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불체포 특권은 세계에서 한국 국회의원들만 누리고있는 초특권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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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의 특권이 많다는 비판은 주로 진보/개혁성향의 교수와 언론인으로부터 제기돼 왔다. 그 중 불체포 특권은 헌법에 규정돼 있기 때문에 헌법 개정으로 폐지하기 전까지는 각 정당이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선거 때만 되면 각 정당은 쇄신 공약으로 불체포 특권 포기를 내세웠다.
그런데, 근래에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진보라는 교수와 언론인이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은 영미에도 있다면서 그것이 정당하다는 식으로 학설을 바꾼 것이다. 오늘자 한겨레 신문에 실린 성한용 칼럼 ‘국회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도 그런 논조다. 교수나 언론인이 학설이나 지론을 바꿀 수는 있으니까 그 자체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사실을 왜곡해서 논리를 폈다면 그것은 궤변이기 때문에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겨레 사내 칼럼은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이 여러 선진국 헌법에 채택되어 있다면서 이렇게 썼다. “영국에서 1603년 의회 특권법(Privilege of Parliament Act)으로 명문화한 이후 여러 선진국 헌법이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이 주장은 거짓말이다. 이재명 체포 동의안 처리를 앞두고 역사를 왜곡해서 궤변을 편 것이다. 영국은 성문헌법을 갖고 있지 않다. 영국에서 의회주의가 서서히 확립함에 따라 의회는 국왕이 의원을 체포하는데 대해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1320년에 의회의 요구에 의해 국왕이 의원을 석방해서 의회 회의에 참석하도록 한 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1400년대 들어서 이런 특권은 반역, 중죄, 그리고 평화파괴(treason, felony, and breach of the peace)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1675년, 영국 의회는 의원의 특권은 반역, 중죄, 평화방해에도 적용되지 않는다는 결의를 통과시켰다. 성문헌법이 없는 영국에선 이런 결의가 곧 법률이다. 결국 반역, 중죄, 경죄에 대해선 특권이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따라서 의원의 특권은 민사 체포(civil arrest)를 당하지 않는 데 국한될 뿐이다. 당시는 채무를 갚지 않으면 고소에 의해 구속되던 민사 체포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의원은 민사 체포를 당하지 않는 특권을 누렸던 것이다. 의원은 회기 중에 민사소송을 당하지 않는다는 관행이 있었으나 이 역시 1770년 법률로 폐지됐다. 19세기 들어서 민사 체포라는 제도가 사라짐에 따라 영국의 의원은 회기 중 발언에 관한 면책 이외에 어떠한 불체포 특권을 갖고 있지 않다.
https://erskinemay.parliament.uk/section/4574/freedom-from-arrest/#footnote-item-22
18세기 말에 제정된 미국 헌법은 Art. I, Sec. 6에 “상원의원과 하원의원은 회기 중과 회기 참석 중, 그리고 회기 참석차 오거나 끝나고 가는 중에 반역, 중죄, 평화파괴를 제외하고는 체포를 당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The Senators and Representatives shall receive a Compensation for their Services, to be ascertained by Law, and paid out of the Treasury of the United States. They shall in all Cases, except Treason, Felony and Breach of the Peace, be privileged from Arrest during their Attendance at the Session of their respective Houses, and in going to and returning from the same; and for any Speech or Debate in either House, they shall not be questioned in any other Place.”) 회기 참석차 오고 가는 중에도 체포당하지 않는다는 규정은 당시는 의원들이 자기 주(州)에서 워싱턴까지 마차를 타고 여러 날, 심지어 한 달 걸려서 와야 했기 때문이었다.
반역, 중죄, 평화파괴를 제외한 범죄는 도무지 존재하지 않는데, 이런 조항이 들어간 것은 당시 영국법을 따랐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미국도 채무 불이행으로 고소하면 구속이 되는 제도(civil arrest)가 있었기 때문에 의원은 민사 체포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19세기 들어서 민사 체포 제도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에 이 헌법 조항은 의미를 상실했다.
의원이 회기 중에 민사법원이 발부한 소환장을 무시하고 법원 출석을 거부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있는데, 1966년 뉴욕 주법원은 애담 클레이턴 파월 하원의원은 특권을 주장할 수 없다면서 30일 감방 유치를 선고한 바 있다. 애담 클레이턴 파월은 할렘 출신의 흑인 의원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많아서 하원은 그를 징계 제명했는데, 그 절차가 잘못됐다는 대법원 판결이 있다. 따라서 영국과 미국의 의원은 불체포 특권이 없다. 대부분 선진국에서도 제도적으로 또는 사실상 그런 특권은 없다고 보면 된다. 사실을 왜곡해서 이렇게 구차한 논리까지 펴야 하는 속사정이 측은하다.
- 사진 (1) : Corwin 교수의 학부 헌법 교재에 나온 설명.
- 사진 (2) : Edward S. Corwin 교수의 이 책은 고전에 속한다. 서울대 대학원 시절에 공부했던 책이다. 50년 만에 꺼내 보았다. 로스쿨에선 이런 주제를 다루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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