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국교수의 생활과 경제이야기<79>2024년 경제전망-서민경제 중심으로-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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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하루 이틀은 천천히 가지만, 한 달 두 달은 빨리 가고, 1년은 더 빨리 간다.’는 아주 재미있는 지적을 하였다. 나이가 들면서 이 말이 더욱 실감이 간다. 2023년 경제전망을 쓴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24년 경제전망을 쓸 때가 되었다니 참 세월이 빠른 것 같다. 하기야 엊그제까지만 해도 청년인 내가 이 나이가 되었으니 할 말은 없다.
나는 국가 경제를 ‘넓은 바다에 떠 있는 큰 배’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즉 세계 경제라는 큰 바다에서 국가의 생존을 위해 열심히 배 안에서 일하는 모습이 그 나라의 경제라는 뜻이다. 그러나 큰 바다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태풍이 불 때도 있고, 때로는 보이지 않는 해류라는 큰 흐름도 있다. 당연히 국가 경제는 이런 바람과 해류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바람이 고요하고, 해류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흐를 때, 외부경제는 우리의 큰 관심사가 아니다. 이럴 때는 내부경제가 더 큰 관심사다. 그러나 태풍이 불고, 해류 방향도 우리 진행 방향과 다를 때, 우리는 외부 환경에 더 큰 신경을 쓰게 된다. 내가 볼 때 2024년도 경제는 내부경제 보다는 외부경제가 더 중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지만 최근 세계 경제 흐름을 바꾸는 큰 사건들이 있었다. 멀게는 1차 2차세계대전이고, 가까이에는 WTO 경제체제와 IMF 경제 위기, 그리고 극히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이다.
7, 80년 전의 일인 1, 2차세계대전을 지적하는 데 약간 의아해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경제는 『어느 날 갑자기』 중요한 사건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많은 앞에 있는 사건들이 겹치고 겹쳐 생기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그 안에 얽혀진 역사를 이해하면 “아! 그것이 그래서 그랬구나.”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리고 당연히 현재 상황에 대한 이해도 쉽게 할 수 있다. 여러분의 흥미를 끌기 위해 한 말씀만 드린다면, 1997년 우리나라 IMF 외환위기도 사실은 WTO 경제체제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면 조금 차분한 마음으로 1차, 2차세계대전부터 짧게 살펴보도록 하자.
1. 1차, 2차세계대전의 발발 원인
1차, 2차세계대전은 정치와 경제 모든 면에서 전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1, 2차세계대전도 면밀히 분석해 보면 그것은 경제 문제에 귀착된다. 쉽게 얘기해 보자. 1차세계대전은 흔히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페르디난트 대공이 암살당한 것에 기인하였다고 배웠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도화선이었지 근본 원인은 아니다.
전쟁은 다음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발생한다고 본다. 하나는 전쟁으로부터 얻는 경제적 이익이고, 다른 하나는 전쟁을 통해 복잡한 국내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정치지도자의 개인적 야심이다. 그러나 후자 경우에도 전쟁의 승리로부터 오는 경제적 이득이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은 결국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발발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부구조(즉 경제)가, 상부구조(즉 정치와 도덕)를 결정한다.”는 유명한 말은 전쟁의 경우에도 『무섭게』 적용되는 것이다.
(1) 1차세계대전의 원인과 베르사유협정
독일은 원래 통일국가가 아니었다. 39개국의 작은 공국으로 구성된 느슨한 형태의 연방국가였다. 그리고 각 공국은 서로 간에 독립된 나라였기 때문에, 독일이라는 이름 아래 통일된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즉 불란서의 루이 14세가 지배하는 절대왕권 국가와는 힘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유럽에서 일어난 많은 전쟁에서 독일은 연속해서 패하고, 약소국가 아닌 약소국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런 독일이 처한 상황에 분개하는 두 사람이 있었다. 바로 프로이센의 국왕 빌헬름 1세와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였다.
비스마르크의 엄청난 뚝심과 놀라운 전략으로 프로이센공화국은 주위 연방국가(공국)들을 통일하고, 그 여세를 몰아 오스트리아로부터 독립도 이루었다. 이제 독일은 통일된 하나의 제국이 되었고, 통일을 이룬 독일은 그 힘을 사용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당시 전 세계는 『이미』 기존 강대국인 영국과 불란서, 스페인 등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럼 어떡해야 되겠는가? 전쟁을 통해서 빼앗아야 한다. 그래서 황태자 암살사건을 빌미로 전쟁을 벌였던 것이다. 그러나 늦게 통일을 이룬 독일은 기존 미영불 등의 연합세력을 이길 만큼 아직 충분히 강한 나라는 아니었다. 그래서 연합국에 의해 독일은 패하게 되었다.
그 결과 철광과 석탄의 주산지인 알자스와 로렌지방을 불란서에 다시 돌려주어야 했고, 별로 많지도 않은 해외 식민지도 패전의 보상으로 승전국들에게 나누어 주어야만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문제가 된 것은 『베르사유 조약』이었다.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은 정말 많은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잠깐 머리를 식히도록 하자.
(루이 14세는 불란서의 위상과 자신의 절대권력 상징으로 베르사유 궁전을 유럽 제1의 화려한 궁전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돈을 들여 만든 방이 바로 『거울의 방』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유럽에서는 유리, 특히 거울은 매우 비싼 제품이었다. 왜냐하면 유리 제품은 이탈리아의 독점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유리 기술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 유리 장인들을 모두 ‘무라노’라는 섬에 가두어 두고 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만약 불법으로 나가면 손목을 자르거나, 사형에 처했다고 한다. 지금도 이탈리아 유리 제품 중에서도 최고의 유리 제품은 『무라노 유리』인데, 거기에는 이런 역사가 숨어있다. 무라노섬은 베네치아에 있는 섬 중의 하나다.)
그러나 유럽의 다른 왕들에게 자랑을 너무 하고 싶은 루이 14세는 베르사유궁 유리의 방 전면(全面)을 유리로 꾸미고 싶었다. 그러나 돈을 많이 지출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루이 14세는 비밀리에 사람을 무라노에 파견하여 유리공 한 가족을 거액을 들여 빼내 왔다.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산업 스파이』 작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은 무라노 유리로 채워졌지만, 이탈리아 산 무라노 유리가 아니라, 파리에서 만든 무라노 유리로 장식되었다.
이 산업 스파이 작전으로 이탈리아는 ‘유리 독점국가’의 위치를 상실하게 되었고, 그것으로 인한 이탈리아 국고 손실은 현재 돈으로 따지면 수백억불 이상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도 현재 중국이 시도하고 있는 우리나라 전자기술에 대한 도둑질을 단순한 기술 도둑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런 자들은 『반(反) 민족주의자』들이고, 당연히 기술 유출자들은『매우 엄격』하게 처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의 경우 군사기밀 유출자는 작은 기술 유출의 경우에도, 전자발찌를 키우고, 20년 형 이상을 부과하는 경우가 흔하다.
