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국 교수의 생활과 경제이야기 <67> 행복이란?(Ⅰ)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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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가장 많이 알고 싶은 것 중 하나는 “행복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일 것이다. 나는 오늘 아침 무려 세 명으로부터 “행복”에 관한 글을 받았다. 세 명 모두 같은 글이 아닌 다른 분들의 글에서 행복에 관한 글을 받은 것이다. 평소에도 가끔 여러 글을 받아 보지만 이처럼 같은 날 ‘다른’ 세 명으로부터 ‘같은’ 글을 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도 생각해 보았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특히 나에게 있어 행복이란 무엇일까?” 친구들이 보낸 글들을 먼저 소개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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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법정’ 스님의 글이다.
“나는 그냥 나, 그냥 나 자신이면 됩니다.
누구보다 더 잘 나고 싶고,
누구보다 더 아름답고 싶고,
누구보다 더 잘 살고 싶고,
누구보다 더 행복하고 싶은 마음들...
우리 마음은 끊임없이 상대를 세워 놓고 상대와 비교하며 살아갑니다.
비교 우위를
마치 성공인 양,
행복인 양,
비교 열등을 마치 실패인 양,
불행인 양 그러고 살아가지만,
비교 속에서 행복해지려는 마음은,
그런 상대적 행복은 참된 행복이라 할 수 없어요.
무언가 내 밖에 다른 대상이 있어야만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 혼자서 행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저 나 자신만을 가지고 충분히 평화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나 혼자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은
상대적 행복이 아닌 절대적 행복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 없어도,
누구보다 잘 나지 않아도,
그런 내 밖의 ‘비교 대상’을 세우지 않고,
내 마음의 평화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합니다.
나는 그냥 나, 나 자신이면 됩니다.
누구를 닮을 필요도 없고,
누구와 같이 되려고 애쓸 것도 없으며,
누구처럼 되지 못했다고 부러워할 것도 없습니다.
우린 누구나
지금 이 모습 이대로의
나 자신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당신은 좋은 일만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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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헤밍웨이’의 행복에 대한 글입니다.
행복을 가꾸는 것은 ‘자기 손이 닿는 데에 꽃밭을 만드는 것’입니다.
행복은 거창한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옆에 있는,
바로 앞에 있는,
거의 매일 안부를 보내오는 친구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친구는 다음과 같은 ‘헤밍웨이(Hemingway)의 법칙’을 소개하였습니다.
어느 대학의 심리학 시간이었다.
교수(敎授)는 학생들에게 풍선에 자기 이름을 써넣고 바람을 빵빵하게 채워 모두 천장으로 날려 보내라고 했다.
한참 지난 다음 교수는 자기 이름이든 풍선을 찾아보라고 했다.
정해진 시간은 5분 이었다.
학생들은 자신의 풍선을 찾으려고 부딪치고 밀치다가 교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5분이 흘렀지만 자신의 이름이 들어있는 풍선을 단 한 사람도 찾지 못했다.
교수는 이번에는 아무 풍선이나 잡아 거기 넣어둔 이름을 보고, 그 주인을 찾아주도록 하였다. 순식간에 모두 다 자기의 이름이 들어있는 풍선을 하나씩 받아 가질 수가 있었다.
교수가 학생들에게 말했다.
"지금 시험한 풍선 찾기는 우리 삶과 똑같습니다.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행복을 찾아다니지만 행복이 어디 있는지,
장님과 같이 헤매고만 있습니다."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과『함께』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풍선을 찾아주듯 그들에게 행복을 나누어주세요.
그러면 여러분도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를 헤밍웨이의 법칙이라 합니다.
헤밍웨이는 행복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습니다.
행복을 가꾸는 것은 ‘자기 손이 닿는 데에 꽃밭을 만드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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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중국 격언의 소개였다.
각자무치(角者無齒)
뿔이 있는 소는
날카로운 이빨이 없고,
이빨이 날카로운 호랑이는
뿔이 없으며,
날개 달린 새는
다리가 두 개 뿐이고,
날 수 없는 고양이는
다리가 4개다.
예쁘고 아름다운 꽃은
열매가 변변찮고,
열매가 귀한 것은
꽃이 별로다.
세상은 공평하다.
장점이 있으면 반드시 단점이 있다.
