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강진사태, 세월호의 데자뷔 : 누구의 잘못인가? - 현장취재, 지진 세미나를 다녀오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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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측 이래 최대 규모로 일어난 지진
지난 12일 오후 7시 44분과 8시 32분에 각각 규모 5.1과 5.8의 강력한 지진이 경상북도 경주시 남남서쪽 9km지점에서 발생했다. 규모 5.8의 지진은 1978년 지진 계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강력한 규모의 지진이다. 12일 지진 이후 약 일주일간 374회에 이르는 여진이 발생했다. 지난 번 지진과 같은 시간인, 8시 32분경에 일어난 지진은 그 피해액이 약 100억 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간 대규모 지진의 위험은 거의 없다고 생각했던 한반도에서 발생한 이번 지진은, 해당지역 당사자 뿐 아니라 수많은 국민들에게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다.
세월호의 데자뷔, 누구의 잘못?
그런데 더 큰 충격은 따로 있었다. 자연재해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에, 강진이 발생한 데에는 그 누구의 잘못도 없다. 그러나 모든 안전사고와 재해가 그렇듯, 위기를 대처하는 과정에서 해당 국가나 공동체, 사회의 ‘역량’이 드러난다.
그런데 이번 5.8 강진사태로 인해 벌어진 지진정국에서, 우리는 ‘세월호의 데자뷔’를 여실 없이 겪었다. 정부당국의 대처는 여전히 미흡하다 못해 형편이 없었고 (국가), 문제에 당면한 시민들의 행동 역시 (개인) 아마추어리즘을 벗어나지 못했다.
우린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위기가 벌어질 때마다 4월 16일의 악몽에 벌 벌 떨며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혹자는 정권교체만이 답이라고 하는데, 과연 지도자가 바뀐다고 한국 사회의 위기 대처 능력이 획기적으로 향상될 수 있을까? 강한 퀘스천 마크가 든다.
“청년기자단, 문제의 본질을 고민하다.”
ifs POST 청년기자단에서는 이번 사건을 개인의 탓인지 국가의 탓인지, 조금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기로 했다. 모든 논쟁이 그러하듯 “둘 다 잘못했다.” 라는 명제로 귀결될 것이 자명하지만, 여느 논쟁처럼 허무하진 않을 것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청년기자 두 명의 시각에서 작성된 글을 통해 문제를 인식하고, 두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동시에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하나의 ‘플랫폼’을 만들어보려 한다. 독자여러분들도 함께 페이스북과 댓글을 통해 토론해주시길 소원한다.
황주상ㅣifs POST 청년기자
한남대 사학과 4학년
아직도 우리 가슴을 후벼파는 그 문장, “가만히 있으라.”
무책임하게 아이들을 세월호에 가둔 어른들은 변하지 않았어.
정부 당국의 책임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어른들에게 있어.
“나는 감독을 할 테니 자네들은 공부를 하게나.”
대구일보에 올라온 기사에 따르면, 경상북도 내 88개 학교는 첫 지진이 발생한 12일 저녁에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42개 학교의 학생들이 지진 발생 후에도 대피하라는 지시를 받지 못했고, 심지어 지진이 2차로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11개교에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진 이후 한 교사는 자신의 SNS에 “지진 두 번 일어나서 야간 자습 중 교장교감 연락 불통이라 내 맘대로 애들 집에 귀가시켰다가 혼나고 집 가는 중, 난 세월호 때처럼 그렇게 많은 아이들을 죽일 수 없었다.” 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을 본 많은 누리꾼들은 학교의 허술한 조치에 대해서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이외에도 그와 비슷한 상황을 지적한 학생들의 글이 연이어 SNS에 올라왔다.
“담임은 밖에 나가지 말고 야간자율학습이나 하라고 했다. 수능이 66일 남았는데 지진이 무슨 대수냐고 한다. 우리가 대학 떨어지는게 더 심각하다고 앉아서 공부하라고 했다.”
“우리학교 애들 야자 중이었는데 지진이 났다. 애들 다 당황해서 웅성웅성 하고 있었다. 담임이 들어오더니 “너네 왜 떠느냐”고 물었다. 우리가 지진이 나서 무섭다고 호소했더니 “얼마나 집중을 안했으면 지진을 느껴. 빨리 공부해”라더라.“
“우리: 지진이다. 집에 가야될 것 같아!(3학년은 4,5층이라 더 위험)
방송: 방금 잠깐 여진이 있었으나 공부 하는데는 지장이 없으니 자습마저 하세요.“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안전을 책임질 테니 안심하고 공부하라고 했다. 수능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학생들이 얼마나 집중을 안했으면 지진을 느끼냐며 학생들을 다그치는 모습마저 보였다.