하여튼 이런 이유로 유럽에서 유일하게 화려하고 큰 유리로 장식된 ‘유리의 방’은 1차 세계대전뿐만 아니라, 2차세계대전의 종식 협정이 맺어진 장소가 되었다. 더욱 우스운 사실은 독일을 통일한 빌헬름 1세는 당시 불란서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자신의 황제 즉위식도 이 ‘유리의 방’에서 거행하였다. 독일 황제가 빼앗은 프랑스 궁전에서 즉위식을 가진 것이다.
패전한 독일에 대한 처리 문제는 다시 이 『유리의 방』에서 결정되었다.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되는가 보다.
(2) 베르사유협정의 주요 내용
모든 협정이나 전쟁은 그 협정 내용만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왜 전쟁이 일어났는가? 왜 그런 협정 문구가 나타나게 되었는가?에 대한 근본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항상 주장하는 말이지만 결과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지만, 그런 결과를 만들게 한 『근본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베르사유협정’의 근본 목적은 『독일이‘다시’는 강대국 대열에 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베르사유 협약 내용을 보면 너무 쉽게 그런 규정이 거기에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다.
< 영토 관련 규정 >
- 독일은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의 독립을 보장한다.
- 프랑스에 알자스와 로렌지방을 반환한다.
- 덴마크에 독일 북부 지방을 이양한다.
- 독일은 해외 식민지를 포기하고, 그 식민지는 인접 식민지를 소유한 승전국들이 차지한다.
<군 관련 규정 >
- 독일은 독일 보유 대포 5,000문과 비행기 25,000대와 함선을 연합국에 양도한다.
- 군대는 육·해군 모두 합해 10만 명을 넘을 수 없고, 공군은 소유할 수 없다.
- 새로운 전차의 개발 및 배치를 금한다.
- 라인강 왼쪽 국가들(주로 프랑스 국경)과의 경계에는 군대를 배치할 수 없다.
< 경제 관련 규정 >
- 연합국 측에 1,320억 마르크, 당시 기준 금(金) 가치로 지불해야 한다. (이때 배상금 결정에 참여한 케인즈는 이 금액은 독일이 갚을 수 있는 능력의 13배에 해당하는 지나친 금액이라고 말했다.)
- 모든 독일 기업들이 보유하는 특허권을 상실한다(바이엘사의 아스피린 특허권도 이때 상실되었다).
특별한 설명 없이도 이 베르사유협정이 얼마나 잔인한 내용인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이 협정의 근본 목적은 평화협정이 아니라, 독일을 다시는 일어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근본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여튼 이런 협정의 결과는 독일인들에게 너무 참혹한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경제와 관련된 인플레이션이었다. 경제 관련 통계에서 물가상승률이 연 3%를 넘으면 인플레이션을 우려하고, 연 200%가 넘으면 ‘초 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다. 그러나 독일은 1924년, 연간(年間)이 아닌 월간(月間) 물가상승률이 300%를 넘었고, 당시 2년여 기간 동안 독일 물가는 무려 ‘10억 배’ 상승하였다. 빵을 만들기 위해 장작을 사는 것보다 돈을 태우는 것이 더 경제적이었다고 한다.
구체적인 예로 1923년 11월 1일 빵 1파운드의 가격은 30억 마르크였고, 소고기 1파운드 가격은 360억 마르크였다. 물가는 연 1,000배(100,000%) 이상 뛰는 일이 일상사였다고 한다. 당시 발행된 최고금액 화폐는 1조 마르크였다고 한다.
(3) 무리한 베르사유협정의 결과와 2차세계대전의 발생
가. 2차세계대전의 발발 원인
제1차 세계대전으로 너무 많은 피해를 입은 불란서는 독일에 대해 매우 완강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배상금 책정에 참여한 유명한 경제학자 ‘케인즈’가 “이 배상금액은 바이마르 공화국이 지불 가능 액수의 13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이런 전쟁배상 비용은 독일이 도저히 갚을 수 없다. 이런 무리한 요구를 계속하면 20년 후쯤 제2의 전쟁을 가져올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적개심과 자국 이익에 집착해 있던 승전국들에게 이런 조언은 전혀 씨알이 먹히지 않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의 예언은 정확했다. 1차대전 종결 후 20년 그리고 며칠 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케인즈는 “사람들의 불확실한 행동은 짐작할 수 없어 주식투자에는 망했지만, 합리적인 생각을 한 전쟁의 예언은 너무나 정확하게 적중”시켰던 것이다.
이런 무리한 전쟁배상 비용은 결국 독일경제를 망가뜨리고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가져왔다. 당시 너무 물가가 빨리 올라 상점의 가격표는 시간 단위로 바뀌었다고 한다. 게다가 독일은 패전으로 금싸라기 땅 알자스와 로렌지방을 불란서에게 다시 빼앗겼고, 폴란드와 오스트리아도 빼앗겼다(사실상 독립이지만 독일 입장에서는 강제로 빼앗긴 것임). 독일 국민들의 영국과 불란서에 대한 『증오심』은 극도에 달했다.
나. 국민 영웅으로 인식된 히틀러의 등장
이런 극도의 증오심을 이용하여 세력을 잡은 사람이 바로 ‘히틀러’였다. 히틀러는 “게르만의 영광을 되찾자.”고 부르짖으며 상할 대로 상한 독일인들의 자존심에 호소하였다.
그런데 이런 민족적 자존심에 호소하는 것은 추후 독재자들의 공통된 특징인가 보다. 러시아의 스탈린도 “슬라브 민족이여 일어나라.”라고 외쳤고, 중국의 모택동과 시진핑도 “중화민족의 재현을”, 그리고 이란의 어느 대통령도 “과거 페르시아의 영광을 되찾자.”라고 외치고 있다.
하여튼 권력을 잡은 히틀러는 ① 전쟁배상금의 지불 정지 ② 독일 육해공군의 부활 및 엄청나게 전력을 강화하였고 ③ 독립했던 오스트리아를 재합병시켰다(영화 ‘사운드 업 뮤직’이 이때를 영화화한 것임). 그리고 무엇보다 ④ 독일의 경제를 안정시켰고(인플레이션을 연 300%로 안정화), ⑤ 모든 독일 농민들에게 (당시 독일은 공업화가 되었다고 하지만, 상당수의 국민은 농민이었음) 자동차를 갖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래서 탄생한 자동차가 바로 ‘딱정벌레, 폭스바겐(Volks Wagen)’이다 . 폴크스바겐(독일 발음)을 직역하면 『국민차』라는 뜻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폭스바겐의 최고속도는 80km로 아주 느린 차이고, 공랭식 차다. 그런데 그 차의 디자이너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차를 설계한 ‘포르쉐’다. 천재는 무엇이든지 잘하는가 보다. 그리고 포르쉐는 히틀러를 부를 때 ‘총통’이라고 부르지 않고, ‘히틀러’라고 이름을 부를 수 있는 몇 명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에 가면 매우 비싼 남자 정장 옷이 있다. 보스(Boss)라는 브랜드다. 그 기업의 주인이 바로 독일군 장교 옷을 디자인한 휴고 보스(Hugo Boss)다. 이런 눈으로 보스 남자 정장을 보면 약간 군복 비슷한 각(角)진 인상이 드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당시 엄청난 성과를 이룬 히틀러를 독일 국민들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히틀러는 정계에 입문하지 불과 13년 만에 ‘종신 총통’과 “Heil Hitler!, 히틀러 만세!”라는 군중들의 환호성을 얻게 되었다.
