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국 교수의 생활과 경제 이야기 <82> “개 식용을 법으로까지 금해야 하는 슬픈 나라”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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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개 식용금지법』, '동물보호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통과되었다고 한다. 2027년부터는 개의 식용이 사실상 금지된다는 법이다. 아마 이 법안에 대해서는 찬반 논란이 앞으로도 상당히 있겠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개의 식용까지 법으로 금해야만 하는가?”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그간 미루었던 개와 관련된 나의 생각을 조심스럽게 말해 보고자 한다.
많은 경우 특히 문화적 바탕이 약한 사람일수록 자기의 생각을 강하게 주장하고, 무엇보다 자기의 생각데로 “남도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 사람은 심리적으로 남도 나와 같게 생각하고 행동하기를 희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도 그 사람만의 의견이 있을 수 있고, 나도 나 나름데로의 의견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즉 생각은 사람마다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사고의 다양성』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성을 통해서 사회는 발전할 수 있다. 왜 우리가 북한과 중국을 그리고 러시아를 『독재국가』라고 부르는가? 그리고 그런 나라들을 경원시하며 후진적 국가라고 부르는가? 그 이유는 명료하다. 그 나라에서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특정 정당이나, 어는 특정 지도자의 생각을 온 국민이 따라 생각하기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약하게 말할 때는 『획일주의』라고 말하고, 조금 강하게 말할 때는 『독재국가』라고 말하는 것이다.
음식과 문화도 마찬가지다. 나라마다 그리고 사람마다 선호하는 음식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우리에게는 청국장이 최고 음식이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나는 고약한 냄세가 나는 파란곰팡이 치즈가 정말 싫었지만, 내 옆 독일 친구는 너무나 좋아했다.
또한 음식에 대한 취향도 시간이 지나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나는 ‘김치’ 가 전형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십수년 전까지만 해도, 외국인을 만나기 전에는 ‘김치를 먹지 말라.’고 했다. 김치 냄세를 풍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한가? 이제 김치는 세계적인 식품이 되었다. 비아냥 거리던 일본의 수퍼마켓에서도 가장 다양하게 전시되고 팔리는 상품 중 하나가 김치다. “좋은 것은 무조건 다 내꺼다.”라고 염치없이 떠드는 중국은 자기가 『김치 원조국』이고, 김치는 중국음식이라고 까지 주장하고 있다.
1. 개는 당신에게 고기인가, 반려동물인가? 2분법적 사고의 위험
윗 문장은 어느 신문의 제목이다. 이런 류의 ‘2분법적’ 제목은 신문사 입장에서는 자극적일지 몰라도, 아무리 양보해도 수준 높은 질문일 수는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누구에게는 반려동물이고, 누구에게는 고기일수 있으며, 누구에게는 반려동물이면서 고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 식자들 사이에는 “많은 국민들이 2분법적 사고를 갖게 되어 걱정이다. 그래서 불필요한 싸움이 야기되고, 국민화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런 2분법적 사고를 국민들이 갖게 되는데는 언론들의 『2분법적 분할 구도 발언』이 상당 정도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개를 키우고 먹는 관습은 우리나라에서 매우 오래된 관습이다. 선사시대 그림에도 개가 등장하고, 고구려 무덤 벽화에도 나온다. 중국에서는 개고기를 ‘고려육’이라고 까지 부른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개가 주인을 구한 얘기, 수천리를 찾아 돌아 온 개 얘기 등이 너무나 많다. 개는 과거뿐만 아니라, 현대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와는 너무 가까운 동물이다.
나도 개를 사랑한다. 내가 은퇴하여 시골에 가서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 중에 하나가 바로 진돗개를 키우는 것이다. 나는 친구들에게 “진돗개는 개가 아니다. 그것은 영물(靈物)이다.”라고 자주 말한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도 진돗개는 영물이라고 하셨고, 나의 경험도 진돗개는 영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나에게 진돗개는 영물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많은 개 중의 하나일수도 있고, 어떤이에게는 너무 커서 귀찮은 개일 수도 있다. 내가 진돗개를 좋아한다고 해서, 남도 진돗개를 키워야 하고, 더욱이 진돗개 이외의 개를 키워서는 안된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2. 개와 관련된 문제 중에서 식용만이 가장 급한 문제일까?