위 교사들이 말하는 책임의 정의는 무엇일까. 학생들이 지진으로 겁을 먹어도 공부하도록 지도하는 것과, 더 큰 지진에 대비해 학생들이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게 유도하는 것 중 어떤 행동이 책임을 다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조선시대 명필로 유명한 한석봉의 어머니는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나는 떡을 썰 테니 너는 글씨를 써라” 라고 말한 뒤 불을 껐다. 다시 불을 켠 후 결과를 확인해보니 한석봉은 글씨를 삐뚤게 쓴 반면에 어머니는 떡을 가지런하게 썰었다. 그걸 보고 깨달음을 얻은 한석봉은 다시 절로 돌아가서 열심히 글공부를 했고, 조선팔도를 주름잡는 명필이 되었다.
이 일화는 아들이 자신의 실력에 오만하지 않고 공부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사랑이 담겨있다. 지진이 일어나서 불안한 상황에도 신경 쓰지 말고 공부하라던 교사의 속내는 한석봉의 어머니와 같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감독을 할 테니 너는 공부를 하여라.”
여전히 무책임한 어른들.
한국사회에서는 부모들이 “학교 가서 선생님 말 잘 들어!”라는 말과 함께 아이들을 배웅하는 모습을 흔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지진을 통해 대한민국 또한 지진에 안전한 국가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더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다면 (이와 같이 무책임한 대응 하에서는) 재앙적 수준의 인명피해가 발생할 것이 자명한데도, 여전히 부모들은 무책임한 교사들의 대처를 보고도 안심하고 자녀를 학교에 보낼 수 있을까?
이번 사건을 지켜보는 내내 세월호참사가 뇌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침몰하는 배에서 승무원은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라.” 고 지시했다. “그리고...” 지진당시 일부 교사들의 행동은 세월호 참사 당시 승무원의 무책임한 행동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수많은 국민들은 이런 비극적인 참사가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어른들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라며 눈물 흘렸다.
그러나 2년이 지난 현재, 그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아니, 마를 수 없었다. 어른들 스스로의 눈물을 닦기 위해, 우린 국가적 차원의 대응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시민 사회 스스로의 인식과 행동에 집중해야 한다. 재난의 확산에 대한 책임은, 우리들에게도 있다.
최정윤ㅣifs POST 청년기자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3학년
정부의 안전불감증, 이것이 우리의 현주소.
무책임한 어른들의 탓? 정부의 재난 대응 실패?
후자에 더 무게를 두었어, 세월호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앞으로도 있을 지진 대응을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필자는 지난 23일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지진 세미나에 다녀왔습니다. 본 기사는 취재한 내용을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아픔을 잊지 않으려 했지만.”
2014년 4월 16일, 그 날 이후로 곳곳에서 보이는 노란 리본과 광화문에서 진상규명을 외치는 유가족들의 모습은 대한민국 국민의 마음 한편을 찔렀고, 우리는 아팠다.
팽목항을 맴도는 억울한 아이들을 위로하며 같이 울기도 했다. 우울함은 계속됐고 가장 가슴 아파해야 할 문제의 책임자는 국민들을 향해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나를 자꾸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무심하게 흘러가는 ‘일상의 시간’이며, 무엇보다 내 자신 조차도 거기에 가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에 우리의 마음을 콕콕 찌르던 삼각형은 생계, 자본, 권력에 모서리가 깎이며 둥글어졌고 우리의 마음을 더 이상 아프게 하지 않는 원으로 변하고 있었다. 세월은 그 자리에 멈춰 있었지만 무심하게 흐르는 시간에 감각만 무뎌진 것이다.
“아픔은 되살아났고, 정부는 실패했다.”
지난 12일 우리 마음속의 세모가 다시 한 번 뾰족해졌다. 강력한 지진에 놀란 마음뿐만 아니라 이에 대해 분개할 만큼이나 미비했던 정부의 대응과 안전에 대한 국민의 불안 때문이다.
지진은 재난이고, 정확한 예측이 불가하기에 피해가 전무한 완벽한 대비책이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생활공간이 흔들려 불안에 떠는 국민을 안심시키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사후 대처에서 현 정부는 철저하게 실패했다.
경주를 중심으로 지진을 느낀 주민들은 굉음과 진동에 두려워했고 일시적인 통신 장애로 지인과 친인척을 걱정하는 사람의 답답함은 배가 되었다. 추석에 고향을 찾은 친구가 집이 흔들리고 화분과 그릇이 깨지는데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모르겠다며 울면서 전화를 했다.
집에서 나가는 것과 안에 있는 것 중 무엇이 더욱 안전한지도 몰라 우왕좌왕하면서도 끝내 재난대피 문자 한 통 오지 않았다고 한다.
“재난대응 문자는 9분 뒤에 발송되었다.”
아이폰 유저나 몇몇의 주민들에게는 발송조차 되지 않았다. 기상청에서는 전진의 경우 27초, 본진의 경우 26초 내에 지진 발생을 경보했다. 문제는 국민안전처에서 국민에게 재난 대응 문자를 발송하는데 각각 8분과 9분이 걸렸다는 것이다.