2. 2차세계대전의 발발과 결과
(1) 2차세계대전의 발발 원인에 대한 간단한 설명
2차세계대전은 ‘베르사유 협정’에 의한 독일 국민들의 극도로 상한 자존심과 히틀러의 매우 공격적인 성향 그리고 소련과 유대인에 대한 히틀러의 감정에 의해 발생하였다. 그러나 그 깊은 기저에는 대공황으로 인한 전 세계적인 경제 불안이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여기서 또다시 작용하는 원리는 『하부구조(경제)가 상부구조(정치, 문화, 도덕)를 결정한다.』는 지엄한 논리다.
2차세계대전이 세계사와 세계 경제에 미친 결과는 『엄청나게』 중요하였다. UN의 탄생, 세계은행(WB)과 국제통화기금(IMF)의 탄생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먼 결과로 ① 세계 자유무역협정(FTA)과 세계무역기구(WTO)가 탄생하였고 ② 1997년 우리나라에서는 IMF 경제 위기도 발생하였다.
나는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를 매우 좋아한다. 우리가 모두 아는 이 시를 다시 한번 음미해 보자.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나는 이 시가 가장 간결하게 쓰여진 역사서이고, 가장 간결하게 쓰여진 “경제의 인과 관계”를 설명하는 시(詩)라고 생각한다.
내가 2024년 경제를 설명하면서 엉뚱하게 제1차, 2차세계대전을 설명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모든 현상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들 간에는 반드시 『그물망』과 같은 『인과 관계』가 얽혀있는 것이다.
소쩍새와 천둥(1, 2차세계대전)이 울어댔고, 먹구름(FTA, WTO)이 있었기에, 하얗고 찬 무서리(IMF 경제 위기)가 저리 내렸고, 누님(우리 경제)과 내게는(우리 착한 국민들) 잠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인과 관계를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하면 미래 우리 경제가 어떤 모습일까?를 비교적 쉽고,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의 설명은 좀 더 최근의 직접적인 경험이다.
(2) 2차세계대전의 종전과 스탈린의 적극적인 공산주의 수출
2차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세계는 크게 두 개로 나뉘게 되었다. 바로 민주주의 세계와 공산주의 세계다. 1차세계대전 이전까지의 전쟁은 ‘식민주의 전쟁’ 또는 ‘땅 따먹기’ 전쟁이었다.
과거 농본주의 사회에서는 농사를 지을 땅과 인구수가 늘어나는 것은 곧바로 국력의 증가였다. 그래서 과거 수천 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전쟁은 국가 간에 국토 빼앗기 전쟁 즉 ‘땅 따먹기’ 전쟁이었다. 식민주의 확장이 아마 가장 최근에 버러진 땅 따먹기 전쟁이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농업 보다는 공업이 부(富)의 원천’이 되었고, 땅을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게 되었다. 식민지로부터 엄청난 자원을 가져오지 않는 한(영국에서의 인도), 오히려 식민지를 지키고, 그 나라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데 드는 비용이 더 많았다. 그래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영향도 있어 많은 식민지가 독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 또다시 문제를 일으키는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스탈린의 소련이었다. 소련은 2차세계대전의 승전국이 되자마자 강력한 독재력을 바탕으로 농업국가인 러시아를 공업국가인 소련으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주위 국가들은 집어삼켜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소련)을 만들고, 적극적으로 ‘공산주의를 수출’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소련의 공산주의 수출과 이를 막으려는 미국의 대응 전략은 전 세계적으로 많은 이념전쟁과 대리전쟁을 일으켰다. 쉽게 말해 전 세계는 끊임없는 작은 전쟁의 연속이었고, 어디에서 전쟁이 일어나든 그 배후에는 미국과 소련이 있었다. 이런 시대를 우리는 『냉전 시대』 또는 『미소 대리전쟁』의 시대라고 불렀다. 불과 20년, 30년 전까지 우리가 익히 경험했던 시대였다.
그러나 이런 대리전쟁, 냉전의 시대는『소련의 해체』로 너무 허망하게 끝을 맺었다.
소련은 자기 국력을 훨씬 뛰어넘는 세계 패권 국가로의 야욕을 성취하기 위해 제3세계에 대한 원조와 미국과의 경쟁을 위한 군비확장을 하였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소련에게 너무 큰 경제적 부담이 되었다. 공산주의 혁명 직후 ‘스푸트니크’를 성공적으로 쏘아 올린 소련의 과학적 성취는 경제력의 지속적인 바탕이 없어 결국 무너지게 된 것이다.
즉 공산주의‘계획경제’초기의 효율성이 개인의 이익을 존중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효율성에 도저히 따라갈 수 없게 된 것이다.
무리한 경제적 부담을 감당할 수 없었던 소련은 결국 고르바초프의 결단 아래 17개 국가로 분해되었고, 과거 소련의 원래 땅만 현재의 ‘러시아’로만 남게 되었다.
지금 시진핑의 중국이 너무 정확하게 이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식량과 원유 그리고 미국과 버금가는 과학기술 능력을 갖춘 소련의 저력과 중국의 저력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3) 소련의 분해와 미국의 태도 변화
소비에트연방의 해체는 미국의 태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 미국이 다른 국가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본원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다. 즉 과거에 미국은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지고 동생을 대해주는 큰 형님 같은 태도였으나, 지금은 왠지 그런 느낌보다는 동네에 있는 약간 덩치 큰 사람 같은 느낌이 든다. 좀 더 자세히 그 내용을 알아보자.
사실 전성기 시대에도 소련은 미국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전략적 관점에서 볼 때 중국은 더 안된다). 정확히 말하면 미국과 소련의 2극 체계가 아니라 미국과 소련의 1.5극 체제라고 보는 것이 옳았다. 그러나 미국의 절반 또는 그것도 채 안 되는 소련이었지만, 그것만 해도 충분히 큰 나라였다. 그래서 소련은 공산주의 세계의 맹주였고, 미국은 민주주의 세계의 맹주였다.
