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을 난도질하는 칼날, 악플의 법적 규제 방안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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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 양산 국가, 대한민국
최근 인터넷 공간에서의 악성 댓글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연예인이 많아졌다. 자신이 받은 악성 댓글 및 DM(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을 직접 캡처해 본인이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음을 털어놓기도 하며, 때로는 법적 대응 의지를 보이며 악플러들에게 강경하게 경고하기도 한다. 한국 사회는 비교적 최근까지만 해도 연예인을 비롯한 공인에게 악플은 숙명과도 같은 것이라 여기는 태도를 보였다. ‘악플도 관심의 하나’라든가, ‘무(無플)보다는 악플이 낫다’라는 말들이 대표적이다. 또, 대중에게 큰 인기를 얻는 연예인이라면 악플에 상처받지 않고 악플러들을 선처해주는 것도 하나의 덕목이라는 인식이 암묵적으로 존재하기도 했다.
하지만 악성댓글의 수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그 내용 또한 점점 더 악랄해져 감에 따라 악성 댓글이 한 사람의 인격과 존엄에 큰 상처를 입히고 결국엔 그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는 점에 경각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대중의 큰 사랑을 받던 유명 스타들이 악성댓글로 인해 연달아 목숨을 끊는 사례가 발생한 뒤, 인터넷 실명제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10여 건 올라왔으며 악성 댓글의 처벌 수위를 높일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형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사이버 명예훼손·모욕죄 발생 건수는 2014년 8,880건에서 2015년 1만5043건으로 증가한 이후 매년 1만5000건 내외로 발생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2019년)에는 1만5296건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우리나라의 악플 양산은 심각한 수준이다. 김찬호 저자의 「모멸감(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에 따르면 한국 사회 댓글 중 무려 80%가 부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한다. 네덜란드(10%)나 일본(20%)에 비하면 현저하게 높은 수치다.
악플러에 대한 민·형사적 처벌
그렇다면 현행법상 악플러에 대한 법적 처벌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 인터넷이나 SNS에 악플을 달면 정보통신망법(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명예훼손죄와 형법상 모욕죄가 적용이 가능하다. 사실을 적시한 명예훼손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 거짓을 적시한 명예훼손은 7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 모욕죄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 2000만 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형사법적 처벌에서 신체형까지 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 약식 기소된 뒤 벌금형에 처해진다. 모욕죄 관련 판결을 분석한 한국형사정책연구원(2017)의 보고서에 따르면, 온라인 모욕죄 관련 판례를 분석한 결과 약 62퍼센트가 유죄로 판결되었고, 그중 89퍼센트가 벌금형에 처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처벌의 실제 적용 수위가 상당히 낮은 셈이다.
인터넷 댓글 규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태도
사안에 대한 법률적인 사고방식을 뜻하는 ‘리걸 마인드(Legal Mind)’의 가장 기본은 쟁점을 둘러싼 이익을 적절하게 형량하는 것이다. 악성댓글의 법적 규제를 둘러싼 두 기본권은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와 명예훼손으로 인해 침해받는 개인의 권리라고 할 수 있다. 과거 한국 사회는 인터넷상 악성댓글 이슈에서 헌법상 보장되는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인격침해방지의 두 축을 고려하며, 전자의 보호에 조금 더 주력하는 태도를 보였다. 대표적인 예로, 2012년 헌법재판소의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위헌결정이 있다. 표현의 자유는 인격발현의 수단임과 동시에 건설적인 의사형성의 수단이 되며, 익명 혹은 가명으로 이뤄지는 표현이 국가권력이나 사회 다수 의견에 대한 비판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 판결의 요지였다. 인터넷상의 표현에 대한 규제는 헌법적 가치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제한적이고 사후적인 차원에서 최소한도로 이뤄져야 함을 판시한 것이다.
악성댓글 규제 법안을 다룬 2010년대 주요 논문들의 태도도 헌법재판소 결정과 유사했다. 인터넷 의사소통에 대한 국가의 규제는 내용적 규제보다는 형식적 규제에 국한하고, 내용상 규제가 필요할 경우에도 자율규제로 가는 것이 법적 정당성 확보에 부합한다고 보았다. 또, 사이버 공간의 유연한 의사소통 구조 확립을 위해 사전규제보다는 사후규제의 방식을 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악성 댓글 방지를 위한 실효성 있는 규제가 마련되어야
필자는 악성댓글 및 인터넷상의 건전한 의사소통을 저해하는 혐오표현들에 대한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인터넷 소통 구조는 건강하고 활발한 여론 형성과 민주적인 공론장 확립에 기여한다. 헌법 제21조가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표현의 자유가 매우 중요한 가치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숭고한 헌법적 가치 뒤에 숨어 타인의 인격과 존엄을 훼손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인터넷 기술과 SNS의 발전으로 악성루머 및 댓글의 확산도와 집중도가 높아졌다. 흔히 ‘좌표를 찍고 왔다’고 표현하듯이, 한 집단이 특정 개인의 SNS나 뉴스 페이지를 방문하여 조직적으로 악성댓글을 남기기도 한다. 따라서 비록 악성 댓글에 대한 법적 규제가 표현의 자유 보장을 위해 최소한에 그쳐야 할지라도, 그 실효성이 보장되어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우선 사전적 규제방식으로 AI를 활용한 악성 댓글 감지 및 삭제 기능을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심각한 욕설이나 인격 모독적 표현이 감지된다면, 해당 댓글 작성자의 서비스 이용을 일시 중단하거나 댓글을 삭제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다. 포털사업자가 댓글 작성자의 아이디 전체와 아이피를 공개하도록 하는 ‘인터넷 준실명제’나 인터넷 이용자 다수가 온라인에 유통되는 혐오‧차별 표현을 신고하여 삭제를 요청할 경우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삭제 의무를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 실제로 포털 사이트 ‘다음(DAUM)'의 경우 2019년 10월 31일에 기하여 연예 섹션 뉴스 댓글 서비스를 잠정 폐지했다.
사후적 규제방식으로는 모욕죄(형법 제311조)의 처벌 상한을 올려 실효성을 높이거나, 모욕에 포섭될 수 있는 혐오 표현의 경우 제2항을 신설해 인종·장애·성별 성적 정체성에 따른 차별적 표현을 규제하도록 할 수도 있다. 물론 법적 개정에 이르는 과정은 쉽지 않겠지만, 작년 (2019년)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혐오 표현을 모욕죄로 처벌하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을 고려하면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또 소송이 초래하는 비용이 크다는 점을 고려하여, 피해자가 원할 경우 언론중재위원회 등을 통하여 조정 및 화해 제도를 거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있다.
마지막으로 교과 과정 내에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확대하여 악성 댓글의 심각성을 분명히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디지털 시민성 함양 교육도 필요하다. ‘악성 댓글을 신고했더니 황당하게도 그 작성자가 바로 초등학생이었다더라.’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미디어 사용 연령이 점차 낮아짐을 고려하여, 무분별한 혐오 표현 및 악성 댓글에 노출된 학생들에 대한 적절한 교육이 필요하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가치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유를 누릴 자격을 갖춘 민주 시민의 다른 한 축에는 타인의 권리 및 인격에 대한 존중과 포용이 늘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댓글목록
wonjae님의 댓글
wonjae악성 댓글 방지를 위한 실효성 있는 법적 장치가 필요한 때입니다. 인터넷상에 건전한 의사소통을 저해하는 혐오 표현들에 대한 법적 규제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