대단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리커창 총리의 말을 인용하면 지금도 중국 인구의 절반인 7억명이 우리나라 돈 한달 17만원 이하의 생활비로 살고 있다고 한다. 중국 여행을 해보면 대도시에는 엄청 화려한 집과 건물들이 많지만 ‘와! 저런 집에서...’라는 생각이 드는 열악한 집들이 시골지역으로 가면 너무나 많다.
서양 클래식 음반을 사보면 가끔 음반 커버에 작곡 당시 유행음악의 차트(지금으로 따지면 ‘인기순위’)가 인쇄되어 있는 음반이 있다. 그것을 읽어 보면 볼레로, 캐논 이런 음악들이 1,2위로 적혀있다. 나는 그런 것을 보고 ‘아! 이것이 서양문화의 수준이구나.’라고 무의식중에 생각하였다. 그래서 나는 나도 모르게 서양은 옛날부터 아주 잘 사는 나라고, 대중들도 바하나 헨델이나 모차르트를 일상적으로 듣고 즐기며 사는 것으로 알았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태백의 시가 유명한 것을 잘 알고 있다. 얼마나 그 내용이 유장하고, 거창하게 뻥도 많으며, 詩情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는가? 그러나 동 시대를 산 두보의 시를 보면 인생의 고달픔으로 가득 찬 내용이 너무나 많다. 너무 많은 것이 아니라 그런 시가 대부분이다.
나는 이런 엄청난 차이가 왜 생기는가를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아마 생각해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짤즈부르크 여행을 통해 어느 정도 알게 된 것 같다.
우리나라는 예나 지금이나 상하의 차이가 그렇게 심한 나라가 아니었다. 그러나 독재적인 군주, 황제, 짜르가 있는 나라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아주 적은 상위 몇 % 귀족 계층이 즐기는 고급문화와 일반 대중이 접하는 문화는 너무나 『극심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이런 시각에서 바라보니 1789년 불란서에서 어찌 그렇게 극도로 잔인한 대혁명(마라, 당통, 로베스피에르)이 일어날 수 있었고, 중국에서는 피비린 네 진동하는 혁명(왕조의 전환)이 150년 내지 길어야 200년 마다 『반복되어』 나타나는지 이해되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역사의 진실된 다른 면이 여행을 통해 배우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본의 아니게 여행을 하면 여행가이드 역할을 할 때가 있다. 나는 그때마다 함께 가는 동료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보고 감탄사를 먼저 내지 마세요. 자세히 보고 감탄하시고, 조금 미리 읽어 보시고 여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더 잘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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