세계에 두 개의 주인이 존재하는 한 미국과 러시아는 함부로 자기 세력을 과시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둘 중 한 국가가 약소국에 대해 지나친 요구를 하면, 그 나라는 미국과 소련의 다른 한편에 도움을 청할 것이 너무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소는 자기보다 훨씬 작은 정말 볼품조차 없는 나라에도 많은 원조와 함께 끝없는 추파를 던졌던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미국과 소련의 중간에서 자기에게 원조를 더 많이 주는 국가의 편을 들어주는 나라들을 우리는 『제3세계』라고 불렀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갑자기 작은 형님인 소련이 사라져버렸다. 제3세계 작은 국가들은 ‘왔다리 갔다리’를 하면서 자기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국가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홀로 남은 미국은 이제 『수퍼파워』가 『수수퍼 파워』가 되었다. 다시 말하면 세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의 독점국가가 된 것이다.
3. 소련의 해체와 이로 인한 새로운 WTO 경제체제의 강요
소련의 해체로 최강대국의 위치를 독점하게 된 미국은 지금까지 누리지 못했던 전 세계 독점국가로서의 이익을 챙기고 싶어졌다. 무기 분야에서는 이미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강대국이므로 여기에서 더 취할바는 없었다. 그러나 무역 분야에서는 약소국들에게 그간 엄청난 경제적 원조를 하였고, 군소국들이 높은 무역장벽을 쌓아 『미국 상품의 수입』을 막더라도, 그것을 용인하지 않으면 소련 편이 될까 봐 관세 인하 등을 강요할 수 없었다.
그러나 눈엣가시 같은 소련이 해체(분해)되었다. 이제 소련 편으로 갈 염려가 없어졌다. 이제는 마음 놓고 미국이 “그 국가를 상대로 시장을 개방하라고 압력을 넣어도 그럴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 결과로 처음 탄생한 것이 바로 자유무역 협정(FTA, Free Trade Agreement)이었다. 그러나 최초의 협정인 FTA는 그래도 여유가 많았다. ① 제법 큰 나라만(주로 유럽 국가들)을 대상으로, ② 국가별로 차이가 너무 큰 농산물은 제외하고, ③ 주로 공산품에 대해서 ④ 관세를 대폭 인하하라는 협정을 맺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도 ⑤ 미국과 관계가 깊은 나라 주로 2차세계대전 참전국들에게만 요구하였다.
이런 FTA로 유럽은 상당히 빠르게 전쟁 이전 상태로 경제가 복구되었으며, 미국도 제법 큰 이익을 보았다. 그러나 미국이 얻고자 하는 것만큼의 큰 이익은 아니었다. 그러나 소련이 존재하는 한 미국이 유럽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을 너무 세게 몰아세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소련이 해체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수수퍼 파워』 미국밖에 없다. 세게 몰아 부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래서 미국은 큰 칼을 강하게 쓰기로 하였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WTO 경제체계이고,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세계화(Globalization)인 것이다.
(1) WTO 경제체제의 의미 (FTA와의 근본적 차이)
FTA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① 비교적 강대국 간에 ② 국가별 차이가 많은 농산물은 제외하고 공산품에 대해서만 ③ 관세율은 적당하게 낮춰줄 것을 요구하고, ④ 국가별 상호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당사국 간에 협의에 의해 처리하고, ⑤ 설령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협의를 언제까지 어떻게 하라는 ‘강요 조항’이 없는 ‘신사 규정’이었다.
그러나 이런 FTA로 어느 정도 재미를 본 미국은 과감한 욕심을 내기 시작하였다. 즉 소련의 해체는 미국에게 아주 큰 자신감을 확실하게 주게 되었고, 미국은 매우 무리한 요구(Bold 한 요구)를 하게 되었다.
(2) WTO 협정 내용과 FTA 협정과의 현격한 내용상의 차이
WTO는 ① 약소국이건 강대국이건 전 세계 ‘모든’ 나라가 ② 공산품뿐만 아니라 국가별로 차이가 많은 농산물을 포함하는‘모든’상품에 대해서 ③ 관세율은 무조건 7% 또는 이하로 낮추고 ④ 관세를 제외한 ‘모든’ 보이지 않는 다른 무역장벽까지도 모두 다 제거하며 ⑤ 상호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당사국 간에 협의에 의해서 처리하지만 ⑥ 일정 기간이 지나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대충 6개월) ⑦ WTO 사무국이 ‘일방적으로 정하고’, ⑧ 그 합의 결과는 양 당사국이 무조건 따라야만 하는 ‘강제 규정’을 두었다. 그러므로 과거에 ‘강요 조항’이 없는 FTA와 WTO는 전혀 다른 성격의 협정인 것이다.
근본적으로 FTA와 WTO는 판이하게 성격이 다른 협정이다.
그리고 또한 WTO는 관세장벽 이외에 우리가 국내시장 보호를 위해 사용하였던 수입 금지제도, 수입 쿼터제도, 내수시장 불개방 같은 정책도 한꺼번에 없애라는 협정이었다. 즉 이제 세계 모든 나라는 관세 7%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다른 보호 장벽 없이, 큰 나라든 작은 나라든 서로 알아서 힘껏 싸우라는 것이었다. 경쟁력이 우위에 있는 나라는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미국에 비해 상대적 비교열위에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에게는 그야말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것이 바로 WTO의 진실이었다.
이처럼 지금까지 무역체계를 송두리째 뒤엎는 정책이 WTO였는데 우리 정부(김영삼 정부)는 WTO가 ① 우리나라 GDP의 3% 정도에 불과한 쌀과 농수산물의 문제로 알았고, ② 우리나라는 순(純) 채권국이니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외쳤으며, ③ 단기채와 장기채의 비중이 어떻게 다른가에 대한 분석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1997년 정월 초, 산업은행 연찬회 강연에서 “WTO는 쌀과 농수산물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FTA를 훨씬 뛰어넘는 철저한 자유무역 협정이다. 우리가 대비하지 않으면 빚이 많은 수많은 기업들은 파산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 연말 종합주가지수는 400~500 정도(당시 약 880 정도였음)가 될 것이다. 빨리 대비책을 새워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나만 이런 얘기를 한 것이 아니다. 한국은행에서도 그리고 일부 공무원 세계에서도 나왔었다. 그러나 대세에 몰린 경제분석은 이런 주요 기관들의 주장도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1997년 말 『IMF 경제 위기』로 몰린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런 것을 조작한 미국에 대해 조금은 서운한 마음도 갖게 된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이런 중요한 협정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우리의 잘못인 것을...
하지만 여기에서 놀라운 반전이 있었다. 바로 우리 국민들의 ‘금 모으기’ 애국심과 기업들의 재빠른 대응 그리고 대통령(김대중 대통령)의 놀라운 방향 지시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역에 따라 또는 계층에 따라 너무 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에 대한 평가는 달라지리라고 본다.
나는 내가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우리나라는 국난이 있을 때마다 정말 신기할 정도로 영웅들이 나타났다. 강감찬 장군이 그랬고, 이순신 장군이 그랬으며, 이승만 대통령이 그랬고, 박정희 대통령이 그랬으며, 김대중 대통령이 그랬다. 국가가 풍전등화의 위기가 있을 때 어찌 그런 훌륭한 사람들이 꼭 나타나는지, 애국가의 가사처럼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다”. 우리 대한민국이 이 조그만 땅덩어리에서 반만년의 역사를 지켜온 것이 바로 이런 이유인듯하다.