때로는 단점이 장점이 되고,
장점이 단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세상사다.
불평하면 자신만 손해 볼 뿐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진정으로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것은 ‘감사’라는 삶의 태도에 있다.
행복은 대부분 감사하는 나의 마음과 자세로 부터 오는 것이지,
외적인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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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따라서 행복은 여러 가지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우월감, 성취감, 무언가를 이루었을 때의 승리감, 남과 비교하여 더 많이 가졌을 때 또는 더 많이 이루었을 때의 만족감 등등
그러나 전기한 세 가지 이야기의 핵심은 『남과 나를 비교』하는데서 느껴지는 만족감이나 우월감은 행복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성장속도가 조금 느린 편이어서 중고등학교 생활기록부조사 때 조금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두 가지 항목에 대한 답변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기억이다. 하나는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인가?’였고, 다른 하나는 ‘취미란’이었다. 한참 고민하였지만 존경하는 사람이 떠오르지 않아 존경하는 사람 칸에는 ‘아버지’라고 적었고, 취미란에는 ‘독서’라고 썼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이 칸에는 어떻게 써야할까를 가끔 생각했었다. 지금 다시 이런 질문을 내가 받는다면 존경하는 분 칸에는 주저 없이 『다산 정약용 선생님』이라고 쓰고, 취미란에는 『호기심』이라고 쓸 것 같다. 존경하는 분란에 한분을 더 쓴다면 『안중근 장군』이라고 쓸 것 같다. 여기서 내가 『안중근 의사』라고 쓰지 않고 장군이라고 쓴 이유가 있다. 안중근 장군께서는 ‘의사’라는 칭호보다는 ‘장군’이라는 칭호를 더 좋아하셨다고 한다.
여순 감옥에서 마지막 사형집행을 당하셨을 때 교수형을 취하려고 하자, 안 장군께서는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독립군의 장군이다. 군인답게 총살형을 받게 해 달라.”하셔서 총살형으로 생을
어떻든 다산 선생님은 『목민심서』에서 늙음의 편안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이가 들면서 눈이 침침한 것은
필요 없는 작은 것은 보지 말고 필요한 큰 것만 보라는 것이며,
귀가 잘 안 들리는 것은
필요 없는 작은 말은 듣지 말고, 필요한 큰 말만 들으라는 것이며,
이가 시린 것은
연한 음식만 먹고 소화 불량 없게 하려 함이고,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것은
매사에 조심하고 멀리 가지 말라는 것이다.
머리가 하얗게 되는 것은
멀리 있어도 나이든 사람인 것을 알아보게 하기 위한 조물주의 배려요,
정신이 깜박거리는 것은
살아온 세월을 다 기억하지 말라는 것이니,
좋은 기억, 아름다운 추억만 간직할 터이고,
바람처럼 다가오는 시간을 선물처럼 받아들여
가끔 힘들면 한숨 쉬고, 하늘을 한번 쳐다보아라.
멈추면 보이는 것이 참으로 많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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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 눈이 어둡고, 귀가 잘 들리지 않으며, 눈이 가물가물해지고, 기억력이 떨어지는 고통을 어찌 이처럼 여유롭고,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 그저 존경스러울 뿐이다.
나도 60이 조금 넘었을 때 손에 까만 반점을 발견하고, 너무 마음속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가는 청사 동아줄로 잡아매고, 오는 백발 도끼로 막았지만, 어느 사이 귀밑에 앉아있는 백발 어이할까, 어이할까?” 고민하는 우리 선조들의 옛 사설시조가 정말 마음에 와 닿았었다. 한참 동안 그 충격을 가라 않지는 데 시간이 걸렸었다.
지금이야 성형수술과 임플란트 등이 있지만, 의학이 발달하지 못한 옛 시절, 특히 천주교 박해로 18년 동안이나 억울한 귀양살이를 한 다산 선생님께서 ‘눈이 어둡고, 귀가 잘 들리지 않으며, 이빨이 성하지 못한 것’은 정말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나이 들어 기쁜 것』이라고 하셨으니 요새 유행인 말로 정말 ‘넘사벽’의 경지다.
또한 다산 선생님은 “늙어서 좋은 것 여섯 가지(老人一快事)”를 시로 남기셨는데 그 중 세수(首)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세 번째 시(詩)는 다음과 같다.