세월호와 같이 ‘골든타임’을 놓친 것 역시 멈춘 세월을 또 한 번 보여주었다. 강도 6 지진의 경우 2, 3분 내에 건물이 붕괴할 위험이 있다. 때문에 제 시간에 대피를 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여기서 국민안전처가 무색해지는 부분은 국민안전처 그 자체가 ‘세월호 참사’ 이후에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컨트롤타워, 정부의 약속이었기 때문이다. 국가를 개조하는 수준으로 안전을 제공하겠다던 정부의 ‘노오력’은 오히려 시간을 늦추는 역할을 하며 대응 체제의 미흡함을 보여주었다.
“핵심은 긴급성이다.”
국민안전처는 해명은 ‘정확성’이었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혼선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다보니 시간이 지연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안전처가 다뤄야 할 위험은 지진을 제외한 해일, 태풍, 심지어 테러와 같은 인재일 수도 있다. 이렇게 생명을 위협하는 경위의 위험에는 긴급성이 중요하다. 따라서 경위조사나 발표는 정확한 조사를 후에 실시한다 하더라도 우선적으로 위험을 알리는 경보를 내리는 것이 핵심이다.
문자가 오지 않으니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접속한 홈페이지도 먹통이었다. 그런데 가까스로 접속한 홈페이지에서 접할 수 있었던 지진에 대한 대응 매뉴얼조차, 추상적이고 이론적 내용을 기술해놓은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일본은 66가지 상황에 대비한 대응책을 제공하는 데, 한국의 경우 실내, 실외, 산 속 등의 9가지 상황으로만 나뉘어있다.
일본은 실내에서도 거실, 부엌, 욕실 등 세세하게 지칭돼 있다. 일본과 동일한 환경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우리나라 상황에 맞는 매뉴얼이 반드시 제작되어야 할 시점이다.
“정말 화가 나는 것은.”
물론 지진에 대한 대비책과 기술적인 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책임을 온전히 정부에만 물을수는 없다. 일본에 미치지 못하는 대응책과 기술은 앞으로 개선해나갈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고, 무엇보다 얼마 전까지 우리는 한반도는 지진의 안전지대라는 타성 아닌 타성에 젖어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국민들이 정부에게 분개하고 답답함을 느꼈던 것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닌 먹통 대응와 무사 안일주의 태도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은 정부가 지키겠다고 약속한 것들이 처리되지 않은 것에 기인한다. 지난 5월, 정부는 지진에 대한 대책을 마련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를 했다. 발표에 따르면 조기 경보는 50초 내에 발령되도록 정비돼 있다.
하지만 현실은 50초는커녕, 약 10배 이상의 시간이 소비되며 갈피를 잡지 못한 혼돈의 도가니였다. 사태가 발생 한 후, 정부는 개선을 약속했고 실제로 그 약속을 이행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확인한 바, 그것은 말 뿐인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한 예로, 구마모토 현 지진 발생 직후 아베 총리는 15분 내에 언론에 얼굴을 내비추고 차분히 지진정국을 헤쳐 나갔다. 그러나 우리는, 2시간 47분이 지난 후에야 정부의 공식입장을 들을 수 있었다.
“대체 컨트롤타워는 어디에?”
세월호 참사 당시의 학습효과에 따르면 청와대는 당시에도 컨트롤타워가 아닌 것으로 들어났다. 곳곳에 책임 전가가 분배돼 있고 불필요한 보고 시스템뿐 이었다. 국민들을 안전하게 보호해 줄 정부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추석 이후에 다시 한 번 발생한 지진에 바뀐 것은 시민들의 대처법이었다.
시민들은 텔레비전 속보를 보고 대피했으며 대피 요령을 숙지해 운동장과 밖으로 뛰쳐나갔다. 바뀌지 않은 것은 ‘접속자 폭주’라는 한결같은 이유로 여전히 먹통인 홈페이지였다.
“각자도생이 대처법이라고?”
그러나 시민의 대응은 개인적인 차원의 행동일 뿐이다. 전 국토를 아우르는 재난 상황에서는, 정부의 대응이 절실하다. 과연 5.8 강진사태에서 세월호의 데자뷔를 느끼는 것이 무책임한 어른들 때문일까?
사실 그들도 어쩌면, 국가가 제 역할을 못하니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대피해야 하는 ‘각자도생’의 피해자들 중 한 명이 아닐까? 이번 문제는 정부의 잘못이고, 반드시 지적한 문제들을 개선해나가야 한다.
만약 이번에도 무심히 흘려보낸 지난 2년과 같을 것이라면, 그렇게 더 크고 재앙적인 지진 또는 재해와 맞닥뜨리게 된다면, 그 땐 각자도생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비규환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요?
앞으로 우리는,
그리고 정부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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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기자들과 함께, 토론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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