IMF 위기를 당한 영국은 미국의 적극적인 도움이 있었음에도 경제위기를 탈출하는데 5년 반 이상이 걸렸지만, 우리나라는 미국이 방관(또는 조장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음)하였음에도, 3년 반 만에 위기를 극복하였고 오히려 더 강한 나라가 되었다.
국내 일부 인사들의 의견을 제외하고, 가장 객관적이라고 볼 수 있는 세계 3 대신용 평가기관 중 하나인 S&P의 우리나라 신용등급을 살펴보자.
S&P는 3대 신용평가기관 중에서도 가장 신뢰성이 높은 기관이다. 우리나라는 BBB-에서 A-로 김대중 대통령 재임 기간 중 무려 3단계나 상승하였다. A- 등급은 23개 S&P 등급 중 상위 7번째이며, ‘신용 상태 양호’ 등급이다. IMF 경제위기로 나락에 떨어졌던 나라가, 오히려 3년 반 만에 3단계나 뛰어올라 ‘신용상태 양호 등급’으로 상승한 것은 대통령과 기업 그리고 우리 모든 국민들의 피땀 어린 노력의 결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카드대란’이 김 대통령 임기 중에 있었다는 식의 의미 없는 폄하 발언은 이제 그만 두었으면 한다.
모두 다 우리의 대통령들이다. 역(逆)으로 김대중 대통령 때 IMF에 경제위기가 닥쳤고, 김영삼 대통령 때 IMF 위기가 끝났다면 두 김 대통령에 대한 세상의 평가가 지금과 같을까?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나는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영웅으로 인식되었으면 좋겠다.
미국은 전쟁에서 몇 명의 동료만 구해도 ‘영웅’이라고 하지 않는가? 영웅이 많은 나라가 좋을지 또는 지금까지의 영웅도 깎아내리는 것이 더 좋을지는 쉽게 판단이 가는 일이다. 나는 이승만 대통령도 맥아더 장군도 너무 훌륭한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경제 얘기로 다시 돌아오자. 현재 ‘우리나라 신용등급은 AA’로서 신용 상태 우수등급이며 일본보다 두 단계나 높고, 중국보다는 3단계나 높은 등급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등급은 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싱가포르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등급이다. 불란서와 같은 등급이고 영국보다는 한 단계 높은 등급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무역량은 세계 8위에서 7위로 2023년 상승할 것 같고, 우리나라 외환보유고는 약 4,300억 달러로 세계 8위 또는 9위 정도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외환보유고 36억불(350억이라는 말도 있다)에 비하면 정말로 엄청난 수치다.
우리나라가 ‘또다시 외환위기로 갈 수도 있다.’는 터무니 없는 주장을 하시는 분들은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그분들의 직업”이 아닌가하는 턱없는 생각까지 해본다.
그러면 2024년 우리 경제는 끝없는 ‘순풍의 길’을 달릴까?
4. 2024년 우리나라 경제와 변수(變數)
나는 경제를 전망하면서 주위 사람들의 주장에 휩쓸리지 않고, 가능한 객관적 입장과 판단을 취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아마 그래서 1997년도 정월달에 ‘1997년 말 IMF 경제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예측을 다른 많은 행운의 도움을 받아 하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나도 2024년 경제에 대해서는 우려하는 바가 크다. 일단 ① 국가 전체 경제는 2% 대의 성장을 무리 없이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② 산업간 그리고 ③ 기업 간에 부익부 빈익빈 현상(富益富 貧益貧) 즉 ‘양극화’가 더 심해지고, 이에 따라 ④ 서민들의 경제 또한 나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특히 ⑤ 『체감경기』는 더욱 나빠질 것이 거의 확실하다. 왜 그런가를 살펴보자.
(1) 시진핑의 과욕과 푸틴의 헛발질
이 글의 시작에서 나는 ‘국가 경제는 큰 바다에 떠 있는 배와 같다.’라는 말을 하였다. 이 말은 상당히 의도적인 표현이었다. 큰 바다는 어떤 때는 고요하지만 때로는 비바람이 몰아칠 수도 있고, 때로는 엄청난 힘의 해류가 흐를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아무리 큰 배일지라도 흔들릴 수밖에 없고, 큰 해류를 역행하기 위해서는 정말 엄청난 힘이 필요하다. 경제의 수장인 대통령과 기업가의 역할 그리고 우리 온 국민들의 단합된 힘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세계화(Globalization)의 의미를 우리는 다시 한번 새겨 볼 필요가 있다. 세계화는 말 그대로 “① 전 세계를 하나의 큰 시장으로 묶고 ② 가장 값싼 곳에서 물건을 만들어 ③ 세계 모든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도록 ④ 국가 간의 무역장벽을 없애고 ⑤ 전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묶자.”는 아이디어다.
세계가 평화로울 때, 즉 비바람도 크게 몰아치지 않고, 커다란 해류에 휩쓸리지도 않을 때는 더없이 좋은 경제환경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자원은 없지만, 국민들이 영리하고 부지런하며, 입으로 불만은 많지만 그래도 그 어느 나라보다 열심히 일하는 나라에게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그러나 뜬금없이, 정말로 뜬금없이 일을 저지르는 두 나라가 생겼다.
시진핑의 중국과 푸틴의 러시아다. 그래도 시진핑은 너무 오랫동안 ‘신(新) 실크로드다, 공동부유다, 그리고 수많은 도둑질과 체면 없는 행동’을 하였기 때문에 충분히 그들의 미래 행동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비책도 어느 정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너무 갑자기 의외의 행동을 한 사람은 푸틴이었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어느 면에서 보아도 합리적이지 않았다. 즉 1차세계대전 이전의 식민지 쟁탈 전쟁과 유사한 ‘땅 따먹기 침략전쟁, 즉 과거 제국주의적 침략’ 행위였다. 세계가 하나로 묶여있는 현대에서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침략행위였다.
전쟁을 일으킨 푸틴 스스로도 침략의 명분을 찾지 못해, 전쟁이라는 말을 붙이지 못하고, 『특수작전(Special Operation)』이라고 불렀다. 그의 말대로 3일이면 우크라이나를 이길 수 있다고 푸틴은 단순하게 생각하였고, 또 그렇게 될뻔도 하였다.