老人一快事 / 늙은이의 한 가지 유쾌한 일은
眼昏亦一快 / 눈 어두운 것 또한 그것이라.
不復訟禮疏 / 다시는 예경 주소 따질 것 없고,
不得硏易卦 / 다시는 주역의 괘사를 연구할 것도 없으며
平生文字累 / 평생 동안 문자에 대한 거리낌을
一朝能脫灑 / 하루아침에 깨끗이 벗을 수 있네
...
嗟哉望經注 / 슬프다, 경문의 주석을 엿보건대
後人依樣畫 / 후인들은 옛사람들의 본만 따라서
唯知駁宋理 / 송나라 이학 반박할 줄만 알고
不恥承漢註 / 한대의 오류 답습하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네!
如今霧中花 / 이젠 안개 속의 꽃처럼 눈이 흐리니
無煩雙決眥 / 눈초리를 번거롭게 할 것도 없고
是非旣兩忘 / 옳고 그름도 이미 다 잊었는지라
辨難隨亦懈 / 변난하는 일 또한 게을러졌으나
湖光與山色 / 강호의 풍광과 청산의 빛만으로도
亦足充眼界 / 안계를 채우기에 또한 충분하다오.
네 번째 시(詩)는 다음과 같다. 다산 선생님의 허허로움이 더 크게 가슴에 와 닿는다.
老人一快事 / 늙은이의 한 가지 유쾌한 일은
耳聾又次之 / 귀먹은 것이 또 그 다음이로세
世聲無好音 / 세상 소리는 좋은 소리가 없고,
大都皆是非 / 모두가 다 시비 다툼뿐이니,
浮讚騰雲霄 / 헛 칭찬은 하늘까지 띄워 올라가고,
虛誣落汚池 / 헛 무고는 (사람을) 구렁텅이로 떨어뜨리며
禮樂久已荒 / 예악은 황무한지 이미 오래이어라
儇薄嗟群兒 / 아, 약하고 경박한 뭇 아이들이여
譻譻螘侵蛟 / 개미가 떼 지어 교룡을 침범하고
喞喞鼷穿獅 / 생쥐가 사자를 밟아 뭉개도다.
不待纊塞耳 / 그러나 귀막이 솜을 달지 않고도
霹靂聲漸微 / 천둥 소리 조차 점점 가늘게 들리고,
自餘皆寂寞 / 그 나머지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으니,
黃落知風吹 / 낙엽을 보고야 바람이 부는 줄 안다.
蠅鳴與蚓叫 / 파리가 윙윙대거나 지렁이가 울어대며
亂動誰復知 / 난동을 부린들 누가 다시 알리오.
...
정말 기막힌 말씀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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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 시(詩)는 다음과 같다. 큰 공부를 하시고, 세상을 나름대로 정리하신 분들만이 할 수 있는 자신감 있는 말씀이다. 나는 이 다섯번째 시를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다산 선생님께서 정말 최후에 하고 싶은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이 들어 이제는 젊은 시절처럼 이렇게 저렇게 남에 대한 생각과 비평 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때가 되었다. 흥이 나면 이리저리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그것을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쓰겠다. 그리고 이것저것 쓸 대 없는 일을 생각하며 하는 수정작업(퇴고)도 많이 하지 않겠다.
더욱이 나는 조선 사람이다. 먼데 중국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이 어떻단 말인가? 시격(詩格)이나, 시율(詩律)? 그런 것이 무어란 말인가? 나는 이제 그런 것에 매달리고 싶지도 않고, 매달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를 오랑캐라고 비웃는 사람들이 무엇이 그리 존경할만하단 말인가? 더욱이 그들의 잘못된 글을 오류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답습하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도 않는 것 또한 부끄러운 일이다.
나는 내가 생각한 것을 그대로 곧바로 써나갈 것이다. 나는 조선 사람이다. 나는 조선 사람으로서 조선 스타일의 시 짓기를 두려워하지 않겠다. 자신감 있게 쓸 것이다. 배와 귤은 맛이 서로 다른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이 과연 얼마나 계실까? 다산 선생님은 정말로, 정말로 멋진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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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수 >
老人一快事 / 늙은이의 한 가지 유쾌한 일은
縱筆寫狂詞 / 붓 가는 대로 미친 말을 마구 씀일세!
