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내 핵무장, 가능할까?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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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에서 "마음만 먹으면 1년 내에 핵무장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어느 교수나 전문가가 1년이면 핵 폭탄을 만들 수 있다고 대통령한테 보고한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국제원자력기구 모르게 무기급(weapon-grade) 핵 물질을 생산했다는 말인지, 아니면 조지 클루니와 니콜 키드먼이 주연한 영화 <피스메이커>(The Peacemaker, 1997)에 나오는 것처럼 어디서 몰래 들여왔다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부터 1년 이면 무기급 핵 물질을 충분히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지난 2008~2011년 동안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을 지냈으니 원자력과 인연이 아주 없다고 할 수는 없다. 1979년 가을 미국 유학 첫 학기에 자원환경법 과목을 공부했는데, 원자력 관련 소송을 중요하게 다루었다. 그 해 3월 펜실베이니아 스리마일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해서 원자력 문제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았다. 교재에는 핵폐기물 재처리를 중단하기로 한 NRC(핵규제위원회)의 청문(GESMO Hearings)과 포드 행정부의 재처리 중단 결정도 나와 있었다. 관련해서 그 때 나온 <Plutonium, Power, and Politics>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한국과 프랑스 간의 핵 기술 협정이 파기된 경위도 나와 있어서 흥미로웠다. 우리나라에 핵 기술을 팔 수 없었던 프랑스가 파키스탄에 팔아서 결국 그 기술이 북한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미국은 포드 행정부 시절에 핵 재처리를 중단했다. 프랑스와 일본은 재처리를 추진하고 고속증식로를 만들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스리마일 원전 사고 후 미국에선 원전(原電) 신규건설이 완전히 중단됐다. 1980년대 들어 저유가(低油價) 시대가 열려서 원전 건설 중단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붕괴하자 소련이 갖고 있는 핵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됐다. 당시 조지 H. W. 부시 정부는 러시아의 핵 폭탄 물질을 미국이 수입해서 원전에서 연료로 사용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이렇게 해서 1993년부터 20년 동안 러시아가 갖고 있던 핵 폭탄에서 나온 핵 물질 500톤을 원전연료용으로 저농축(低濃縮)해서 미국 원전 업계가 수입해서 발전소 연료도 사용했다. 미국-러시아 간의 모범적 협력이었던 이 사업은 <From Megatons To Megawatts>, 즉 ‘메가톤급 핵폭탄을 메가와트 발전’으로 바꾸는 사업으로 불렸다. 미국 원전이 러시아 핵 폭탄에서 나온 물질을 연료로 사용하게 되니까 우라늄 가격이 폭락해서 한국전력도 그 혜택을 입었다. 석유가격도 안정되어 있는데다 우라늄 가격도 내려갔으니 1990년대는 이처럼 좋은 일이 많았다.
러시아 핵폭탄에서 나온 물질을 원전 연료로 사용해도 미국에선 그것에 반대하는 여론이 거의 없었다. 정부의 과학적 판단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때 나는 만일에 우리 정부가 핵 폭탄 물질을 우리 원전에서 연료로 쓴다고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보나마나 원전에서 원자폭탄이 터져서 대한민국이 없어진다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알다시피, 1992년 초 노태우 정부는 북한과 한반도 비핵화 협정을 체결했다. 남북 간에는 휴지 조각이 된 협정이지만 핵 무기 개발은 물론이고 에너지용 재처리도 포기한다는 우리의 약속은 지금까지 유효한 셈이다. 이어서 김영삼 정부는 굴업도 방폐장 사업이 활성단층 발견으로 무산되자 핵 폐기물 관리 사업을 원자력연구소에서 한국전력으로 이관시켰다. 이는 에너지 목적을 위한 재처리 연구마저 포기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사정이 이런데 “1년 내 핵 무장이 가능하다”니........
사진 (1) : 2013년 가을, 러시아 항구에서 마지막 선적을 앞둔 핵 탄두 핵물질.
사진 (2) : “핵 탄두 2만개를 없애서 70억 메가와트 전력을 생산했다.”
사진 (3) : 우라늄 가격 동향. 1990년대가 최저였고, 2007~08년에 '우라늄 거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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