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국 교수의 생활과 경제 이야기 <53> 잡초들의 놀라운 생존 철학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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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한 후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자그마한 텃밭을 마련하였다. 남들이 농장이라고 부르는 넓은 밭에 비하면 너무 좁고, 좁은 땅이어서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러나 게으른 내가 소일하기에는 충분한 크기의 땅이어서 그렇게 큰 불만은 없다. 다만 땅이 평탄하지 않고 기울어져 있는 것이 불편하지만, 그래도 이런 땅이 있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고맙다.
좁은 땅의 농사지만 4,5년 시간이 지나니 제법 노하우도 쌓이고, 올해는 무슨 모종을 심을까도 나만의 아이디어까지 생기게 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그간 내가 싸워왔던 잡초들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한다.
농사는 ‘잡초와의 싸움’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었다. 그리고 그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몇 년 간 좁은 텃밭이지만 경영하다 보니 나름대로 요령이 생겼다. 언젠가는 새로 산 땅에서 본격적으로 내가 고안한 합리적인 영농방법을 유튜브나 개인 SNS계정을 통해 다른 분들과 생각을 나눠 보고자 한다. 나의 목표는 농사짓는 노력은 60% 이상 절약하고, 생산량은 배 이상 높이고자 하는 것이다.
무슨 터무니없는 말씀이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1천여평 이하의 소규모 농장에서는 가능하다고 본다.
학문을 하다보면 자주 듣는 말 중에 하나가 “하늘 아래 새것은 없다.”라는 말이다. 즉 누군가는 이전에 비슷한 것들을 시도해 본 것이 대부분이라는 뜻이다. 나는 이 말이 농사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농사 경험도 일천한 내가 수 십년 농사 지은 사람들의 노하우를 넘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농사 짓는 방법에 대해 대단한 노하우를 가진 분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그런 분들의 경험을 유튜브 자료 등을 찾아보면 상당수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좋은 방법들이 통용되지 않는 이유는 두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제시되는 많은 방법들이 종합적이지 않고, 비교적 단편적이라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농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자기만의 농사짓는 방법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농사를 오랫동안 지으면 나름대로 자기만의 고유한 방법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농사짓는 분들은 이런 것에 대해 매우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아마 이런 이유 등으로 좋은 방법들이 잘 전파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일을 가까운 미래에 하려고 한다. 내가 개발한 자그마한 개선책도 포함하여 주위 분들의 훌륭한 개선책들을 『종합』하여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것이다. 많은 자료 들이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거나 때로는 설득력이 없게 표현됨으로써 다른 농민분들에게 적절하게 전달되지 못한 것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텃밭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관찰한 잡초들의 놀라운 생존 방법에 대해 얘기해 볼까한다.
우선 잡초에게 “미안하다.”라는 말을 먼저하고 싶다. 왜냐하면 잡초라는 말 자체를 인간들이 제 멋대로 만든 말이기 때문이다. 자연계에서는 ‘잡초’라는 말이 있을 수 없다. 괜히 인간들이 자신들이 키우는 작물(作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 잡초들 보다 훨씬 늦게 이 지구상에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잡초’라는 오명을 씌웠기 때문이다. 잡초들의 입장에서 자기들은 자기의 생명과 종족 보전을 위해 수천만년 동안의 엄청난 진화과정을 거쳐 오늘까지 살아남은 존재인 것이다.
잡초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아마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다. “주제 파악도 못하는 주제에 내가 ‘잡초’라고? 너희 인간들이야 말로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우리를 괴롭히는 존재들이야. 그리고 얼마 긴 시간이 지나면 너희 인간들은 지구상에서 사라질지 몰라. 하지만 우리 잡초들은 그때도 건재할 걸? 너희들 보다 훨씬 더 오래 이 지구에서 살아 남을꺼야.”
그들의 이런 변(辯)이 귓속에 들리는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의 불만을 잠깐 접어 두고, 일단 그들의 수천만년에 걸친 생존철학을 대변해 보기로 하자.
살아남기 위한 잡초들은 잡초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전략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들을 내 나름대로 이렇게 정리해 보았다.
첫째는 ‘다수확’ 작전이다.
‘소리쟁이’가 대표적인 식물이다. 소리쟁이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 것 같다. ‘그래, 이 세상은 적들로 가득 차 있어, 내 종족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씨를 많이 맺고 퍼뜨려야만 해. 그러면 그 중에서 몇 개는 살아남지 않겠어? 그러면 나는 일찍 말라죽어도 편하게 죽을 수 있을꺼야.’ 이런 전략에서 소리쟁이는 남보다 일찍 자라고 꽃을 피워, 자기 몸이 휘어질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종자를 맺고 갈색으로 변하여 말라 죽는다. 다음 세대를 위한 숭고한 희생이다.