(2) 푸틴의 헛발질에 대한 민주 국가들의 다른 시각(視覺)
그러나 푸틴의 침략전쟁을 다른 서방 국가들은 단순한 땅따먹기 전쟁으로 보지 않았다. 그것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제국주의의 부활』로 본 것이다. 그래서 서방 국가들은 처음의 미온적인 자세에서, 갑자기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전쟁은 과거 2차세계대전과 비슷한 양상이 되었다. 다만 독일이 러시아로 바뀌었고, 다른 추축국의 도움이 없이 러시아는 홀로 자유세계 연합국과 싸우는 꼴이 되었다. 즉 중국의 이기적인 지원 이외에는 고립무원으로 싸워야 하는 러시아의 『나 홀로 전쟁』이 된 것이다. 만약 지금도 미국을 포함한 서방 지원이 없다면 우크라이나전쟁이 어떤 모습이 될지는 알 수 없다. 특히 단기적 이익을 추구하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서방의 지원이 지속되는 한 러시아가 전쟁에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3) 전쟁 종식 후 예상되는 러시아의 모습
- 이번 전쟁으로 대부분의 전쟁 무기를 소비한 러시아는 중국이 얕잡아 보는 대상이 되어, 중러 간에 많은 국경분쟁이 일어날 것이다. 특히 동부 시베리아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 푸틴의 미래는 알 수 없다. 러시아에는 “전쟁에 진 짜르는 국민이 용서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푸틴의 역량으로 볼 때 알 수 없는 일이다.
- 소련과 중국의 국제적 위상은 과거에 비해 현격히 낮아질 것이다. 어찌 되면 UN 상임이사국의 위치에도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 이번 전쟁으로 너무 많은 젊은이를 잃어버린 러시아는 전후 국가 회복 시에 심각한 인력난을 겪을 것이다. 그리고 중국은 이틈을 타 다수의 이민을 보낼지도 모른다. 이것은 장기적으로 러시아에 매우 큰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차기 러시아 지도자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향방이 크게 결정될 것이다.
- 자세히 더 설명하겠지만 푸틴의 지속성 여부와는『무관』하게, 러시아의 전후 복구사업에 우리나라 기업들은 매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 또한 방산, 자원개발, 생필품, 가전제품의 수출 등으로 러시아와 우리나라 모두에게 매우 좋은 발전의 동력원이 될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세계의 2분화(二分化, Bi-polarization)는 우리 경제는 물론 전 세계 경제에 당분간 큰 부담이 될 것이다.
5. 2분화의 정확한 의미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
(1) 세계화의 퇴조와 세계의 2분화(Bi-polarization)
시진핑과 푸틴의 억지스런 행동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세계 국가들에게 엄청난 두 가지 경종을 울렸다.
하나는 ① 공산주의는 절대로 공산주의이지 민주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 다른 하나는 ② 유사시를 대비해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만 구성된 하나의 수요공급망』을 갖추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 세계화로 인해 하나로 묶여있던 지구촌을 다시 자유주의 세계와 공산주의 세계로 나누는 『세계 2분화(Bipolarization)』의 본질인 것이다.
즉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2분화의 궁극적 목적은『자유민주주의 국가로만 구성된‘하나의 완성’된 수요공급망』을 갖추자는 것이다. 그래서 첫 번째로 구성된 것이 영국과 미국, 호주로 구성된 AUKUS 군사동맹이었고, 다음이 미국과 인도, 일본, 호주로 구성된 QUAD였으며, 극히 최근에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판 NATO 결성 노력이 현재 논의되고 있는 중이다.
다시 한번 요약하면 이 모든 협정들의 최종 목적은 첫째, 중국과 러시아를 봉쇄하고, 둘째, 자유주의 국가로만 구성된 단일 수요공급망을 갖추는 것이다.
최근 미국이 보인 이해할 수 없게 불공정한 ① 인플레 감축법안(IRA)과 ② 우리나라와 대만에게 반도체 설비와 고성능 배터리 제조처를 미국으로 옮기라는 요구, 그리고 미국이 형편없는 조선 실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③ 미국의 군함은 미국인이 소유하는 기업이 미국 내에서 건조해야 한다는 ‘죤스 법안’들이 모두 이런 맥락에서 만들어진 법들이다.
우리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IRA와 죤스법이 만들어진 배경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래야 만이 우리가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대비책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도 이 법안을 대통령선거 이후에는 좀더 완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어떻게 표현하면 지금의 사태는 과거 1997년 WTO 경제체제만큼의 충격은 아니지만, 정치, 군사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6. 2분화가 우리나라 정치, 경제에 미치는 영향
(1) 정치와 국방에 미치는 영향
지금 세계 2분화가 정치와 국방(군사)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분명하다. 미국이 주도하였지만 지금 세계 2분화 작업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자유주의 세계가 ‘함께’ 움직이는 변화다. 여기에서는 빠질 수도 없고, 빠져서도 안 된다. 잘못하다가는 혹독한 값을 치를 수도 있다.
많은 일부 사람들이 ‘멋진 말’을 쓰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① 정치와 국방은 미국에게, 경제는 중국과... 또는 ② 미·중 갈등의 중간자적 위치에서 조정 역할 등등. 정말 빛 좋은 미사여구다.
옛일 두 가지를 소개하며, 이런 주장이 얼마나 낭만적인 이야기인가를 쉽게 설명해 보겠다. 하나는 ① 1985년 플라자 합의이고, 다른 하나는 ②중국의 화웨이다.
(2) 일본과 플라자 합의
1980년대 일본의 제조업은 전 세계를 강타하였고, 특히 미국에 대한 자동차, 전자제품의 수출은 미국의 기간산업인 자동차 산업과 제조업을 너무 힘들게 만들었다. 물론 이것은 일본 제조업의 경쟁력 때문이었다. 그리고 미국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런 위기를 극복하려면 그들도 밤잠 안 자고 노력하여 일본을 이길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미국인들에게 그런 요구를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미국은 매우 조용하고, 그러나 매우 확실한 방법으로 해결하였다. 1985년 미국은 독일과 일본의 재무장관을 조용히 뉴욕의 플라자 호텔로 불러 일본과 독일의 환율을 올리라고 요구하였다. 국방을 미국에 의존하는 두 나라는 그런 미국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고, 그 결과 일본 엔화의 가치는 폭등하게 되었다. 1985년에 엔 달러 환율은 200엔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었다. 하지만 1995년 엔 달러 환율은 평균 79엔까지 떨어졌다. 200을 80으로 나누면 2.5가 나온다.
쉽게 우리나라 원 달러 환율에 이 계산식을 적용해 보자. 1400원을 2.5로 나누면 560원이 된다. 우리나라 달러환율이 560원이 되었을 때 우리나라 수출품 중에서 미국으로 또는 다른 나라로 수출할 수 있는 상품이 얼마나 있을까?
1980년대까지 일본 경제를 떠받치던 일본 제조업은 플라자합의로 인한 엔고로 너무 큰 고통을 겪었다. 1980년대까지 세계에서 경쟁자가 없었던 일본의 전자산업과 조선업도 거의 몰락했고, 자동차 산업도 도요타, 혼다를 제외하면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일본의 『잃어버린 40년』이 여기서 시작된 것이다.