(소음문제, 분견분제, 유기견 문제)
(1) 소음 문제
나는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많은 분들도 아마 아파트에 살고 있을 것이다. 아파트에 모여 살면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층간 소음문제”다.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층간 소음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뛰는 소리라고 한다. 그래서 위아래층 간에 다툼도 많이 생긴다.
그러나 우리 지성인답게 한번 깊게 생각해 보자. 층간 소음 문제의 주체는 대부분 아이들이다. 그러면 층간소음을 내지 않기 위해 아이들 보고 ① 뛰지 않게 할 수 있을까? ②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얼마나 지속될까? 그리고 ③ 어린아이에게 뛰지도 못하고, 큰 소리로 떠들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 과연 국가 장래를 짊어질 아이들에게 옳은 일일까? 당연히 합리적 해결책은 건물 규정을 강화하고, 필요한 가정에서는 바닥에 카팻트를 깔며, 그리고 우리 모두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어느정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는 자세일 것이다.
하지만 층간 소음은 말 그대로 층간 소음이다. 즉 위아래층 간의 일이다. 그러나 개가 짓는 소음은 아파트 전체의 문제이고, 주위 아파트 모두의 문제다. 우리 아파트도 개 소음이 요즈음은 많이 줄었다. 아마 개 키우시는 분들도 우리가 알고 있는 대책들을 새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다. 우리 아파트에도 ‘컹컹’ 큰소리로, 그것도 수시로 자주 짓는 개가 있다. 거의 20시간 이상 짓는 것 같다. 그것만이 아니다. 우리 아파트 건너 아파트에서는 대형 개가 ‘컹컹’ 짓는 소리가 우리 아파트까지 울려 퍼졌었다.
이것은 층간 소음문제를 훨씬 뛰어 넘는 문제다. 아파트 전체 그리고 주위 아파트『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당국자들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다. 층간소음문제가 정말 문제라면, 아파트 전체, 그리고 주위 아파트까지 영향을 미치는 소음문제는 문제가 아니라는 말씀인가요? 아마 당국자는 모르는체 있다가, 층간 문제처럼 주민들 간의 큰 물리적 마찰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 아닌지 궁금하다. 얼마 전 신문에서 어느 아파트에서는 ‘개를 키우지 않는 것’을 규약으로 정했다고 한다.
아파트에는 열심히 일하고 밤 늦게 들어와 밤잠을 청하는 사람도 있고, 열심히 공부하는 수험생도 있으며, 논문을 쓰기 위해 밤잠 못자고 씨름하는 연구원들도 있다. 제발 개를 키우시는 분들도 자기 개의 귀여움만 생각하지 말고, 남의 입장도 생각해 주시기 바란다.
그리고 어떤 부모들은 공부하는 아이들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개를 키운다고 한다. 그런 분들에게 한 말씀 조언하고 싶다. 공부하는 자식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 개를 키운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공부하고 피곤할 때 귀여운 개를 안고 위로를 받는 것 무엇이 나쁘겠는가? 그러나 한번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자식이 개를 안고 있는 시간이 길겠는가? 아니면 공부하는 시간이 길겠는가? 더욱이 개가 거실에서 낑낑거리거나 짓으면, 방에서 공부하는 자식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을까? 아니면 ‘왜 짖을까?’를 생각하며, ‘주의력이 분산되지 않을까?’ 부모로써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2) 분견문제와 유기견문제
언제인가 아파트 경비원과 대화를 나눈적이 있었다. 때가 가을이었기 때문에 낙엽청소하는 것이 대화였다. 그런데 그분이 “아이고, 모르는 소리 마세요. 낙엽은 가을 한철이예요. 그런데 개똥은 1년, 12달이예요. 어떻게 자기 개를 귀여워서 키운다는 사람들이 그처럼 무책임한지 모르겠어요.”하는 것이다. 나도 개의 분견으로 좋지 않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더욱 무책임한 행위는 유기견 문제다. 개를 좋아서 키운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책임도 따라야 한다. 만약 개의 사육환경이 나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개가 예쁘다고 키우다가 『귀찮아지면 버리는 사람도‘같이’나무랄 수』 있어야 한다. <2022년 반려동물 보호·복지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2년 연간 유기동물 발생 수는 총 113,440마리였다. 전국 239개 지자체 동물보호센터에서 1년간 『입소된 개체』를 파악한 수치다. 즉 11만 마리가 넘는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이 수치는 보호센터에 1년간 『입소된 개체』 숫자라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입소된 숫자보다는 방치된 숫자가 훨씬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개체들은 끊임 없이 번식을 할 것이다. 임신중절 등의 개체조절 조치가 없기 때문에, 유기동물의 숫자가 앞으로 크게 늘어 날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들 생명으로서의 권리도 문제지만, 그들이 옮길 수 있는 질병은 더 큰 문제다. 조류독감이 왔다고, 조류관찰도 제한하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그런 정부가 유기 개, 유기 고양이가 전달하는 질병에 대해서는 왜 입을 닫고 있는지 궁금하다.