둘째는 ‘읍소작전’이다.
이런 식물들은 정말 연약하기 짝이 없게 보인다. 많은 식물들이 이 전략을 취하고 있는 듯하다. 잎도 가늘고 하늘하늘한 것이 그냥 놔두어도 하등에 다른 작물에 나쁜 영향을 줄 것 같지 않다. 그래서 나도 한참동안 그대로 놔두었다. 그러나 웬걸? 자라기 시작하니까 금세 자라 옆 다른 작물들을 가려 버린다. 그래서 나도 놀라 줄기를 잡고 뽑아 버렸다. 잘 잘린다. 그러나 아뿔싸! 뿌리는 절대 뽑히지 않는다. 윗 줄기 부분만 너무 쉽게 싹 잘린다. 그러나 뿌리는 그대로다. 며칠이 지나면 뿌리에서는 새로운 싹이 즐겁다는 듯이 더 많이 돋아난다.
셋째는 ‘강변 일변도’ 작전이다.
잎이 매우 거세다. 잘못 잡으면 손이 살짝 베이기도 한다. 그리고 잡아채도 잎이 끊어지지도 않는다. 할 수 없이 큰 전정가위로 땅위 잎들을 자르고, 호미로는 뿌리까지 파낸다. 그러나 뿌리가 깊고 숫자도 많아 파내면 작은 구덩이가 생길 정도다. 그리고 절대 쉽게 파내지지도 않는다. 이 잡초를 제거하는 것은 한가지 방법밖에 없다. 어린 순일 때 빨리 뽑는 것이다. 그러나 때를 놓치면 금방 자라 나 정말 골치 아픈 존재가 된다.
넷째는 ‘얌전한 척’하는 작전이다.
칡, 새삼 등이 이 전략을 쓰는데 내가 가장 속아 넘어간 전략이다. 첫 일이년간, 아직 잡초에 대해 지식이 없을 때 정말 보기 좋게 속아 넘어갔다. 이 작전을 쓰는 식물은 새싹일 때와 자랐을 때의 모습이 너무 다르다. 어린 새싹일 때는 귀엽기 짝이 없다. 정말 순박하고 예쁜 모습일 때가 많다. 그러나 일단 뿌리를 내리고 자라면 줄기에는 가시가 돋거나, 손으로 뽑아서는 도저히 끊어지지 않는 매우 질긴 줄기를 가진 식물이 된다. 다른 잡초는 그만 두어도 새삼의 새싹만은 나는 보는대로 뽑아 버린다. 일찍 제거하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모양 흉내내기’ 전략이다.
이것은 논에 나락과 함께 자라는 ‘피’도 같은 전략을 사용한다. 어렸을 때는 도대체 키우고자하는 작물과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이름을 잘 모르지만 방아나 깻잎과 너무 같은 잡초가 있다. 상당히 자라서도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국화와 (듬)쓱 보다도 더 비슷하게 생겼을 때가 있다. 거의 가을이 되어 수확할 때가 되어야 구분이 된다. 하지만 너무 늦어 작물이 상할까 봐 그냥 놔들 때도 있다. 잡초 입장에서는 정말 좋은 전략이다. 육지의 ‘흉내내기 문어’라고나 할까? 어쨌든 번번히 속지만 훌륭한 전략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섯째는 ‘진드기’ 전략이다.
도깨비 방망이 또는 도깨비바늘이 쓰는 전략이다. 이 전략은 정말 간단명료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도깨비 방망이나 바늘은 날카로운 가시가 씨방에 붙어있다. 그러나 씨방과 식물 간의 연결은 매우 약하다. 그래서 동물들이 옆을 지날 때 동물의 털에 또는 사람들의 옷에 쉽게 달라붙는다. 그러나 씨앗에 달린 바늘은 상당히 강하다. 잘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오래 달라붙어 있으면 동물들의 털이나 옷 안쪽으로 파고 든다. 콕콕 찌르는 것이 상당히 아프다. 동물이라면 한참 후 다른 장소로 옮겨 간 후 가시가 파고들어 아프게 되면 나무에 몸을 문질러 떨어트릴 것이다. 그럼 이 동물은 무슨 역할을 하였는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멀리, 아주 멀리 도깨비 방망이 씨를 펼쳐 주는 역할을 한 것이 된다.