(3) 중국 화웨이와 기술 수출 금지
한때 중국은 지금도 꿈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자국의 GDP가 미국에 이어 G2가 되자, 미국과 함께 세계 패권을 나누려는 욕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자국의 전자산업과 반도체 산업이 곧 미국을 능가할 것이고, 중국의 반도체 칩을 장착한 중국 무기는 미국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자랑하였다.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다.” 미국은 몇 번의 경고를 하였다. 그러나 중화주의와 국뽕에 빠진 중국은 그 말을 귀담아 들을 리가 없었다. 그러자 미국은 조용히 처리했다. 네델란드의 ASML에게 미국 기술이 들어간 노광장비를 중국에 팔지 못하게 하였다. 그 기고만장하던 중국의 화웨이는 순식간에 쇄락하였다.
그러나 최근 화웨이가 7나노를 생산하였다는 놀라운 소식이 있었다.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그러나 실상은 그것이 아니었다. 현재의 ASML 장비라면 7번이면 충분한 식각을, 과거 25나노 장비로 30여 번 깎아 7나노를 만든 것이다. 당연히 원가는 올라가고 수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도체 수율은 90% 이상이 되어야 경제적 생산을 할 수 있다. 그런데 화웨이의 수율은 실험적 수준에 불과한 30%였다. 그러면 그 엄청난 손실은 어떻게 처리했을까? 역시 중국답게 처리하였다. 모든 손실을 국가가 부담해 주었다.
우리나라의 무역의존도(해외의존도)는 60%~80%다. 미국의 어떤 조치로 우리나라 수출 전선에 이상이 생기면, 그 순간에 바로 받는 충격은 일본이 당한 충격과는 강도에서 사뭇 큰 차이가 날 것이다.
‘멋진 말’을 하는 것은 매우 좋다. ① 정치와 국방은 미국에게, 경제는 중국과 ② 미·중 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중간자적 역할 등등. 얼마나 국뽕 스럽고 멋진 말인가? 그러나 실상을 알고 말하기로 하자.
(4) 러시아와 중국이 향후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
소련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는 약한 나라지만 ① 과학이 매우 발달한 나라이고, 특히 ② 첨단 무기나 기술 분야에서는 매우 앞선 나라이며 ③ 넓은 국토에 너무 많은 천연자원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그리고 ④ 『푸틴의 유무와는 관계 없이』 그들은 우리가 필요하고, 우리도 그들이 필요하다. ⑤ 우리에게 그들은 중국을 대신할 수 있는 천연자원과 희토류의 공급원이 될 수 있고 ⑥ 우리는 그들에게 전후 복구사업에 아주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 ⑦ 그 결과 우리는 과거 중동과 같은 특수를 얻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⑧ 우리를 대신하여 빠르고 저렴하게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나라는 우리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중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① 훨씬 약한 나라이고 ② 우리나라 땅을 적극적으로 탐하는 나라이며 ③ 세계의 2분화로 기술력 등 모든 면에서 앞으로의 발전이 극히 제한된 나라다. 그리고 ④ 수출시장으로서의 가치도 점점 줄어드는 나라다. 그 이유는 그들은 우리나라와 같은 발전 전략을 가진 나라로서 ⑤ 자국이 같은 상품을 만들면 우리나라 상품 수출은 그다음 날로 어떤 이유에서든지 막는 나라이며 ⑥ 그들이 우리나라에서 수입하는 상품(반도체, 기계류 등)은 그들이 수입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수입하는 것이다. 즉 한중관계는 수출입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⑦ 이것은 마치 우리나라와 일본과의 관계와 비슷하다. 한일관계가 아무리 나빠도 한일 무역은 착실하게 이루어지는 것처럼 한중 무역도 동일하다는 뜻이다.
7. 2024년 우리 경제와 특히 서민경제에 대한 전망
(1) 경제 성장률과 이자율
세계의 많은 경제 전문 기관들이 우리나라 2024년 경제발전 정도를 대충 1.9%에서 2.2%로 잡는 것 같다. 우리의 욕심에는 차지 않는 수치다. 하지만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다. 자유주의 세계에서 미국과 신흥국인 인도를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수치다.
이자율도 대부분의 국가에서 상향 최고치를 찍고 2024년 하반기부터는 하향 곡선을 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이자율도 현행 보다는 1%P 정도 하향할 것으로 많은 전문가가 예상하는 것 같다.
(2) 세계 2분화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
가.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현상의 강화
우리나라 2024년 지수경기 (정부가 숫자로 발표하는 경기)는 내년에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국내외 많은 기관들이 1.9%~2.2%를 예상하고 있고, 나 또한 2%대의 성장은 큰 무리 없이 가능하리라고 본다. 그러나 내년도부터 앞으로 3, 4년의 우리 경제는 이런 관점에서만 경제를 보아서는 안 된다.
과거에는 나라 경제가 좋아지면 대부분의 기업들과 국민들의 호주머니도 비교적 다 같이 두둑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내년 경기는 어떨까?”에 대해 큰 관심을 가졌다. 미래에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미래에는 『새로운』 트랜드가 더욱 강해지리라고 본다. 그것은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현상, 즉 양극화 현상이 더욱 강하게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2024년부터 앞으로 3, 4년간은 더욱 이런 현상이 강화되리라고 본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때문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논의한 ① 세계의 2분화 현상과 ② 상품의 복잡성 증가 때문이다. 나는 이 두 가지 요인이 미래 우리 경제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는데, 안타깝게도 이런 지적을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듯하다.
나. 세계 경제‘2분화 현상’의 세 가지 경제적 의미
세계 경제의‘2분화 현상’은 세계 경제가 다시 자유진영 시장과 공산진영 시장 두 개로 나뉘어 지는 것을 뜻한다. 이 말을 좀 더 쉬운 말로 바꾼다면 ① 상품 ‘판매’시장이 2분화되고, ②‘자원’공급 시장도 2원화된다는 뜻이며, 이처럼 분리된 시장을 지키기 위해 ③ 방위산업의 중요성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증가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세 가지를 조합하면 미래에 어떤 시장과 어떤 기업이 이로울 수 있는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간단히 얘기하면 공산진영 시장과 독재진영 시장을 주 수출 대상으로 (예; 중국, 이란, 소련 등) 하는 기업과 그들로부터 자원을 수입하는 기업들은 앞으로 상당기간 동안 기업 운영이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기업들에게는 대체 시장의 개발 또는 대체 수입원의 개발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어려움은 한두 해로 끝나지 않고,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런 기업들에게는 자금조달과 자금상환이 매우 어려울 가능성이 있다.
다. 방위산업의 중요성 증가
시장 2분화의 또 다른 뜻은 이런 2분화된 시장을 지키는 국방의 중요성이 ‘크게 증가’한다는 것을 뜻한다. 즉 세계화의 진행은 국가 간의 경계를 느슨하게 만들고, 자유로운 무역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국방의 중요성은 미국과 중국 그리고 남북한을 제외하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탐욕은 다시금 제국주의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만들었다. 이런 제국주의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국방의 중요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즉 군사력의 증가와 새로운 무기의 개발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각국의 국방비는 증가할 것이며, 새로운 무기의 개발과 구입에 많은 돈이 투자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기술과 무기를 개발하는 기업들은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릴 가능성이 높다.