3. 어느 60대 부부의 하소연과 “개 보다 못하게 태어난 당신입니까?”
(1) 부모님 보다 우선인 개
나는 사회봉사 차원에서 가끔 강의를 나간다. 주로 경제관련 강의를 하는 편이다. 그리고 때로는 나의 전문분야는 아니지만, 노후경제 문제도, 말할 때가 있다. 지난 강연에서 어느 60대 부부의 하소연을 듣고 “아! 이것이 미래에는 정말 부모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 부부도 우리나라 어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자식을 열심히 키웠고, 결혼까지 시켰다. 여기까지는 당연한 얘기다. 그러나 그 다음이 가슴 아픈 얘기였다. 결혼 직후에는 곧잘 찾아오기도 하고, 안부 전화도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특히 개를 키우면서부터는 찾아오는 숫자나 전화가 현격하게 줄었다는 것이다. 어쩌다 전화하여 “무엇하느냐?”고 물으면 개 목욕시키고, 개 산책시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빠서 못간다는 것이다. 아마 제법 많은 분들이 이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개는 『정기적』으로 목욕시키고, 산책시키지만, 부모님께는 찾아 올 시간도, 전화할 시간도 없는 것이다. “내가 아파 누워도 개를 위해서는 운동을 시켜도, 나를 위해서는 운동시킬 것 같지 않다.”는 것이 그 부부의 말씀이었다. 상당히 점잖게 보이는 그 부부의 말이 강의가 끝난 뒤에도 귓가에 맴 돌았다.
(2) “개 보다도 못하게 태어 난 당신입니까?”
그러나 더 기가 막힌 것은 바로 다른 사람의 발언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개를 많이 키우지만 서양에서도 개를 많이 키운다. 그러나 거기에는 작은 듯이 보이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는듯하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의 나이다. 서양에서는 개를 키우는 사람들의 나이가 많은 노인이거나, 아니면 자식들이 어느정도 자란 이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만큼 젊은 시절에는 바쁘고 돈을 버는데 시간을 많이 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이어서인지 ‘모든 것을 경제와 연관짓는 직업병’이있다. 우리나라 2,30대 젊은 사람들이 개를 키우는 것을 보면서, “개 한마리를 키우는 것이 자식 하나 키우는 것과 비슷한 경비가 든다는데, 20대, 30대 젊은 사람들이 개를 키우는 것을 보면, 흔히 말하는 것처럼 우리경제가 그리 나쁘지는 않는가 보구나.”라는 실없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가벼운 얘기다. 하지만 전직 공무원이었던 다음 분의 얘기는 나도 생각하지 못한 심각한 문제였다. 그 분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아이 낳고 키우는 것이 힘들고 돈이 많이 들어, 자식을 낳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 생각에 저는 매우 당황스럽습니다. 자기에게는 다음 세대가 자식입니다. 그러나 그 젊은 사람은 그들 부모에게는 자식입니다. 그러면 그들 부모가 자식 키우는 것이 힘들어서 자식을 낳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났겠습니까? 그러면 태어나지도 못한 자기는 부모가 키우는 개보다도 못하다는 것 아닌가요? 왜 스스로를 개보다도 못한 존재로 만드는지 모르겠습니다.”라는 말이었다.
정말 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다. “왜 스스로가 스스로를 개보다 못한 존재로 만든다는 것입니까?”라는 말은 정말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역시 ‘공무원 출신이라 다르구나.’라는 생각도 함께 해 보았다.
과거에 비해 자식을 키우는 것이 힘든 것도 사실이고,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옛날 부모님들도 자식을 쉽게 키운 것은 절대 아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정말 훨씬 더』 힘들게 자식을 키웠다. 자식 키우기가 힘들어서(아마 귀찮아서가 더 정확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자식을 낳지 않고, 자식 대신 자식 키우는 것과 비슷한 돈이 드는 개를 키우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다.