나는 ‘새삼’ 다음으로는 도깨비바늘을 싫어한다. 그러나 도깨비바늘보다 더 영리한 것은 인간이다. 어느 창조적인 사람이 도깨비바늘의 고리 구조를 보고 ‘벨크로테잎’을 발명했다고 한다. 작은 여러 개의 단추 대신 벨크로테잎이 얼마나 우리 생활을 편하게 만들어 주고 있는가?‘ 그 보수적인 로마 교황님께서도 이번 교황복을 지을 때 거죽에는 모양으로 단추를 다셨지만 그 안에는 벨크로테잎을 다셨다고 한다. 그럼 이런 공로로 도깨비 바늘을 용서해줄까? 아니다. 용서할 수 없다. 어느 사이엔가 달라붙어 너무 아프게 나를 콕콕 찌르기 때문이다.
일곱째는 ‘머리 디밀기’ 전략이다.
깡패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사람은 싸움 잘 하는 다른 깡패가 아니라고 한다. 때려도, 때려도 울며 악을 쓰며 “그래 나 죽여라. 죽여!”하며 달려드는 사람이라고 한다. 잡초 중에서도 이런 전략을 쓰는 잡초가 있다. 바로 ‘애기똥풀’<아래 사진,노란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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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똥풀은 잎 모양새도 그리 밉지 않고, 꽃도 예쁘지는 않지만 흉물스럽지도 않다. 그리고 다른 잡초들은 아직 잎도 제대로 피지 않을 때, 어느 새 자라고 노란 꽃까지 피운다. 잡초치고는 나쁘지 않다. 그래서 놔두었다. 그런데 옆으로, 옆으로 순식간에 텃밭을 덮어 버렸다. 그래서 뽑았다. 잘 뽑힌다. 줄기뿐만 아니라 뿌리도 쉽게 뽑힌다. “어, 시원하다.” 제거 후 느낀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이름만큼 착한 잡초네?”
그런데 이상하다. 금방 또 애기똥풀이 생겼다. “어, 이상하다. 내가 분명히 뿌리까지 다 뽑았는데.” 아, 그러나 거기에는 놀라운, 정말로 놀라운 애기똥풀만의 생존전략이 숨어있었다. 애기똥풀은 빨리 자라고, 열매도 마치 유채꽃 열매 같은 모습이다. 하늘로 얌전하게 솟아 올라있다. 순박해 보인다. 연약해 보이까지 한다. 그러나 애기똥풀은 절대로 약한 존재가 아니다. 약한 존재였다면 어찌 온 들판을 덮는 생태계를 형성할 수 있겠는가?
애기똥풀 씨에는 아주 신기한 전략이 숨어있다. 애기똥풀 씨앗은 날개도 없다. 그러나 그 씨앗에는 개미들이 너무 좋아하는 ‘엘라이오좀’이라는 지방산이 씨앗 끝에 살째기 붙어있다. 개미들은 그것을 먹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지방산만을 떼어내면 금방 굳어버려 먹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개미는 신선한 지방산을 먹기 위해 굴속까지 씨앗 전체를 끌고 가야한다. 그리고 그때서야 그 하얀 지방을 떼어 먹는다. 그리고 못 먹는 씨앗부분은 입구 옆에 묻어버린다.
그러면 이 상황을 잘 분석해 보자. 개미는 그 지방을 떼어먹기 위해 굴속(땅속)으로 씨앗을 끌고 갔다. 그리고 씨앗은 입구에 버렸다. 개미집 입구는 정말 부드러운 흙으로 되어있다. 즉 개미는 씨앗을 여기저기로 옮겨 펼쳐주었을 뿐만 아니라 땅 속 얕은 곳, 가장 뿌리내리기 쉬운 토양에 씨앗을 “심어주는” 역할까지 한 것이다. 얼마나 애기똥풀의 입장에서는 고맙겠는가? 그러니 뽑아도, 뽑아도 금방 다시 자라 온 땅을 덮는 것이다. 그리고 애기똥풀은 거의 5,6개월 이상 꽃을 피운다.
우리 인간들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우리가 그들을 ‘잡초’라고 부르는 것은 정말 미안한 노릇이다. 세상의 모든 생물들은 그것이 식물이든 동물이든 이처럼 모두 상부상조하며 도와가며 사는 것 같다. 자신의 이익에 따라 순식간에 감탄고토(甘呑苦吐)를 하는 인간 세상이 조금은 배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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