競病不必拘 / 경병에 구속될 것도 없고
推敲不必遲 / 퇴고도 꼭 오래 할 것이 없어라.
興到卽運意 / 흥이 나면 곧 이리저리 생각하고
意到卽寫之 / 생각이 이르면 곧 써 내려 가되
我是朝鮮人 / 나는 바로 조선 사람인지라
甘作朝鮮詩 / 조선 시 짓기를 달게 여길 뿐일세.
卿當用卿法 / 누구나 자기 법을 쓰는 것인데
迂哉議者誰 / 오활하다 비난할 자 그 누구리오?
區區格與律 / 그 구구한 시격이며 시율을
遠人何得知 / 먼 데 사람(중국)이 어찌 알 수 있으랴.
凌凌李攀龍 / 능가하기 좋아하는 이반룡은
嘲我爲東夷 / 우리를 동이라고 조롱했는데
袁尤槌雪樓 / 원굉도는 오히려 설루를 쳤으나
海內無異辭 / 천하에 아무도 다른 말이 없었네
...
焉能飾悽黯 / 어찌 비통한 말을 꾸미기 위해
辛苦斷腸爲 / 고통스레 애를 끊일 수 있으랴.
梨橘各殊味 / 배와 귤은 맛이 각각 다르나니
嗜好唯其宜 / 오직 나의 기호에 맞출 뿐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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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행복이란 주제로 돌아 와 보자. 나 또한 나이 70이 넘으니 ‘나에게 있어 행복이란 무엇일까? 내가 행복한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니어서 메모를 자주한다. 그래서 옛 메모를 찾아보았다. 그 중 일부를 요약하여 나의 편안함을 적어 보겠다. 나도 다산선생님을 흉내 내어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마음대로 쓰며, 수정도 많이 하지 않고 써 보겠다.
<< 내가 나이 들어 행복한 이유 >>
- 옛 유명인들의 글이라고 해서 또는 현재 유명한 사람의 글이라고 해서 다 믿지 않는다.
- 공자님 또는 고전에 있는 말씀이라고 해서 꼭 들을 필요는 없는 것은 듣지 않겠다.
- 조금 틀린 얘기를 하는 것을 너무 조심해 하지 않고, 누가 그것을 지적하면 곧바로 진심으로 사과하겠다.
- 두보의 시와 다산 선생님의 말씀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어 좋다.
- 쓸데없는 사람들의 지저귐에 크게 신경 쓰지 않겠다.
- 욕심이 없으니 더 자유스런 글을 쓸 수 있어서 좋다
- 내가 촌놈인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좀 부족해도 잘 참을 수 있도록 하겠다.
- 남이 나보다 더 가진 것이 많아도 그것은 그 사람의 복이라고 여유 있게 생각하겠다. 그리고 “나도 그 사람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을 거야.” 라고 생각하겠다.
- 보시의 공덕을 이해하고, 배 풀려고 노력하겠다.
-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별로 심심하지 않아서 좋다.
- 자식들이 자라는 것을 보아도 좋고, 건강해서 좋다. 또한 효자들이어서 더 좋다.
- 설령 건강이 나빠져도 찾아볼 수 있는 정보가 많고, 곧바로 옆에 병원이 있어서 좋다.
- 대한민국이 강국이 되어 북한, 일본, 중국이 감히 넘보지 못해서 좋다. 과거와 같으면 두려워할만한 소리를 중국, 북한, 일본이 해도 그냥 “그랬어? ‘라고 여유 있게 들을 수 있어서 좋다.
-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한 포기를 심리적 부담 없이 빠르게 할 수 있어 좋다.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집착이 줄어드는 것이 더 없이 좋다.
- 그런다고 해서 뒷방 신세가 아니어서 너무 고맙다.
- 퇴행적인 말과 행동을 미덕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아직도 적극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 옛날 보다 조금 더 지혜로워지고, 자연이 더 예뻐 보이며, 젊은이들이 더 귀하게 생각된다.
- 정치가 중요하지 않고 과학과 기술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서 좋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나이 들어 좋은 것이 참으로 많은 것 같다. 모든 조상님들, 이웃 친구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自然)에 감사드린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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