개를 산책시킬 시간은 있지만 부모님을 찾아 갈 시간은 없는 분들이 정말 안타깝다. 자식은 『보고 배운다』고 한다. 자기의 어린 자식들은 그것을 보고 자랐다. 그러면 그 아이들이 자라서 그 부모에게 효도할까? 아니면 또 그 자식도 개를 키우는 것으로 부모님 찾아 가는 것을 대신할까?
4. 개고기 먹는 것을 법으로까지 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말했지만 독재라는 것은 간단하게 말하면 “내가 생각하는 것을 남도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이다. 이것은 부모 자식간에도 있을 수 있고, 정당간에도 있을 수 있으며, 국민들 간에도, 나라에 따라서는 한명의 지도자와 다른 모든 국민들이 따라 하기를 강요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자유주의 국가다. 자유주의 국가는 큰 법과 민주 사회적 태두리 안에서 문제가 없다면 『선택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 이런 큰 사회적 규약에 벗어나는 악법을 만들어 국민을 옥죄는 것은 법의 남용이다. 그것도 국회의원이 그런 법을 제안하고 법제화하는 것은 『직권남용』에 해당된다. 국회 앞에서 시위하는 사람도, 반대시위를 하는 사람도 그들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다. 나쁘지 않다. 그러나 큰 사회적 규약에 벗어나는 것도 아닌 일을, 일부 사람들의 선호를 만족시키기 위해, 막중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불필요한 법을 만드는 것은 『직권남용』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신문지상에 해당 국회의원들의 이름도 나와있지만 여기서 거론까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간 너무 많은 비판을 받았던 사람들인 것으로 기억된다.
개는 우리민족과 5천년을 같이 한 존재다. 우리와 가장 친한 친구다. 나에게 있어 개는 반려견이 아니다. 그 이상의 존재다. 그러나 개는 우리들에게 많은 영양을 공급한 존재이기도 하다. 『동의보감』에도 '개고기가 오장을 편안하게 하고,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해주며 기력을 증진시킨다'고 했다. 조선시대 세시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에도 '더위를 물리치고 허한 기운을 보충한다'고 나와있다. 우리 조상들은 몸이 너무 허약하였을 때, 그리고 수술 후 원기 보충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개를 먹었다. 개가 먹는 음식은 사람과 비슷하여서인지 고기 중에서 소화 흡수율이 가장 높다고 한다. 그리고 시골에서 여름 강가 천렵을 가서도 동네 사람들 끼리 가장 화기로운 분위기를 돋구어 주는 역할도 하였다.
5. 과연 법제화가『해결책』일까?
통계를 보면 해결책은 이미 나와있다. 개고기 금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제시하는 자료를 보아도 명확하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이’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9명이 '향후 개고기를 먹을 의향이 없다'고 대답했다. 전국 성인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동일 연구소의 다른 조사에서도, ‘향후 개고기를 먹을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약 93%가 ‘없다’고 대답하였다. 또한 ‘지난 1년간 개고기를 먹은 적이 없다.’고 대답한 비율도 약 95%였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은 개를 식용으로 많이 소비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고 관계자들도 말하고 있다.
이미 답은 나와있다. 이미 사람들은 개를 먹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다. 그리고 무게가 나가지 않는 애완견은 식용의 대상 자체가 아니다. 애완견과 식용 대상견을 혼돈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개의 사육환경이 나쁘거나, 유통과정이 좋지 않다면 개선하는 제도를 만들면 된다.
<< 결 론 >>
나는 분명히 말하고 싶다. 우리나라는 자유국가다. 자유주의 국가는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민주사회의 큰 틀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 한,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다.
인도가 미래에 강국이 되어 ‘소를 먹지 못하게 하는 것’도 원하지 않고, 아랍국가들이 힘이 세져서 ‘돼지고기를 못 먹게 하는 것’도 나는 원하지 않는다. 몇 명 사람들이 국회 앞에 모여 반대한다고, 수천년 동안 먹든 음식을 못먹게 법제화하는 것은 『명백한 자유 선택권에 대한 제한』이다. 내가 개고기를 먹고, 안먹고 와는 무관하다. 나는 『나의 잠재적 선택의 권리가 박탈 당하는 것』에 찬성하고 싶지 않다. 이 글을 쓰면서도, 이 모든 이상한 행동들은 정상적인 민주교육과 역사교육의 부족에서 오는 허탈한 우리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왠지 씁쓸하다.
합리적인 해결책과 시행안이 곧 나오기를 기대한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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