현재 우리나라는 얼마 전까지 세계 9위 방산 수출국이었다. 그러나 빠른 시간 내에 4, 5위로 올라갈 것으로 생각한다. 군비수출 부동의 1위는 역시 미국이다. 그러나 2위인 소련은 그 지위를 지키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번 우크라이나전쟁에서 그들 무기의 민낯이 너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무기는 좋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면 좋았다(과거형). 그러나 지금도 그렇게 좋은지는 모르겠다. 『플라자 합의』 이후 독일경제의 어려움과 세계화는 독일의 신무기 개발에 정체성을 가져왔다. 그 결과 독일의 대표적인 전차인 레오파르트 전차 생산을 자기 나라가 아닌 그리스로 이전하였다. 비유적으로 설명하면, 우리나라 K2 흑표전차를 우리나라에서 만들지 않고, 대만에 의뢰해서 생산하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품질관리와 생산 일정을 어떻게 맞출 수 있겠는가? 그래서 가격도 우리나라 동급 무기보다 두세 배 비싸다. 그래도 독일은 NATO 회원국이고, 오랫동안 군사 분야에서 위명을 떨쳤기 때문에 상당 기간 그 위치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불란서는 유럽에서는 유일하게 육해공 모든 무기(전차, 잠수함, 비행기)를 만드는 나라다. 그리고 성능도 웬만하다. 그러므로 불란서의 무기 수출은 어느 정도 지속되리라고 본다.
다음은 중국이다. 중국의 무기는 쉽게 말해 무기라고 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뻥 스팩이 너무 심하다. 300~400km 거리 에이사 레이다는 겨우 100km 기껏해야 150km밖에 탐지하지 못한다는 설이 있다. J-20 스텔스비행기는 비가 오는 날에는 스텔스 도료가 벗겨져서 비행하지 못하고, 스텔스비행기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카나드 보조익을 달고 있다. 아마추어가 보아도 그것은 스텔스 기능을 심하게 떨어뜨리는 기체 형태다. 소련제 복제 엔진은 힘이 약하고, 비행기 무게는 무거워서 완전 무장을 하고는 항공모함에 이착륙이 불가능하다는 말도 있다.
그리고 그들의 잠수함과 함정의 수출은 태국이나 파키스탄, 아프리카 등과 같은 저개발국에 집중되어 있고, 무엇보다 뇌물을 수반한 수출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제 이런 나라들도 중국제 무기에 대한 성능에 참을 수 없어, 중국제 무기는 이제 더 이상 인수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나라도 있다.
국가 크기가 적은 스웨덴 같은 나라는 자국 내 수요가 없어, 수출만으로 개발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신형 무기를 만들기 어렵다.
결국 우리나라는 가까운 장래에 미국, 독일, 불란서 다음의 방산 수출국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라. 상품 복잡성의 증가
나는 이런 상품 제조의 복잡성 증가가 미래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현상, 즉 양극화 현상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은 내가 과문해서인지 나 이외에는 별로 없는듯하다. 이 문제에 대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상품의 복잡성』은 그리 복잡한 개념이 아니다. 매우 단순한 개념이다. 즉 “상품을 만드는데 여러 기술이 필요하고, 경쟁력 있는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절한 기술 간의 밀접한 조화가 매우 긴요하다.”는 뜻이다.
쉽게 생각하자. 자동차는 기계장치인가 전자장치인가? 과거라면 당연히 기계장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자동차 원가의 40%가 전자장치 값이다. 그러나 하이브리드가 되면 그것은 60% 이상이 되고, 전기자동차가 되면 80% 이상이 전자장비 값이라고 한다. 그러면 자동차는 기계장치인가? 아니면 전자장치인가? 움직이는 전자장치라는 말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냉장고도 마찬가지다. 옛날에는 기계장치였다. 그러나 지금은 인공지능이 탑재되고, 자동온도조절장치, 주인 얼굴 인식 장치, 휴대전화와 연결된 원거리 조정 스위치까지 첨가되었다. 이제는 기계장치인지 전자장치인지 구분이 쉽지 않다.
상품 복잡성의 증가는 바로 이런 것을 뜻한다.
그러면 상품 복잡성의 증가가 왜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현상을 가속화시킬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상품의 복잡성을 경쟁력 있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① 엄청난 연구개발 능력이 필요하고 ② 그런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대량으로 그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소비처가 필요하다. 즉 전체 시장을 이런 능력을 갖춘 몇 개의 기업이 『자연스럽게 독점』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몇개 기업의 자연스런 독점을 다르게 설명하면, 시장에 남는 기업의 수가 점점 더 줄어든다는 뜻이고, 또 다음 단계를 설명하면 직장의 수도 점점 줄어든다는 뜻이다. 거기에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이 더 많이 동원되어 제조업에 참여하면 직장의 수는 더욱 감소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현상이 곧바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멀지 않은 장래의 일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면 서민경제는 어떻게 될까?
나는 이런 관점에서 2024년의 우리나라 경제는 지수경기와 국가경제는 충분히 성장하겠지만, 서민경제 특히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상당히 나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8. 다른 의미에서 정부 역할 변화의 중요성
자본주의가 발달하게 되면 정부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기업들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더 커지게 된다. 이런 경제체제에서 정부는 기업들이 감당할 수 없는 거대투자나 위험이 높은 투자분야에 노력을 집중하여야 한다. 또는 기업의 이윤 추구 활동에서 제외되는 빈곤층의 문제 또는 사회보장 분야 등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미래에는 어쩔 수 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현상 즉 양극화 현상을 해결하는데 정부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것은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존속의 문제와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미래는 기업 간 그리고 개인 간의 소득 불균형으로 세수를 증가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지금도 세수 부족으로 정부는 필요한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가 2분화되고, 국방의 중요성이 더없이 중요한 시점에서 쓸데없이 사병들의 월급을 증액(일부 국회의원)하거나, 모병제 실시(지OO씨) 등으로 국방비를 낭비하여서는 절대 안 된다.
요즘 현수막에서 자주 보이는 야당과 여당 국회의원들의 경쟁하는 식 『퍼주기 공약』도 철저하게 자제시켜야 한다. 현수막의 내용을 보면, 오히려 과거에 그렇게 ‘퍼주기’라고 비난하였던 ‘국민OO’당이 더 많은 퍼주기를 공약하는 것 같다. 정말 조심할 일이다. 자기 돈이 아니라고 세금을 함부로 쓰는 공약을 내거는 사람에게 국민들도 절대 표를 주어서는 안 된다.
세금은 우리 돈이다. 내가 낸 돈이다. 『퍼주기 공약』을 내거는 사람들도 반드시 자제하여야 한다. 그것은 세금의 낭비가 아니라 국가의 장래를 좀먹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항상 일정하다.“깨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 혼란스러운 세계 환경 속에서 우리 대한민국이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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